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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7. 초신성

Supernova, 고흐

by 포레스트 강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의 표기법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네덜란드 출생이니까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라 '핀선트 빌럼 판호흐'라고 써야 하지만 보통 '빈센트 반 고흐'로 적는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고호‘라고 불렀다. 그래도 '고호'라고 하는 사람은 양반이고, 심지어 그를 ’반 고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영국식 영어로는 ’밴 고흐 또는 고프‘, 미국식 영어로는 '밴 고우'로 읽는다. 고흐는 평생 자신을 '빈센트'라고 불러주기를 바랐다. 화가들은 자기 그림에 성으로 서명하는 것이 보통인데 고흐는 'Vincent’라고 서명했다. 그가 말년에 거주하고 작품활동을 했던 프랑스에서 이 이름의 발음은 ‘뱅상’이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11살 때 집에서 25km 떨어진 개신교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고흐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기초부터 갈고닦아서 나중에는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만큼이나 유창하게 말할 정도가 되었고 독일어도 상당히 능통한 수준이 되었다. 청년 시절에 예비 목회자로 영국에 거주하였고, 독일어 지역에서 목회자 훈련을 받고, 말년은 화가로서 프랑스에서 보냈으니까, 고흐는 언어에도 천재였나 보다.

고흐는 13살이던 1866년에 더 멀리 떨어진 한 국립중학교로 진학했는데, 이 학교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미술 과목이 도입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미술 교사였던 한 화가 밑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즐거운 수업이었지만 제대로 화가로서의 미술 기법을 익히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68년 3월, 고흐는 갑자기 학교를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자퇴했는지는 수수께끼이지만 이때 고흐가 정신장애나 발작이 있지 않았나 추측한다. 고흐의 집안에는 정신병력이 있었는데 이게 고흐에게도 유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16세 때 큰아버지의 주선으로 헤이그의 미술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 뒤 미술상에서 성격상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회자 수업을 받고 예비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하지만 예의 정신병력 등으로 그만두고 집에 와서 혼자 미술 수련을 하게 된다.

고흐가 화가가 된 방법은 자신이 존경하던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독학으로 습작하면서 기교를 익혀나가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발전 속도가 느릴 수 있지만, 오히려 이 덕분에 고흐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 수 있었다. 만약 고흐가 처음부터 당시 예술의 중심이었던 파리로 가서 인상파 조류를 접했더라면 자신의 개성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는 한때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강의를 수강하는 등의 시도를 한 적이 있으나, 그의 성격과 아카데미즘을 거부하는 개성으로 인하여 강사들의 분노를 사 얼마 안 가 퇴출당했다고 한다.

초기 고흐에게 영감을 준 화가들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같은 네덜란드의 옛 거장들로 이들에게서 기본적인 고흐의 스타일인 거친 붓 스타일이라든지 음영이 뚜렷한 기법 같은 것을 배웠다. 다른 한편으로 영향을 크게 미친 화가는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였다. 프랑스인에게 밀레라고 그러면 못 알아듣고, ‘미예’라고 말해야 한다. 고흐는 밀레에 대한 존경이 대단해서 밀레의 그림을 즐겨 모사했다고 한다. 물론 밀레의 스타일을 고흐가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으며 밀레는 고흐에게 그림의 중요한 소재인 자연, 그리고 자연 속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흐는 1886년 파리에 와서야 인상주의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비록 인상주의 스타일에 유보적이긴 했으나 그 영향을 받아들였다. 파리 이후로 고흐는 인상주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인 색채의 활용에 능해졌고 점묘법의 영향을 받아 붓 터치가 점 모양을 띠는 양상으로 나아갔다. 또한 그림자의 생략, 가는 선으로 둘러싸인 얕은 채색, 풍경과 대비되는 작은 크기의 인물 등 일본적 스타일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아를(Arles) 시기(1888.2.~1889.5.)에 이르러 고흐의 화풍은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선 터치 등을 사용했는데 특히 아를 이후의 그림에서 눈에 띄게 다양한 형태의 선을 사용했다. 요양원에 들어갔던 생레미(1889.5.~1890.5.) 시절에 두드러지는 이런 선들은 나선, 원, 물결 등의 모양으로 형상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생레미(Saint-Rémy-de-Provence) 시절에 고흐의 후기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여러 개 나왔다. 저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 대표적이다.

‘별이 빛나는 밤’, 이 그림에서 특징적인 게 별과 사이프러스 나무인데, 사이프러스는 프로방스 지방에서 종종 발견되며, 서양에서는 한번 자르면 다시는 뿌리가 나지 않는 탓에 죽음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진다. 별은 노란색 계통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영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죽음을 은유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 초승달이 보이고, 중앙 왼쪽에 있는 흰색이 도는 큰 별은 아침에 빛나는 금성일 것으로 추측된다. 하늘과 별이 우주적 환상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동안 사이프러스 나무는 불꽃 모양을 하고 있다. 한편 그림에서 작은 마을은 지어낸 것이고, 교회의 첨탑은 반 고흐의 고향인 네덜란드를 연상시킨다. 진한 청색(Prussian or cobalt blue)의 배경은 불안한 느낌과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아를 시절에 강렬한 색채의 해바라기를 그린 것과는 상반된 태도라는 지적이다. 이 그림은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이 소장하고 있다.

같은 제목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이 하나 또 있다. 이 그림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이 소장하고 있다. 1888년 2월 8일 아를에 도착한 순간부터 고흐는 ‘밤의 효과’를 표현하는 데 끊임없이 몰두했다고 한다. 같은 해 9월에 그는 아를의 론(Rhône) 강 변에서 처음으로 밤하늘의 한 모퉁이를 그렸는데, 그는 어둠 속에서 감지한 색상을 청색으로 묘사한다. 이는 중국의 이백(701~762)이 맑은 밤하늘의 색을 청천(靑天)이라고 읊은 것과 상통한다. 도시의 불빛이 강렬한 오렌지빛을 내며 물에 반사된다. 별은 보석처럼 노란색 계통으로 반짝거린다. 캔버스 하단 강변에는 나룻배가 두 척 정박해 있고, 강변에는 팔짱을 낀 연인 커플의 존재로 분위기가 더 빛난다. 몇 달 후, 정신 병원에 갇힌 직후 반 고흐는 같은 주제로 또 다른 버전의 그림을 그렸다.

강렬한 태양에 이끌리어 프로방스 지방에 정주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 고흐는 그곳의 밤의 풍경에도 매료되었나 보다. 고흐가 한밤중에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그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에너지를 느끼지 않았나 싶다. 폭발하는 별 아래에 있는 마을은 고요한 질서를 갖춘 장소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불꽃같은 사이프러스는 전통적으로 묘지와 애도와 관련된 나무로 죽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고흐에게 죽음은 불길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엔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별을 보면 항상 꿈을 꾼다.’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약 1세기 후에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매클린(Don McLean, 1945~ )은 고흐의 이 그림을 보고 고흐의 천재성을 뒤늦게 깨달은 우리에게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별이 빛나는 밤. 당신의 팔레트를 파란색과 회색으로 칠하세요)

Look out on a summer's day

(어느 여름날에 바깥을 내다보세요)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내 영혼에서 어두움을 알고 있는 눈으로.)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언덕 위의 그림자들.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하세요.)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미풍과 겨울의 한기를 느끼세요.)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눈같이 하얀 천 바닥 위에 여러 색깔로.)

Now I understand

(이제는 알겠어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그리고 당신이 자기의 온전한 정신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리고 그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당신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방법도 몰랐지요.)

Perhaps they listen now.

(아마도 지금은 들으려 하고 있지요.)

- Don McLean, <Vincent>

(돈 매클린, <빈센트>)

고흐 같은 화가나 윤동주, 김광섭 같은 시인들이 밤에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자신의 느낌을 나름대로 묘사했듯이, 천문학자 등 과학자들은 별을 관찰하고 별에 대한 지식을 나름대로 정리해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를 고용하여 매일 밤하늘을 관측하도록 하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보고하고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저녁에 별들을 육안(肉眼)으로 관찰하다가 밝기가 갑자기 커지는 현상을 새로운 별인 신성(新星)이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큰일이 일어날 징조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실록(朝鮮實錄) 등에 기록되어 있어서 오늘날 현대적인 천문학 연구에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신성을 영어로는 nova라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밝게 빛나는 별을 초신성(超新星), 영어로 supernova라고 한다. 현대적인 천문학에서 초신성은 별의 진화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대폭발을 일으켜, 밝기가 태양의 수억(億) 배에 달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뒤에 이 별은 곧 사라진다. 최근에 관찰된 초신성은 1993년 큰곰자리 M81에 나타났다고 한다. 옛날에 맨눈으로 관찰되었던 별의 빛이 전자기파 에너지의 한 형태라고 오늘날 이해하고 있다. 그 별과 지구의 거리를 빛이 일 년 걸려 도달하는 시간인 광년으로 표현되는데 1광년이라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먼 거리이다. 보통 이런 사건이 일어난 곳은 수천 광년 이상 떨어진 거리이고, 그 폭발이 일어난 시간은 이미 수십만 년 이전이다.

현대 천문학에서 신성과 초신성이 생기는 과정은 약간 다르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맨눈으로 별을 관찰할 때는 둘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새로운 별(new star)이라는 의미로 신성이라고 불렀다. 신성이 초신성보다는 자주 관찰되고 있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때 신성을 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20세기에는 1901, 1918, 1925, 1934, 1942, 1975년에 신성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천문 관찰기록이 오래전부터 남아 있어서 서양의 천문학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동양의 기록에 1006, 1054, 1572, 1604년에 아주 밝은 별이 관찰되어 이것들이 초신성이 아니었을까 추정되나 확신할 수는 없다. 이 중 1604년 천문 관찰 내용이 우리의 조선실록(朝鮮實錄) 선조(宣祖) 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고 한다. 당시의 기준으로 신성의 위치가 기술되어 있고 날짜별로 별의 밝기가 목성, 화성, 금성 등 행성이나 항성의 밝기와 비교되어 있다. 이 사건은 유럽의 이탈리아에서도 기록되어 있고, 유명한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가 프라하 인근에서 관찰하였다. 그래서 이를 서양 천문학계에서는 케플러의 신성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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