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별의 일생에 대해 살펴보면서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 1910~1995)의 총체적인 붕괴 이론을 언급하였다. 찬드라세카르는 지금의 파키스탄 라호르 출신의 천재로서 20세가 되기도 전에 그의 이론의 기초를 세웠고,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며 그의 천문학 이론을 완성하였고,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인도의 물리학자로 라만 분광학(Raman Spectroscopy)으로 유명한 찬드라세카라 라만(Chandrasekhara V. Raman, 1888~1970)이 있다. 라만은 인도 남부 마드라스 출생으로 그의 연구 분야는 진동·음향·빛의 회절(回折), 콜로이드에 의한 빛의 분산, X선 회절, 초음파(超音波) 등 파동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그가 발견한 ‘라만효과’(1928)가 당시 새로운 양자론(量子論)의 실험적 증명으로 인정받아 1930년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두 사람이 삼촌, 조카 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겠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연구한 찬드라세카르에 비하면 라만은 선대(先代)로서 인도에서만 활동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인도 지역의 사람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정보기술 분야에 진출하여 학계와 산업계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이다. 그는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교토제국대학 교수가 되면서 교토시로 1살 때 이사 와서 이후 교토에서 성장하고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여 자신은 교토 출신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1932년에 결혼하였는데, 유카와 가의 데릴사위가 되면서 자신의 성을 유카와로 바꾸었다. 일본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유카와는 원자핵 내부에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왜 흩어지지 않고 (10의 –15승) m의 짧은 거리에 걸쳐 뭉쳐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중간자(meson)의 존재를 1935년에 이론적으로 예측했다. 1947년 영국의 물리학자들이 우주선(宇宙線) 중에서 파이 중간자를 발견함으로써 ‘유카와 이론’이 증명돼 공적을 인정받아 1949년에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의 고등학교와 대학 동기였던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 1906~1979)는 1965년 양자전기역학의 발전에 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는 도모나가의 성적이 더 우수했으나,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은 유카와가 먼저 받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평생 동료로 경쟁자로 지냈다. 권위적인 유카와와 달리 도모나가는 소탈한 성품이었고, 유카와는 직관을 중시한 데 반해 도모나가는 논리적인 전개를 선호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영향으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과거에 교토대 출신이 많았으나, 요즈음에는 도쿄대 관련 인사가 더 많다고 한다.
노벨(Alfred B. Nobel, 1833~1896)은 스웨덴 사람으로 아버지 때부터 고체 폭탄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당시에 큰돈을 벌었다. 그는 노벨상 제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유언하였다고 한다. ‘유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다섯 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 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 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그의 출연금은 당시 3,100만 크로네, 현재 가치로 한화 약 3,000억 원 정도 되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이자로 1901년부터 노벨상을 국적 및 성별 불문하고 그 부문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공로자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다. 오늘날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원에서 결정한다. 노벨 생리학·의학상은 카롤린스카의과대학 노벨 총회에서 결정한다.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결정한다.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의회의 추천으로 구성되는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서 결정한다. 1968년부터는 노벨 경제학상을 스웨덴 왕립 과학원에서 결정하여 수여하는데, 정식 명칭은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이라고 한다. 상금은 2022년 기준으로 스웨덴 화폐로 1,000만 SEK, 미화 115만 달러, 한화 약 14억 원이다. 고인은 수상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한다. 몇 년 전에는 수상 예정자가 선정심사과정에서는 살아 있었으나 선정 통보 과정에서 사망을 인지한 경우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냥 유족에게 그 상을 수여했다고 한다. 한 가지 상에 대해서 3인까지 공동수상이 가능한데, 상금의 배분 비도 노벨상 위원회에서 결정해 준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을 노벨 과학상이라고 부르는데, 노벨의 경력에 맞게 이 상들이 노벨상의 꽃이다. 노벨 과학상은 인류 과학 발전의 상징이 되었으며, 수상자의 숫자는 국력의 척도가 되어 왔다. 노벨 과학상의 역대 배출국가를 보면, 미국이 전체 수상자의 45%, 영국이 14%, 독일이 11%, 프랑스가 6%, 일본이 4% 정도로 이들 상위 5개국 수상자가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약 80%이다. 노벨상은 지난 120여 년간 유럽과 북미 지역 국가들, 특히 그중에서도 강대국들의 놀이터였다. 21세기 들어 유럽과 북미 이외의 지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이 아성을 깬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혹은 일본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합해서 30명이 넘는다.
처음에는 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을 위주로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였는데, 최근에는 기후 이변을 설명하는 이론의 제안자나, 레이저, 반도체 집적회로, 이차전지 등 새로운 산업의 개창자에게도 상이 시상되고 있다. 요즘에는 어떤 기술을 처음으로 발명한 나라와 그걸로 돈 버는 나라가 따로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어 반도체 관련 기술을 처음 발명한 나라는 대체로 미국이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선두는 현재 우리나라 기업이다. 나라별로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더라도 정치 경제적인 힘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차이가 크지만 두 나라는 현재 G2로서 국제무대에서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의 거리가 좁혀지고 언론 기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많이 알려지는 게 노벨상 선정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각국의 유력 단체나 학회에서 노벨상 선정위원회에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설도 있다. 우리의 국력이 옛날보다 훨씬 커졌고, 또한 우리가 새로운 기술을 여기저기서 개발하게 되면서 우리의 젊은 꿈나무들이 노벨 과학상을 탈 날도 멀리 있지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