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 역학의 태동

by 포레스트 강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은 엄밀히 말해 18세기 사람이지만, 현대 사상에 그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다. 뉴턴이 남긴 최대의 업적은 역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찍부터 역학, 특히 중력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한 1664년부터 1666년까지 영국 케임브리지(Cambridge) 지역에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여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고, 대학도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때 뉴턴도 고향으로 돌아와 사색과 실험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훗날 뉴턴은 이것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운 좋은 사건’으로 회고했다. 그의 위대한 업적 대부분은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가 출간되었으며, 이로써 이론물리학의 기초가 쌓이고 뉴턴 역학의 체계가 세워졌다. 3부로 된 이 저서는 간단한 미적분법의 설명에서 시작하여 역학의 원리, 인력의 법칙과 그 응용, 유체의 문제, 태양과 행성의 운동에서 조석의 이론 등에 이르기까지 계통적으로 논술되어 있다고 한다. 뉴턴의 이 저서를 ‘수학 원론(Principia Mathematica)’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물리학의 원조라고 불리는 뉴턴의 운동 법칙을 처음으로 기술한 책 이름에 ‘수학’이 들어있다. 이 책에서 뉴턴은 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을 기술하였다.

1. 관성의 법칙.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한, 물체의 운동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정지한 물체는 외력이 작용할 때까지 계속 정지상태로 있고, 일정한 운동을 하는 물체는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2. 가속도의 법칙. 물체에 힘이 작용하면 그 물체의 속도가 변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속도의 변화량이 가속도이며, 가속도(acceleration, a)는 힘(Force, F)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 비례상수를 질량(mass, m)이라고 말한다. 그 유명한 F=ma 법칙이다. 어떤 물체에 힘을 주면 일정한 가속도가 생기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물체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만약에 물체에 운동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면 가속도가 음(-)의 값이 되고, 물체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감속된다. 지구상에서는 중력과 마찰력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는 종국에 설 수밖에 없다. 마찰력이 없는 공간에서는 한번 힘을 가하면 계속 움직이게 된다.

3. 작용·반작용의 법칙. 모든 작용(action)에는 세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reaction)이 존재한다. 소총에서 총알이 발사될 때 총알을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내는 힘이 있고 동시에 세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힘이 사수에게 반동으로 전달된다. 사수가 힘이 세거나 발사할 때 정신을 집중하면 별로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계속 총알을 발사할 수 있다. 이 법칙은 연료 연소에 의한 힘의 반작용으로 로켓이 위로 추진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뉴턴이 약 350년 전에 물체(body)의 거동을 관찰하고 이것을 세 가지의 원칙으로 정리하였다. 세 가지의 원칙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점에 뉴턴의 위대함이 있다. 이렇게 세운 법칙이 고전 역학(Classical Mechanics)의 기초가 되었으며, 고전 역학을 뉴턴 역학(Newton Mechanic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의 중력에 관한 법칙과 운동의 법칙을 종합하고 확장하여 천체 간의 물체와 마찬가지로 지구에서의 물체들에도 적용되는 동적 운동에 대한 공식을 세울 수 있다. 이 법칙들은 지구상에서 야구공이나 축구공이 날아가는 현상에서부터 지구와 다른 행성들 사이를 여행하는 우주 로켓들의 궤도를 결정하는 데까지 사용되고 있다. 뉴턴 역학이 결정적으로 활용된 분야가 군사학 분야이다. 그중에서 총포탄의 날아가는 궤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탄도학(ballistics)이 대표적이다.

탄도학이란 포탄이 화약의 연소 폭발로 운동을 시작해서 목표물에서 운동을 멈출 때까지 일어나는 현상과 그 운동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조건 등을 연구하는 분야를 말한다. 여러 가지 공식이 나오고 야전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약식이나 도식이 나오는데 6·25 전쟁 때 우리 젊은이들이 이를 잘 암기하고 활용해서 미군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교육과 훈련을 중시하는 미군 당국은 전쟁 중에도 일선에서 장교들을 빼내어 미국으로 보내 단기간의 연수 교육을 받게 했는데, 포병 분야의 젊은 장교들이 연수를 끝내고 돌아와 현장에서 일을 잘 수행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초급 장교가 근처의 높은 산에 올라가서 포탄이 떨어지는 지점을 관측하고 포를 쏜 포병부대에 유선 또는 무선으로 알려주면 포대에 있는 장교가 다시 계산하여 발포 조건을 수정하고 목표에 제대로 명중하기 위하여 다시 발사하였다.

이처럼 시간과 수공이 많이 드는 작업을 단축하여 준 것이 컴퓨터이다. 복잡한 수식을 미리 빨리 계산하여 명중률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었다. 1960년대에 미군 당국이 미국 대학에 많은 연구과제를 발주하였는데, 컴퓨터 분야에서는 탄도학의 계산을 전산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 분야의 우리 유학생들이 이런 과제에 참여하고 귀국하여 전산 분야의 인재로 활동하였다.

옛날에는 견인포(牽引砲)라고 하여 포를 트럭이 견인하여 이동하고 필요시에 포를 설치하고 사람의 암기와 계산에 의존하여 수동으로 포를 쏘았지만, 요즘은 자주포(自走砲)라고 해서 탱크에 포가 장착되어 있어 정지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움직이면서 발포할 수 있다. 포 몇 대를 일정한 대오로 배치하여 목표물에 명중하는 확률을 높이려고 했는데, 이 포진(砲陣)을 배터리(battery)라고 한다. 또한 요즘은 포에 컴퓨터가 붙어 있어서 목표물만 지정하면 자동으로 포탄과 화약이 장전되어 발사되고 있다. 관측장교가 위험하게 적진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드론이나 인공위성으로 탄착 지점을 관측할 수 있고 통신기술이 발달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이루어질 수 있다.

탄도학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최근 북한이 ICBM(Inter 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이나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s)과 같은 탄도미사일을 쐈다고 하는 뉴스로 높아지고 있다. ICBM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부르며, 수천 미터를 날아가니까 한반도에서 미주 대륙을 단번에 도달할 수 있다. 미사일은 포탄이 목표물을 찾아서 자체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SLBM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로써 포탄을 잠수함에 적재하여 바닷물 속에 숨어 돌아다니다가 발사하니까 상대방이 예측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어 위협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고각(高角) 발사라고 하는 것은 도달 거리를 줄이기 위해 수평선과의 각도를 크게 유지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즉 미주 대륙에 도달하지 않고 일본 열도를 뛰어넘어 태평양에 떨어지도록 하여 거리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옛날에는 개인과 개인이 부딪치는 전쟁이었다면 현대전에서는 탱크와 포에 의해 끔찍한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탱크와 포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방에서 탱크를 무력화시키는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어서 전력으로 우세할 것으로 보였던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다.

우리는 7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전쟁을 치렀다. 6·25 전쟁은 1950년부터 3년 동안 벌어져서 1953년 7월에 정전(停戰)이 되었다. 그 당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실제 격렬한 전쟁은 1년 정도밖에 벌어지지 않았다. 전쟁 발발 이후 북이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을 함락하고 낙동강까지 내려간 것이 약 3개월이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수도를 탈환하고 38선을 넘어 유엔군이 북쪽으로 진격한 기간이 약 3개월이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1·4 후퇴를 단행하고 잠깐 서울을 내주었다가 탈환한 기간이 약 3개월이다. 그 뒤에는 장단 근처의 널문리, 지금의 판문점에서 2년 넘게 정전회담을 지루하게 하다가 결국 성사되었다. 널문리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 이름이 북경반점(北京飯店) 같은 중국음식점 이름을 연상시키는 판문점(板門店)으로 바뀐 것은 정전회담에 참가했던 참전국 중공(中共)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쟁 전에는 그 판문점을 비롯한 개성, 해주 등이 38선 이남 땅이었다. 정전회담이 열리는 동안 이 지역에서는 전투가 없었지만 철원 일대 중부 전선과 동해안에서는 양쪽의 교전이 계속되었다. 연합군의 해군력이 우세하고 북쪽에서는 바다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서, 황해도 땅은 전부 북쪽 땅이 되었지만, 그를 둘러싼 도서들, 즉 연평도, 백령도 등은 이남 땅으로 남게 되어 오늘날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동해안에서는 바다에 떠 있던 미군 군함에서 함포사격의 지원을 받아 전쟁 전에 38선 이북이었던 설악산, 고성, 속초 지역을 수복할 수 있었다. 그때 철원, 화천 등 중부 전선에서는 양쪽 보병 부대가 능선 하나를 두고 대치하였다. 고지 하나를 두고 낮에는 아군이 차지하고 밤에는 적군이 차지하였다고 한다. 개인화기만 가지고 백병전을 치르며, 여름에는 더위에, 겨울에는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 태반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 한명희(1939~ ) 작사, 장일남(1932~2006) 작곡, <비목>

우리에게 유명한 가곡 ‘비목’은 6·25 전쟁 때 전투가 치열했던 화천 지역에서 10여 년 뒤 한명희 작사가가 군 생활을 하면서 본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 돌무덤을 생각하고 1967년에 작사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전쟁은 피해야 한다. 비목의 가사를 탄생시킨 화천 지역은 이제 관광지가 되었다. 우리가 다목적 댐으로 개발한 파로호는 물론이고 그 위에 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한다고 조성된 평화의 댐을 이제는 산골인데도 불구하고 좋아진 교통 여건으로 몇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건립 초기에는 그 산속에 높이 200여 미터의 댐을 건설하는 데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그 댐의 보수와 완성은 비판하던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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