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煙突)의 붉은 빛난 남기고 집 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름 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히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 된다.
- 이효석(1907~1942), 낙엽을 태우면서
윗글은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 ‘의 첫 문단이다. 여름에 녹색을 뽐내던 나뭇잎들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되어 땅에 떨어지거나, 풀잎은 하얗게 변하여 볼품없이 변하여 버린다. 도회지 주택가에서는 뜰의 낙엽을 긁어모아 태워버려야 한다. 작가는 그러한 작업을 요즈음 말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히 행복한) 생활로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이런 불을 모닥불이라고 얘기한다. 시골에서는 이른 봄마다 작년 가을에 쌓인 낙엽이나 풀을 태운다. 태울 때 부주의하거나 갑자기 예상치 못한 광풍이 불게 되면 간혹 큰 불로 확대되는 수도 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쥐불놀이라고 하여 짚 뭉치와 논둑을 태운다.
이렇게 낙엽을 모닥불로 태우지 않고, 부엌에 들여 아궁이에 넣고 태우면 취사용 열원이 되고 온돌을 통해 굴뚝으로 그 연기가 빠져나가는 덕에 방안이 훈훈해지는 난방의 열원이 된다. 옛적에는 시골에서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낙엽과 나뭇가지를 채취하여 집 근처에 쌓아 놓았다. 이것이 김장과 함께 대표적인 월동준비요, 겨울나기의 한 방편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산하는 민둥산이 되어갔다. 초목이 우리의 대표적인 에너지원이었으므로 산하가 헐벗게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산림의 황폐화가 가속되어 간 것은 인구의 증가로 인한 도시화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산이 가까운 지역에서는 낙엽을 긁어모아지게 등으로 운반하면 되지만, 도시에서는 낙엽이나 풀보다는 큰 나무를 베어 장작을 만들어 운반하는 게 연료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이었으리라. 이렇게 하여 산지에서 도시에 장작을 공급하는 비즈니스가 생겨났다. 조직적으로 나무를 벌채하고 장작으로 만들어 운반하는 일이 분업 체제를 유지하며 돈 버는 방법으로 성장하였다. 그 뒤 장작에 대신하여 중량 대비 열량이 더 큰 숯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숯 제조 및 유통산업이 생겨났고 큰 이권 사업이 되었다.
이러한 숯 관련 사업의 시작은 일제의 식민지 체제에서 일본인의 자본으로 가능하였다. 태백산맥이 뻗어나간 강원도나 지리산 지역같이 산이 험한 지역에 숯 제조 시설이 들어섰고, 지주계급 밑에 있던 하층민들이 그 종사원으로 채용되었다.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심산에 있는 숯막에 들어가서 일을 하여 돈을 벌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도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숯 가게의 배달부로 들어가서 돈을 벌었고 나중에는 숯 행상인으로 활동하면서 계산법을 알게 되고 일본말도 익히게 되면서 이재(理財)에 눈뜨게 되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사회적 신분이 높아진 머슴 출신들이 아들을 사범학교에 보내고 8·15 이후에 계급혁명 노선의 이론가로 등장하게 된 내용을 조정래(1943 ~ )의 대하소설 ’ 태백산맥‘의 역사성이라고 김윤식 평론가는 분석하고 있다. 1945년 이 땅에서 일본인이 물러나가고도 ’숯묻이‘는 계속되었다. ’숯묻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는 없는데, 필자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서 가끔 들었다.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어도 깊은 산속에 숯 공장은 계속 생겨났다. 이로써 우리의 산림 자원은 계속 황폐되어 갔다. 신흥자본가에 의해 숯막이 운영되었고, 가난한 농민이나 화전민들이 그 종업원으로 일하였다. 이 사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들과 결탁해야 했다.
숯은 목재를 태워 만들어진 탄소 덩어리를 칭한다. 한자어로 '목탄(木炭)'이라 하고, 영어로는 'charcoal'이라 한다. 덜 태운 목재를 또 태웠더니 잘 타더라. 재와 숯의 차이점을 요약하면, 숯은 나무가 완전히 연소되어 무기질인 재가 되기 전에 불을 꺼서 탄소가 남아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숯은 다시 불에 타고 재는 다시 탈 수 없다. 목재를 그냥 태우면 수분이나 휘발성물질이 먼저 산소와 반응해서 흡열반응이 일어나 열에너지 손실이 있지만, 탄소 덩어리인 숯을 태우면 완전연소가 실현되어 증발열로 인한 손실도 없고 연소 효율이 크게 높아진다. 숯을 사용하면 장작을 태울 때보다 연비가 향상되고 열도 더 뜨겁다. 게다가 잡다한 성분 없이 탄소만 타게 되므로 연기가 별로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
어떤 나무라도 탄화되면 숯이 될 수 있지만, 목질이 단단한 나무가 좋은 숯이 되고, 목질이 성기어 연한 나무는 전소되어 재가 되어버린다. 숯을 만들 때는 목질이 단단한 참나무를 주로 쓴다. 숯은 제조 방법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탄화된 목재를 모래 속에 묻었다가 며칠 뒤에 꺼내면 탄화된 나무의 표면에 하얀 재가 붙은 백탄(白炭)이 되고, 모래를 덮지 않은 채 식히면 흑탄(黑炭), 즉 재가 묻지 않아 새까만 숯이 된다. 숯은 북한에서는 지금도 일부 자동차나 화차의 연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저개발국가에서 석유를 정제한 가솔린(gasoline) 대신 목탄으로 자동차나 증기 기관차를 운행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숯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대신 숯가마의 용도가 바뀌고 있다. 숯가마 찜질은 전통식 숯가마에서 숯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참나무 숯을 굽는 숯가마는 숯을 꺼내고 3일 정도 열을 식힌 다음에 다시 새로 참나무 장작을 넣고 숯을 굽는다. 그 사이 공백기에 숯가마의 열기를 이용하여 일단 소금을 구운 뒤에 숯 찜질방을 운영한다. 고온 찜질을 하면 땀을 흘리게 됨으로써 혈액 순환 촉진에 도움을 주며, 관절염이나 피부 알레르기 등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숯가마에서 백탄을 꺼내서 삼겹살 고기나 달걀을 부삽에 얹어서 구워 먹는 일도 가능한데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 찜질할 때 수증기를 이용하면 한증막이 된다. 원래 한증막(汗蒸幕)은 쑥 등 한약 성분이 있는 식물을 태워 그 연기를 몸에 쐬는 것인데, 요즘은 땀을 흘리기 위한 증기 목욕 즉 사우나를 의미한다. 북유럽이나 러시아 등 추운 지방 사람들은 사우나를 즐긴다. 러시아에는 페치카(pechka)가 유명하다. 페치카 내의 뜨거운 증기 속에 장시간 머물면서 땀을 흘리다가 나와 찬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그들의 목욕 풍습이다.
요즈음은 숯을 대규모 연료로 쓰는 경우는 별로 없고, 숯을 접하게 되는 곳은 고깃집인데, 음식을 조리할 때 숯을 쓰면 숯 특유의 풍미가 조리되는 음식에 배어들어 음식의 맛을 더욱 좋게 한다. 예를 들자면, 식감은 뛰어나지만 비릿한 풍미를 지닌 곱창구이나 양구이 등이 이에 속하며, 숯의 독특한 풍미는 이러한 음식 재료가 조리될 때 재료 특유의 좋지 않은 풍미를 가려준다. 한국인들은 갈비구이 등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숯불에 구운 것을 즐긴다. 그러나 대부분 음식점은 진짜 숯보다는 압축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육면체에 도넛처럼 구멍이 있는 모양이 보통이다. 일부 저질 압축탄은 폐기된 합판이나 공사장 등에서 나오는 페인트나 접착제 따위의 폐자재 목재가 그대로 섞여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한 친구가 서울 음식점 메뉴에서 본 ’ 즉석 불고기‘가 무엇이냐고 교장 선생님에게 물어본 일이 생각난다. 그것은 숯불에 생고기를 바로 즉석에서 익혀서 먹는 것이라고 교장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옛날에는 가정과 음식점에서 불고기, 돼지갈비, 고등어 등을 숯불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 먹었다. 일부 추억의 식당에서는 지금도 불맛이라고 해서 고기의 맛을 내는 용도로 숯불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맛도 그러려니와 숯불의 연기와 냄새로 향수를 자극한다. 요즈음은 ’ 즉석 불고기‘ 같은 말은 없는 것 같고, 간혹 ’ 직화구이‘라는 표현을 내걸고 있는 음식점을 볼 수 있다. 물론 요즘도 숯불구이가 대세지만, 간간이 연탄을 쓰는 고깃집도 존재한다. 고등어구이 얘기하니, 형제로 이루어진 밴드였던 ’ 산울림‘의 다음과 같은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난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 주려 하셨나 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
- 김창완(1954~ ), 어머니와 고등어
또한 숯은 탈취, 제습, 가습, 정수의 용도로도 쓰인다. 목재가 탄화되면서 이물질이 목가스와 목초액으로 분리되고 남은 성분이 탄소의 동소체를 이룬다. 이때 동소체의 특성상 자유전자가 생기는데, 이것이 정전기에 의한 인력을 일으켜 흡착을 유발하기 때문이며, 구조상 비어 있는 공간이 내부에 많은 목탄의 모세관이 공기 정화를 돕는다. 쉽게 말해 숯이 가진 성질과 그 구조로 인하여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물질들을 잘 흡수한다. 탈취용이나 제습용으로 사용할 때는 그릇이나 바구니에 숯을 담아 집안의 냄새가 심한 곳, 가령 신발장이나 화장실 등에 놓으면 된다. 가습용으로 숯을 사용하고자 할 때는 숯을 물이 담긴 그릇에 넣으면 물이 서서히 증발(蒸發)되어 건조된다. 가습용으로 사용하면 숯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럴 때는 숯을 물로 씻어 말린 뒤 사용하면 된다. 요즈음은 숯을 넣은 가전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숯에 약품이나 증기 등을 가해 가공하면 미세기공이 더욱 많아지는데, 이를 활성탄이라고 부른다. 활성탄은 정수기나 냉장고에서 탈취제나 정화제로 쓰이며, 방독면 등 의료용으로도 쓰인다.
숯은 도화용 목탄으로 사용되는데 부드럽고 잘 퍼져서 양감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데생용 크레용의 한 가지인 콩테와 다르게 가루가 잘 날리고 문지르면 쉽게 번지므로 완성 후에는 정착액을 뿌려야 한다. 잘 부러지고 잘 묻는다는 단점이 있으나 연필형 목탄이 시판되며 어느 정도 문제가 줄어들었다. 도화용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수정하고자 할 때 식빵으로 문질러서 지웠다. 물론 지우개로도 잘 지워진다. 과거 미대 입시에 목탄 석고 데생이 있었는데, 시커먼 먼지가 날리고 주변 환경이 더러워지는 문제로 지금은 연필 데생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연필(鉛筆)은 목탄을 나무에 심으로 박아 넣은 것이다. 연필의 연(鉛)은 납(鈉)의 일본식 한자어이다. 옛날에는 필기구용으로 납 막대기를 썼는데, 이는 회색이 나고 선명하지 않았다. 목탄을 심으로 박은 연필이 등장함으로써 선명한 검은 글씨를 쓸 수 있었고, 칼로 깎아 쓸 수 있고, 들고 다니기 편리해서 연필은 획기적인 발명품이 되었다.
숯가루는 먹기도 한다. 숯은 흡착성이 높아서, 독극물을 삼킨 응급상황에 숯가루를 섭취해 흡착 및 배출을 유도한다. 숯을 먹으면 체내의 노폐물이 흡수되어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고 하나, 숯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할 수는 없다. 이런 숯의 제조과정이 위생적이지 않으면 조심해야 한다. 장류를 담글 때도 숯을 넣는다. 이유는 불순물을 흡착하기 위함으로 알려져 있다. 간장 등을 담글 때 넣는 숯 역시 참나무나 대나무 등의 좋은 나무를 써서 제조한 것으로 깨끗한 물에 잘 닦아서 바싹 건조한 후 사용해야 한다. 숯가루를 칫솔에 묻혀 이를 닦아 치아 미백에도 숯이 사용된다. 숯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를 액화하여 정제한 것이 목초액인데, 숯보다 이것이 만병통치약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목초액은 숯불 향을 요리에 입히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