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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0. 목련꽃

4월의 노래, 동무 생각

by 포레스트 강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목련꽃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후렴)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사월의 노래>

위 <4월의 노래>는 박목월(1915~1978)의 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작곡가인 김순애(1920∼2007)가 곡을 붙인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가곡이다. 이 노래는 작곡가 김순애가 6·25 피난살이에서 갓 돌아온 뒤인 1953년 잡지 「학생계」의 재창간을 기념해 의뢰를 받고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후렴 가사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에서 부점(附點)을 사용한 리듬과 긴 음표를 반복하여 강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 학생 시절인 1960~70년대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즐겨 불렀던 노래이다.

아파트 단지나 학교 교정에 흔히 외롭게 서 있는 목련 나무는 키가 4~5m이고 봄에 잎이 돋기 전에 크고 향기 있는 큰 종 모양의 꽃이 핀다. 목련꽃을 한자 말로 보면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 되겠다. 보통 흰 꽃이 피는데 이를 백목련(白木蓮)이라고 하고, 가끔 보라색이 도는 꽃을 피우는 목련 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를 자목련(紫木蓮)이라고 부른다. 진달래, 개나리가 필 무렵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목련꽃이 피는데, 보통 봄비가 오면 커다란 종 모양의 꽃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목련꽃이 피면 완연한 봄이 되었음을 느낀다. 봄은 새로운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드는 계절이고, 우리는 무지개 꿈을 꾸게 된다. 목련꽃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목련 나무 밑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있는 화자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열심히 읽고 있나 봅니다.

베르테르는 독일의 대문호(大文豪)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젊은 시절에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의 남자주인공 이름이다. 주인공은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Lotte)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로테 또한 베르테르를 존경하며 따르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대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로테가 결혼하자 베르테르는 슬픔에 빠져 권총으로 자살한다는 줄거리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은 독일어로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영어로 옮기면, ‘The Sorrows of Young Werther’이다. 그 아가씨의 본명은 샤를로테이지만, 보통 애칭으로 로테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활동하는 기업 롯데 그룹의 이름도 이 아가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 '베르테르'는 독일어 발음으로 베르터(Werther)가 맞는데 일본어 번역 소설을 중역하는 풍조가 만연했던 과거에 일본어 표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 학계에서도 원어 발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번 굳어진 것은 고치기 어렵다고 그대로 두고 있다. 한때 일부 출판사에서 이를 바꿔 보겠다고 '젊은 베르터의 고통',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으나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여기서 제목에 슬픔이 아니라 고통 혹은 고뇌가 들어간 이유는 독일어 원제 중 die Leiden(das Leid의 복수형)이 고통이나 괴로움, 고뇌에 가깝기 때문이다.

괴테는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거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 세상에 83년 있는 동안에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베스트셀러(bestseller)뿐만 아니라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는 폭넓은 작품을 내놓았다. 한때 유럽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은 1808년 괴테를 만난 자리에서 “여기도 사람이 있군.”이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되던 나폴레옹이 괴테를 인물로 인정했다는 얘기이다.

괴테는 1810년에 펴낸 <색채론>이라는 책에서 색의 인식은 과학적인 현상이 아닌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하였다. 영국의 뉴턴(1642~1727)이 1704년 <광학>이란 저서에서 주장하는 빛과 색에 관한 과학적인 이론에 대하여 괴테는 심리학적인 혹은 철학적인 이론을 제기하였다. 괴테의 주장에 따르면 색은 빛의 물리적 현상과 우리의 인식 기관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색의 스펙트럼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생명을 강화하는 플러스 색깔과 불안을 조장하는 마이너스 색깔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전자는 빨간색, 노란색 계통이고 후자는 녹색, 청색, 보라색을 의미한다. 색깔의 시각 인식의 주관적인 요소를 강조한 괴테의 주장은 그 뒤 미술 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회화나 염색 등의 분야에서 배색에 관한 여러 이론이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는 뉴턴이나 괴테보다 더 복잡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느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이은상, <동무 생각>

옛날에 학창 시절에 음악 교과서에 나오고, 즐겨 불렀던 또 다른 노래 중에 ‘동무 생각’이 있다.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의 시 제목은 원래 ‘사우(思友)’였으나 뒤에 제목을 쉽게 풀어쓰느라고 ‘동무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작곡자 박태준(朴泰俊, 1900~1986)이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인 1925년에 특별한 음악적 전문 지식 없이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초창기의 가곡으로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노래는 작곡되자마자 널리 퍼져 삽시간에 젊은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고 한다. 전반부의 전형적인 동요풍에서 후반부의 변박자에 이르러서 감정을 격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노래에 청라언덕과 흰 나리꽃(백합)이 나온다. 청라언덕이면 녹색 풀이나 나무들이 있는 언덕을 그렇게 불렀을 터인데, 우리말에는 청록색맹이 있어 청색과 녹색을 언어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대구에 청라언덕이란 지명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 서양 선교사의 사택이 있던 곳인데 수목이 수려한 모양이다. 서울에도 용산구에 청파동(靑坡洞), 중구에 청구동(靑丘洞)이 있다. 그 지역에 푸른 산의 언저리에 언덕이나 구릉이 있어서 그렇게 붙인 이름 같다. 백합(百合) 꽃은 희다. 백합 계통의 꽃을 우리말로 ‘나리’라고 부른다. 수목의 푸른(녹) 색과 흰색의 백합꽃, 혹은 목련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봄 풍경을 두 노래, <4월의 노래>와 <동무 생각>은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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