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는 봄이 되면 전국의 산골짜기를 온통 분홍색 계통으로 물들이는 꽃이다. 진달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겨레와 애환을 함께 해 온 꽃이다. 그런데 왜 진달래일까? ‘달래’는 분명 작은 풀인데 왜 ‘진짜 달래’라고 하는 걸까? 한동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진달래의 어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옛날 말로 ‘진달위’ 비슷하게 불렀다고 한다. 진달래는 두견새가 울 때 핀다고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며 참꽃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위 진달래꽃 사진은 조광섭이 장인의 집인 경상북도 청도에서 찍은 것으로, 산에서 자생한 나무는 아니고 인위적으로 옮겨 심은 진달래 같다. 작가는 학창 시절에 여린 모습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진달래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아 더욱 이 꽃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달래꽃이 희면 영산백(映山白), 자줏빛이면 영산자(映山紫), 붉으면 영산홍(映山紅)이라고도 불렀다. 진달래와 비슷한 꽃으로 철쭉이 있다.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서 된장찌개 끓여 먹고 나서 진달래 지고 나면 철쭉이 고개를 내민다.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가지에서 나오지만, 철쭉은 잎이 나온 뒤에 꽃이 탐스럽게 핀다. 그새 알이 굵어진 달래를 넣어 달래전을 부쳐 먹을 때, 진달래는 꽃 그대로 입에 넣어 먹거나 진달래꽃을 넣어 부친 화전을 먹기도 하지만, 철쭉꽃은 화려해 보여도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진달래와 비슷하지만, 철쭉은 꽃잎에 주름이 잡혀 있으며 엷은 자줏빛에 검은 점이 박혀 있다. 진달래꽃을 참꽃이라 한 데 대해 철쭉꽃은 개꽃이라고 불렀다. 꽃의 생김새로 보아서는 철쭉 쪽이 더 탐스러운 꽃인데도 거기에다 굳이 '개' 자를 붙인 것은 진달래는 먹을 수 있고 철쭉은 먹을 수 없다는 데서 참꽃과 개꽃으로 구별하여 부른 것 같다.
진달래 가운데 하얀빛이 도는 연한 진달래를 ‘연달래’라고 하고 자줏빛 도는 진한 진달래를 ‘난달래’라고 한다. 조금은 민감한 비속어로 젖꼭지가 연하게 붉은 앳된 사춘기 처녀를 ‘연달래’, 젖꼭지가 진하게 붉어 오른 성숙한 아가씨를 진달래, 젖꼭지가 난초 빛깔로 검붉어 오른 젖먹이 여인을 ‘난달래’라 했다는 얘기가 있다. 옛날에는 여인의 젖가슴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것 같다, 개화기에 외국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우리 여인네들이 젖가슴을 내놓고 있는 모습이 많다. 아이를 열 명 내외로 낳아 끼우는 게 보통이었으므로 수유의 편의를 위해 여인이 저고리 밑으로 젖가슴을 내놓는 것을 사회적으로 허용했던 것 같다. 진달래는 우리나라에서 흔한 꽃이고 우리나라 여인들이 좋아했던 꽃은 철쭉꽃이 아니라 진달래꽃이었으며 진달래꽃을 꺾어 머리에 꽂거나 꽃병에 꽂지만, 철쭉꽃은 좀처럼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영어로 진달래를 뭐라 하는지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진달래는 azalea라고 나온다. 아래의 김소월의 유명한 시 <진달래꽃>도 제목을 영어로 그렇게 번역했다. 그러나 서양의 아젤리아는 진달래와 비슷하지만 다르고 우리나라에도 아젤리아 꽃이 수입되어 판매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래의 시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소월이 느낀 진달래꽃의 이미지는 조금 부정적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할 때 느끼는 심정은 원망이나 복수심이 더 우세한 감정처럼 보인다. 그 원망이 너무나 사랑했기에 나오는 숭고한 사랑인 줄은 몰라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시인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평북 구성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정식(廷湜)이다. 18세인 1920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일본 유학 중 관동대지진으로 도쿄 상과대학을 중단했다. 고향에서 조부의 광산 경영을 도왔으나 망하고 동아일보 지국을 열었으나 당시 대중들의 무관심과 일제의 방해 등이 겹쳐 문을 닫았고, 이후 김소월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하다 1934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유서나 유언은 없었으나 아내에게 죽기 이틀 전에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월은 32세의 짧은 생을 살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하고 '한(恨)'을 여성적 감성으로 노래한 주옥같은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대표작으로 국민의 애송시 ‘진달래꽃’과 ‘산유화’가 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
이 시는 1925년에 김소월이 발표한 시이다. 산유화(山有花)를 꽃 이름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이름의 꽃은 없고, 산에 꽃이 있다는 의미이다. 총 4연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꽃이 홀로 외롭게 피고 지는 존재로 형상화되어 있다. 산에는 꽃이 필 뿐만 아니라 꽃이 지기도 한다는 내용은 일견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우주 속에 처음도 끝도 없이 생멸하고 변화하는 존재의 실상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그리고 산은 이러한 존재가 순환되지만, 근원적 고독감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작가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일상적 자연 현상에서 착안하여 존재의 근원적 고독을 다루고 있다. 이 시에서 '꽃'이 존재라면 우리는 그 존재를 '저만치' 봐야 한다. 대상과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대상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그 속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조금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상대를 인식해야 비로소 대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시작된다. 김소월 시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운율에 맞춰 노래로 만들기 좋기 때문인지 여러 버전으로 곡이 붙어 있다. 산유화는 김성태(1910~2012)가 곡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