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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0. 구공탄과 연탄재

by 포레스트 강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석탄(石炭)은 태고 때의 식물이 땅속 깊이 묻히어 오랫동안 지압과 지열을 받아 차츰 분해하여 생긴, 타기 쉬운 퇴적암이라고 되어 있다. 검은색 또는 검은 갈색을 띠며 탄소, 산소, 수소를 주성분으로 하는데 약간의 유황과 회분(灰分)과 수분이 들어있다. 탄화 정도에 따라 토탄, 갈탄, 역청탄, 무연탄 따위로 나뉘며 연료 또는 화학 공업 재료로 쓰인다. 석탄은 장작이나 숯보다 월등히 화력이 세다. 인류가 땅속에서 발견된 석탄을 채취하여 태우면 강력한 화력이 분출되고 이를 이용하여 증기기관을 작동시키면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문명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보통 석탄은 일반인 수준에서 유연탄(有煙炭)과 무연탄(無煙炭)으로 나눈다. 각각 태워서 연기가 있는 석탄과 연기가 없는 석탄이란 뜻인 것 같다. 유연탄은 함유된 열량이 커서 제철 과정에서 철광석을 환원하여 철을 뽑아내는 원료로 주로 쓰인다.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태우면 눈에 보이는 연기가 나오기 때문에 유연탄이라고 부른다. 무연탄은 태우면 유연탄보다 열량이 적고 무색의 연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석탄은 대부분 무연탄이어서 제철소에서 쓰이는 유연탄은 호주 등에서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은 연탄(煉炭)이라는 이름으로 연료로 활용되었다. 휘발 성분이 적고 탄소 함량이 높은 무연탄은 태울 때 연기가 나지 않고 비교적 단단하고 열량도 많으며, 연소 속도가 느린 대신 오래 타서 온돌 난방구조로 장시간 안정적인 난방 연료를 요구하는 한국의 주거문화상 석탄 중에서 가정용 연료로 최적이다. 또한 고구마나 밤 따위의 간식을 구워 먹기 딱 좋으며 달고나를 만들기도 비교적 쉬운 환경을 연탄난로가 제공하고 있다. 산림 자원의 고갈로 숯의 조달이 어려워졌고, 열량 면에서 연탄이 숯을 훨씬 능가하였고, 공업의 발달로 연탄의 채광과 가공, 운반과정에서 경제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연료로서 숯은 점차 비중이 축소되고 그 자리를 연탄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 덕에 태백, 정선, 사북 등 강원도 지역에 탄광이 성업하였다. 나중에 전기와 천연가스의 대량 공급으로 연탄의 장점이 사라지고 채광의 채산성이 나빠지면서 지금은 탄광이 대부분 폐광되고 근처 도시는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하였다.


이제 도시의 연료 자리를 숯 대신 석탄이 차지하였고, 각 가정은 기존의 온돌을 개조해 연탄아궁이를 만들었다. 탄광지역에서 철도로 탄가루를 싣고 서울 근교에 있는 연탄공장에 와서 연탄을 찍어 내었다. 원통형의 금형에 탄가루와 점토 등을 섞어서 쏟아 넣은 후 쇠막대기가 있는 펀치를 위에서 내리눌러서 연탄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원통형 연탄에 구멍이 처음에는 9개인 구공탄(九孔炭)이 개발되었다. 나중에 1 9공탄, 22 공탄 등이 나왔지만 구멍 개수와 관계없이 구공탄이라고 대중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연탄에 구멍을 뚫은 이유는 공기와의 접촉 면적을 늘려 잘 타게 하기 위해서다. 구멍이 많을수록 접촉 면적이 늘어나 화력은 세지만 타는 시간이 짧고, 구멍이 적으면 타는 시간은 늘어나도 화력이 약하고 속이 완전히 잘 안 탄다는 단점이 있다. 공장에서 연탄을 계속해서 찍어 내다가 보면 구멍 뚫는 쇠막대기가 마모되어 구멍의 지름이 작아지고 탄가루의 소모량이 늘어나서 생산자에게 좋지 않았다. 즉 쇠막대기의 수명이 있었는데 이 수명을 늘리는 것이 생산자의 과제였다.

소비자 측에서 보면 운반할 때나 불을 갈 때 구멍을 이용해서 연탄을 집게로 집어서 다룰 수 있어서 매우 편리했다. 연탄의 소비자는 두 장씩 수직으로 장착하여 밑엣것이 다 타면 새로운 연탄으로 갈아 넣어야 한다. 새 연탄으로 갈 때는 시간을 잘 맞춰야 했고 위아래 연탄의 구멍을 잘 정렬하여 불기가 새 연탄에 잘 전달되어 활활 타야 했다. 각 가정에서는 불을 꺼뜨리면 큰 난리를 겪어야 했다. 옆집에서 불이 좋은 연탄을 빌리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번개탄으로 불을 새로 붙여야 했다.


연탄이나 석탄을 태우기 위해서 쓰는 특수 불쏘시개인 번개탄은 숯이라고 볼 수 있다. 번개탄은 톱밥을 태워서 만든 숯가루와 톱밥을 뭉친 것이다. 제조공정은 폐목재를 태워서 부숴 가루로 만든 후, 발화와 착색을 위한 질산바륨과 질산나트륨 등을 첨가하고 번개탄 모양으로 성형해서 내놓는다. 불이 잘 붙도록 별도의 발화제를 섞은 연료 전용 숯이 포장되어 팔리기도 했는데, 그 연료용 숯을 가정에서 장을 담그기 위한 목적이나 제습과 탈취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연료 전용 숯은 동봉된 성분표를 잘 살펴보면 발화제가 포함됐다고 표기되어 있고, 포장에도 연료용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연탄은 석탄이 주원료이므로 광택이 약간 있는 검은색이지만, 다 타버린 연탄, 즉 연탄재는 푸석푸석 해져 있고, 살구나무 열매 빛이랄까 흰빛을 띠고 있다. 또한 연탄재는 원래 연탄에서 모양이 많이 망가지지 않았다. 연탄의 색깔 때문에 ’ 태웠을 때 그을리지 않고 희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식의 퀴즈가 나오기도 했다. 비록 연탄재가 연탄의 형태를 유지하긴 하지만 원형과 달리 밟거나 차면 퍽퍽 잘 부스러져서 옛날 어린이들은 연탄재를 발로 차서 부수면서 놀기도 했다. 연탄재를 발로 차며 노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1960~ ),<너에게 묻는다>


검은색의 연탄은 뜨거운 열을 내지만 타버린 연탄재는 흰색으로 변하여 소용이 없어져서 사람들 발에 차이고 시궁창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겨울에 눈이 온 뒤 미끄럼 방지용으로 골목길에 뿌리면 효과가 좋았다. 얼음이 꽁꽁 언 위로 살짝만 뿌려줘도 미끄러움이 사라졌다. 또 연탄재 덩어리에 눈을 묻혀서 굴리면 큰 눈덩이를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아이들은 이걸 이용해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여름 장마철에 비가 많이 왔을 때도 연탄재를 길에 뿌려주면, 물기도 제거하고, 유실된 토사도 보충하는 역할을 했다.


옛날에 동네마다 주기적으로 쓰레기 수거 차가 돌았는데, 그 당시 쓰레기의 대부분이 연탄재였다. 서울지역에서 수거하는 쓰레기를 서울의 서부인 마포구에 있는 난지도에 갖다 버렸는데 지금은 그곳에 쓰레기가 꽉 차서 작은 산을 이루었다. 그 옛날에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난지도의 쓰레기 적치장을 걱정하였다. 그곳에서 나오는 악취와 한강으로의 오염수 침출을 우려하였다. 언젠가는 쓰레기 적치물을 트럭이나 배로 실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취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날 난지도는 작은 산등성이가 되어 그 위에 각종 식물이 자라고 시민공원으로 개발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오락과 휴식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 도시의 명물이 되었다. 바로 옆에는 상암 월드컵 축구장이 건설되어 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서 메탄가스 등이 나오기는 했지만, 주위에 심각한 오염물 배출 문제를 야기(惹起)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한 연탄재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연탄재는 그 주요 성분이 사실 흙이나 다름없어서 쓰레기 산의 형성을 빠르게 하고, 오염의 정도를 현저히 줄였다고 생각한다.


매년 봄이 되면 보통 화분 분갈이를 하는데, 화분이나 화단의 흙에 연탄재를 섞기도 하였다. 이러면 흙을 따로 퍼 오거나 구매하는 수고도 덜고 쓰레기도 줄이고 흙의 양도 불리는 데 유용하였다. 또한 20세기 후반 서울에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매립 자재로 흙이나 모래 대신 쓰레기를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쓰레기가 오늘날처럼 많았던 시절이 아니고, 쓰레기의 대부분이 연탄재였고, 연탄재는 점토가 주요 성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연탄이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연탄은 저소득층 가정의 연료로 쓰이고 있다. 연탄 구매 비용을 후원하거나 배달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연탄 배달 봉사활동은 흰색 작업복을 입고 얼굴에 검댕을 묻혀 그럴듯한 인증사진이 나오기 쉬워 인기 있는 봉사활동 중의 하나이나 실제로는 효율이 나쁜 봉사활동 중 하나다. 연탄이 생각보다 무거워 많아야 두 장 옮기는 것이 보통이며, 지치면 한 장도 힘들다. 건장한 남성들조차 한 번에 몇 장씩 옮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많은 인원이 투입돼서 일렬로 서서 한 장씩 전달하는 방식으로 옮기는데 이것도 한참 하면 꽤 힘들다. 연탄 배달부들도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 그들의 밥그릇까지 뺏게 되니 별로 좋은 봉사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현재도 연탄이 사라지지 않은 탓에 ’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폐기되지 않고 연탄 만드는 데 국민 세금이 보조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1990년대 이후 주요 난방 수단이 석유 보일러로 대체되어 석탄이 난방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드물어졌지만,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기에 외화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지금도 도시 가정에서는 주력 연료로 석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탄광이 많고 무연탄이 풍부해서 배급으로 잘 나오는 편이고, 주택도 무연탄 난방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경우가 많은데, 보통 현관 앞에 연탄아궁이가 있다고 한다. 연탄만 따로 제조하는 연탄공장이 없다 보니 한국과 같은 완제품 형태의 연탄은 별로 없고, 탄가루를 직접 배급받거나 직접 장마당에서 사 온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의 가정에서는 겨울이 다가오면 김장하는 것과 배급받은 탄가루를 물과 진흙으로 개어 연탄을 만드는 것이 월동준비라고 한다. 그나마 2010년대 중반부터는 연탄을 제조하는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불편함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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