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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1. 화로의 추억

by 포레스트 강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 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 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 하고 저하고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 임화(1908~1953), <우리 오빠와 화로>(1929)


위 시는 1929년에 발표된 편지 형식으로 쓰인 임화의 시 앞부분이다. 이북으로 가서 결국은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사회주의자인 임화의 젊은 시절 작품으로 사상성을 떠나 당시의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작품 속의 ‘누이동생’은 질화로라는 시적 매개를 통해 당대의 열악한 노동 현실과 그에 대한 극복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래도 오누이의 끈끈한 정이 생생히 느껴진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정지용(1902~1950), <향수>(1927)


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 시인인 정지용이 1927년 잡지에 발표하였고, 1935년 자신의 첫 시집에 수록된 ‘향수’의 일부분이다. 대중가요 가수 이동원(1951~2011)은 평소에 시 ‘향수’를 좋아했고, 작곡가 김희갑(1936~ )에게 부탁하여 1989년 노래가 완성되었다. 이동원은 그 곡을 들고 서울대 성악과 교수인 테너 박인수(1938~2023)를 찾아가 듀엣으로 함께 부르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대중음악 작곡가의 작품이었지만 악보를 보고 훌륭한 곡이라고 판단한 박인수는 흔쾌히 승낙해서 명곡 ‘향수’가 탄생하게 되었다. 1981년에 팝가수 존 덴버와 세계 3대 성악가인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Perhaps Love'가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 쳤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동원과 박인수가 함께 부른 ’ 향수‘가 크로스오버 음악 열풍을 일으키며 명곡으로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아마도 정지용의 고향인 충청도의 평범한 농촌으로 앞 절에서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빼기 황소가 울음을 우는 풍경으로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다시 겨울밤에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우어 괴는 정겨운 모습이 다가온다. 아울러 ‘질화로, 재, 빈 밭, 밤바람 소리’ 등의 소재가 유년의 회상을 강하게 환기하는 촉매가 된다.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필자는 화로에 대한 추억이 있다. 웅덩이에 왕골을 심어 가을에 수확해서 돗자리를 짜거나 볏짚으로 멍석을 짜시는 할아버지 모습이나, 겨울철 한밤중에 볏짚으로 새끼를 꼬는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소년 시절이 아프게 떠오른다. 정지용의 시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제목처럼 향수라 할 수 있다. 향수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상실된 낙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추억 속에 살아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비애감마저 느껴지도록 노래가 지어져 있다.


화로는 숯불을 담아 놓는 그릇으로 보통 무쇠, 놋쇠, 곱돌 따위로 만들며 쓰임에 따라 불씨 보존 및 보온을 위한 것, 차를 달이는 것, 난방을 위한 것 등으로 나눌 수 있으나 몇 가지 기능을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시 농가에서 흔히 쓰던 무쇠 화로는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졌으며 좌우 양쪽에 손잡이가 밖으로 돌출되고 바닥에 발이 셋 달렸다. 화롯불은 겨울철에 방안 난방의 보조 수단이나 식사 전에는 취사 기구로도 활용되었다. 안채에 있는 부엌의 아궁이에는 보통 낙엽 마른 것을 태워 솥에서 밥이나 국을 만들었다. 사랑채에 있는 아궁이에는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여물, 뜨물, 콩, 쌀겨를 넣어 소먹이인 쇠죽을 끓였다. 그리고 화목으로는 낙엽뿐만 아니라 나뭇등걸을 태웠다. 등걸은 줄기를 잘라 낸 나무 뼈대나 밑동을 말한다.


등걸불은 나뭇등걸을 태워 타다가 남은 불을 뜻하고, 등걸숯은 나뭇등걸을 태워서 만든 숯을 말한다. 낙엽을 태우면 금방 재가 되지만, 등걸불은 화력이 좋고 오래간다. 쇠죽이 끓으면, 아궁이에 있는 등걸불을 불고무래로 긁어 담아 부삽에 올리고 끌어올려 화로에 붓는다. 화로에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a burning stick snatched from the fire) (스가랴 3:20)’ 조각으로 가득하다. 부삽은 불을 옮기는 데 쓰는 작은 삽 모양의 쇠붙이고, 불고무래는 나무로 된 고무래 정(丁) 자의 도구이다. 불을 가득 담은 후에는 그 위에 둥그레 한 불돌을 올려놓는다. 불을 오래 보존하고 그 위에 밥그릇 따위를 놓아서 식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식사 때가 되면 화로에 둥근 쇠로 된 짧은 발을 붙인 삼발이를 놓고, 그 위에 뚝배기나 쇠그릇을 올려놓아 된장찌개나 동태찌개를 끓이거나 데운다. 어떨 때는 좌우 양쪽이 좁고 길게 만든 쇠붙이로 만든 다리쇠를 화로에 걸쳐놓고 뚝배기 따위를 얹는다. 또 어떨 때는 화로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고등어, 임연수, 갈치 따위 생선을 구워 먹는다. 생선을 구워 살을 발라 먹고서 남은 뼈를 화력이 좋은 화롯불에 바짝 구워 먹기도 하였다. 화로에는 불을 헤치거나 숯덩이를 옮기는 데에 쓰는 인두나 부젓가락이 놓여 있다. 삼발이나 다리 쇠가 없을 때는 부젓가락을 비스듬히 걸쳐놓은 후 그릇을 괴어 놓고, 작은 석쇠를 화로 위에 걸칠 때는 부젓가락을 받침으로 쓴다. 화로는 춥고 긴 겨울밤에는 방안을 훈훈하게 하는 난방의 역할을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그 좋던 등걸불도 밤새 다 삭아 재로 변해 있고 주전자 안의 물은 살얼음이 되어 있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등걸불에 얽힌 또 하나의 추억은 납을 녹여 큰 납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필자의 할아버지께서는 미군 사격훈련장이었던 밭에서 탄피 쪼가리를 주워 오셨는데, 모아 두었다가 고물상이 오면 파셨다. 고물 장수는 유리병 같은 폐물은 보통 엿으로 바꿔 주지만, 탄피 같은 고물은 현금으로 대금을 주었다. 탄피 중에서 어느 부분인지는 모르지만, 탄피 중에 일부를 사랑방 아궁이에서 센 등걸불에 가열시켜 액체를 만들어 회수해서 덩어리를 만드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납덩어리였다. 납을 총알의 어느 부위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납이 비중이 높아서 즉 묵직해서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요즈음은 납 중독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 유치원이나 학교 교실 벽의 페인트나 인조 잔디에도 납 성분이 있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바로 코앞에서 납을 녹였으니 말이다. 다 무지와 가난의 소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납은 비중이 높고, 녹는점이 낮고, 화학반응의 촉매 작용을 해서 과거에 공업적으로 많이 이용하였다. 그러나 납 성분이 인체에 들어가면 몹시 해롭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은 다음에는 국가는 국민 보건을 위해 법령으로 납의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유의 정제 과정에 납 성분이 촉매 기능을 해서 정유 반응을 촉진한다고 해서 납을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동차 연료로 쓰이는 휘발유에도 납 성분이 미량이나마 혼입 되었다. 필자가 미국에 유학 간 1980년대에 미국의 주유소에는 Leaded와 Unleaded라는 표시가 있고 차량 줄이 따로 있었다. 유학 준비 중에 영어 회화 공부할 때도 주유소 안에서의 대화로 ‘Leaded or unleaded?’라는 구절을 익혀야 했다. Unleaded 휘발유가 Leaded 휘발유보다 단가가 비쌌다. 당시에도 어떤 차는 꼭 Unleaded를 넣어야 했다. 우리말로는 각각 유연, 무연 휘발유이다. 지금은 이런 선택이 의미가 없게 되었다. 관련 법으로 휘발유에 납 성분이 있으면 안 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동차 제조회사건 주유소건 모두가 다 무연 휘발유만 취급하여야 한다.


한편 납은 녹는점 즉 용융점이 낮아서 주석(Sn)과 합금을 만들면 합금의 녹는점이 낮아진다. 이 합금을 전자회로 기판(보드)에서 전선을 연결할 때 접점 재료로 썼다. 이 작업을 영어로 soldering, 우리말로 납땜이라고 한다. 선진국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웬만한 나라에서 납 성분이 있는 전자제품은 제조나 판매를 금지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부품제조업체에서는 접점 재료에 납 성분을 없앤 대체 합금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를 무연 솔더 제품이라고 한다. 무연 솔더링(lead free soldering)을 ‘무연 납땜’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다. 납이 없는 땜질을 하고 있는데, ‘무연 납땜’이라고 납땜을 언급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는 왜 종이 위에 글씨 쓰는 도구를 연필(鉛筆)이라고 부를까? 여기서 연(鉛)은 한자로 납(鈉, Lead, Pb)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원소 기호로 Pb라고 쓰는 금속을 ‘납’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연(鉛)’이라고 쓴다. 우리말에서 ‘무연 휘발유’, ‘무연 솔더링’ 등에서 무연은 ‘연기가 없다(無煙)’는 뜻이 아니라 ‘납이 없다(無鉛)’는 의미이다. 아주 옛날, 예를 들어 로마 시대에는 납으로 된 막대기를 필기도구로 사용하였다. 납은 무른 성질이 있어 단단한 물질에 어느 정도 힘을 주어 문지르면 회색의 글씨가 쓰인다. 그래서 납으로 된 필기 기구를 연필(鉛筆)이라고 한자어 문화권에서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검은 연필심(鉛筆芯)의 필기도구가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검은 재료가 바로 ‘검은 납’이라는 뜻의 흑연(黑鉛)이다. 흑연은 납과 같이 필기할 수 있는 성질이 있는데 회색이 아니라 검은색의 납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필기도구의 역사는 서양의 언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흑연의 영어 명칭은 graphite이다. 그 어원은 graph이다. 우리가 ‘그래프’라고 하면 보통 ‘그림’을 의미하지만, 연필로 끄적끄적 그린 것을 의미한다. 전기는 biography라고 하는데 종이나 양피 위에 인적 사항 혹은 생애(bio-, life)에 관한 정보를 연필 같은 필기도구로 기록해서 옥내에 보관해 두는 것이 biography이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자기가 쓴 책은 autobiography라고 한다. 빛을 이용해 기록을 남기는 사진술은 photography라고 한다. 반도체 제조기술에서 실리콘(돌) 위에 광학적으로 이미지를 새기는 것을 lithography 혹은 photolithography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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