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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1. 할미꽃

보라색 제비꽃

by 포레스트 강

파란 하늘 뭉게구름

살며시 밀어내고

햇볕 한 줌

따습게 내려오던 날

양지 녘 무덤가에 할미꽃이

빨간 저고리 곱게 차려입고

예쁘게 웃고 있다.

나 어릴 때

할머니가 저렇게나

곱고 예쁘게 웃으셨다.

뻐꾸기 봄노래 부르고

봄바람 살랑살랑 불던 날

양지 녘 무덤가에 할미꽃이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르고

수줍게 웃고 있다.

나 어릴 때

할머니가 저렇게나

아름답고 예쁘게 웃으셨다.

- 이종수, <할미꽃>

위 시는 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장인 시인 이종수(1958~ )의 <할미꽃>이란 시이다. 할미꽃은 30~40cm까지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동강할미꽃이라는 종은 미선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특산종의 하나로 환경부에서 보호종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의 산과 들, 전야의 양지쪽 풀밭에서 잘 자란다. 특히 산소 근처의 잔디 속에서 많이 보이는데, 보통 양지 녘에 산소가 자리 잡고 벌초를 자주 해주는 환경이 할미꽃이 자라기에 이상적인 장소를 제공해 주는 듯하다. 4~5월에 뿌리에서 꽃줄기가 나오며 꽃봉오리가 열리면서 점차 아래로 굽어지는 모양이 나오는데, 솜털과 함께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얀 할머니의 모습을 연상하여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꽃이나 열매를 덮고 있는 하얀 솜털이 할머니의 흰머리처럼 보이는 점도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데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꽃의 분위기는 화사함과는 거리가 멀며 다소 소박하다.

보통 문중에서는 4월 초 청명, 한식 때에 산소 정비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데, 이때 산소 주위를 살피면 할미꽃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 이종수가 선산 산소에 올랐다가 발견한 할미꽃을 직접 사진으로 찍고 위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시는 어렸을 때 본 자신의 할머니를 추억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흰 솜털이 할머니를 연상시킨다면, 할미꽃 하면 연상되는 색깔은 보라색이다. 그 색상은 옅은 보라색인데, 참 무엇이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할미꽃 실물이나 사진을 보고 각자 느끼는 수밖에 없다. 봄철에 시골에 양지바른 길옆이나 집 가에 피는 작은 여러해살이꽃으로 제비꽃이 있다. 색깔이 흰색이나 노란색도 있나 보지만 제비꽃을 영어로 Manschurian violet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까, 보라색이 기본 같다. 밝은 보라색 제비꽃이 참 예쁘다. 모양이 제비를 닮아서 제비꽃이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쯤에 꽃이 핀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 오랑캐꽃, 참제비꽃, 장수꽃, 외나물 등이 있다. 이외에 보라색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식물로 라벤더, 난초, 가지, 도라지, 뽕나무, 엉겅퀴, 라일락 등이 있다. 포도, 자두 등의 과일도 보라색 계열의 색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자연에서는 보라색을 보이는 식물이 종종 보이지만 우리가 염료나 물감으로 쓰는 보라색 물질을 추출하기는 어려웠다. 서양에서는 소량으로 뽑아내는 조개 분비샘의 물질로부터 변색이 되지 않는 보라색을 뽑아낼 수 있음을 발견하고, 애용하게 되었으나 고가여서 일부 재력가나 권력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보라색은 국왕이나 종교지도자의 제복 색으로 사용되고 일반인은 구경만 하였다.

보라색을 빨강 계열로 인식하는 사람이 꽤 많다. 보라색을 어떤 이들은 자주색(紫朱色)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분명하게 빨간색을 뜻하는 주(朱) 자가 들어가 있다. '빨주노초파남보'라는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 보라색이 제일 상위에 있건만 제일 하위에 있는 빨간색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괴테의 분류에 의하면 보라색은 차가운 색인데, 빨간색과 유사하게 느껴서 따뜻한 색으로 인식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된다. 보라색이 귀해서 일반인이 접하기 쉽지 않았고, 어렸을 때 색에 대해 학습할 때 제대로 구별하여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보라색이 벌과 같은 곤충에게는 더 잘 이끌린다는 설이 있다. 보라색이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색깔이어도 벌은 자외선에 가까운 보라색을 더 잘 본다는 얘기이고, 그래서 자연에서 보라색 계통의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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