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이 장작과 숯을 대신해서 한동안 전 국민의 주 연료가 되고 난 후 얼마 안 가서 그 역할이 석유로 대체되었다. 석유(石油)는 돌에서 나는 기름이란 뜻으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지층에 매몰되어 있는 액체 탄화수소 또는 이를 정제한 물질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석유는 현대 인류가 활용하는 가장 핵심적인 천연자원 혹은 에너지로 꼽힌다. 석유의 기원에 대해서는 석탄이나 천연가스와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생물의 퇴적과 급격한 지각 활동으로 땅속에 고립된 유기물에서 생성되었다는 학설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석유의 구성 물질이 주로 탄화수소인데, 탄소를 농축시키는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은 생물의 형성이기 때문에, 생물의 퇴적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또한 탄화수소에는 지질화학적인 화석(geochemical fossil)이 있는데, 구체적인 작용기가 제거됐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생전 당시 생물이 보유하고 있던 특정 물질의 분자 구조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석유가 유래한 물질이 다양한 생물의 퇴적에서 기원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채굴 기술의 발전으로 셰일(shale) 가스처럼 생물이 퇴적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지각층에서조차 석유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고 심지어 지금까지 인류가 사용한 양보다도 더 많은 양이 발견되고 있어서 생물들의 퇴적물로 과연 이 정도의 석유량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 등이 생기면서 지구 내부의 무기물에서 자연 발생했다는 가설도 있다. 지구 맨틀에 많은 탄소가 존재하고 이것을 농축시킬 지질학적 메커니즘을 생각하여 이러한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맨틀의 탄소 함량은 많다고 해도 사실 미미하고, 맨틀에 존재하는 많은 탄소가 석유와 같은 탄화수소가 아닌 광물이나 포획물로 존재하는 것을 고려할 때, 무기적 탄소를 탄화수소로 전환하여 농축되고 결과적으로 지구에서 발견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석유는 한자로 石油, 영어로는 petra(돌, 石)와 oleum(기름, 油)의 합성어인 petroleum이다. 석유의 가치가 연료로써 본격적으로 발견되기 이전에는 석유는 그 명칭에서도 나타나듯이 약품, 화장품, 접착제 등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옛날 아낙네들이 머리에 바르는 아주까리기름 곧 피마자유 또는 동백기름과 용도가 비슷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석유를 기름이라고 부르나 보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연료가 떨어지려고 하면 기름을 넣으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가스 채우러 간다고 한다. 여기서 가스는 기체라는 말이 아니라 가솔린(gasoline)의 줄인 말로써 필자는 한참 뒤 미국에 가서 알았다. 입술이나 상처에 바르는 바셀린은 석유를 원료로 만든 것이다. 바셀린은 상표명이고 일종의 석유 젤리다. 물론 석유로 만들었다고 해서 몸에 해로운 것은 없고 피부 보습이나 상처 감염 방지 등의 역할을 한다. 요즈음 나오는 대부분의 미용 관련 상품들은 알게 모르게 석유에서 추출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석유는 1860년대에 처음 발견되었고, 19세기 후반까지 석탄의 대체자원으로 쓰이다가 19세기 후반에 미국이 석유 보일러 선박 개발에 성공하면서 중요한 전략 자원으로 부상하였다. 당시 주요 열강들은 해군력 증강에 열을 올렸는데, 석유는 액체라 석탄보다 훨씬 부피를 덜 차지하는 데다 에너지 효율도 더 좋았다. 미국의 개척에 관련된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보면 석유와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을 많이 다루고 있다. 특히 텍사스 유전이 있는 미국은 열강 중에서 석유생산량이 압도적이었고 세계에서 최초로 석유를 대량 사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후 미국이 석유만으로 기동 하는 전함을 개발하여 석유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그 직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석탄 전함이 주류였다. 그 후 육상교통수단인 자동차에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이 아닌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이 채용됨으로써 석유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났다.
석유는 산출지역이 한정되어 있고 산출지와 소비지의 거리가 멀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산유 지역은 제국주의적 경쟁의 무대가 되었고 수송을 위한 철도나 선박 항로, 파이프라인은 언제나 국제 정치의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단거리는 철도로 수송하지만 수백 km가 넘어가면 파이프라인으로 수송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파이프라인을 까는 것이 너무 멀거나 제약이 있으면 유조선으로 수송한다. 미국의 경우 철도 수송이 가장 비싸고, 같은 거리의 파이프라인으로는 수송비가 1/3 ~ 1/2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다만 파이프라인은 초기 투자 비용으로 매우 큰 건설비가 필요하다.
석유 산지로는 중동 지방이 유명하지만, 이 지역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개발된 것이고 그 이전에 석유가 펑펑 쏟아졌던 지방은 미국의 텍사스 유전과 현재는 아제르바이잔인 바쿠 유전이다. 중국에는 다칭 유전을 필두로 채산성이 있는 유전이 있지만, 중국의 경제력 팽창에 따라 석유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전부 내수용이 되었다. 또한 중국의 경제적 발전은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양 석유 탐사가 시작된 후에는 북해에서 석유가 쏟아져서 쇠퇴하던 영국을 되살렸고, 생선이나 잡고 살던 노르웨이는 큰 노다지를 얻게 되었다. 석유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소련의 붕괴가 촉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북극해에서 큰 유전을 발견하여 국제 석유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였다. 이를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독일 등 서유럽에 공급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잠그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땅이나 해상의 유정에서 바로 끌어올린 석유를 우리는 원유(原油, crude oil)라고 부른다. 언론에서 수시로 보도되는 국제 유가는 보통 세 종류이다. 첫째가 두바이유로 우리나라가 들여오는 웬만한 석유는 두바이유다. 두바이에서 석유거래시장이 열려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두바이가 수도인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United Arab Emirates: UAE)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양은 그 비중이 작다. 두바이유는 그 생산량에 비해서 시장에서 영향력이 높은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다른 페르시아만 원유 가격의 기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브렌트유로 영국의 북해 쪽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말한다. 세 번째 국제 기준 석유 가격은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Western Texas Intermediate)이다. 미국은 전략적인 이유로 자국에서 생산하는 원유보다 수입하는 원유를 우선 소비한다는 말이 있다. 유정에서의 생산원가는 나라마다 차이가 큰데 중동지역은 대략 10달러 이하, 미국은 20달러, 북해 유전은 44달러 정도라고 한다.
산유지에서 원유를 수입하여 석유화학 공장에서 분별증류(fractional distillation) 방법으로 용도에 따라 다양한 석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액화석유가스(LPG, liquefied petroleum gas)는 끓는점이 30℃ 이하로 가정용 난방이나 취사용 연료로 공급된다. 가솔린, 우리가 통상 쓰는 말로 휘발유는 끓는점이 40~75℃로 일반 자동차 연료로 쓴다. 등유는 끓는점이 150~240℃로 항공기용 연료나 가정용 연료로 사용된다. 경유는 끓는점이 220~250℃로 디젤 엔진의 연료로 이용된다. 끓는점이 350℃인 중유는 선박 연료로 공급된다. 나머지 찌꺼기는 피치라고 부르는데 아스팔트나 차량용 타이어 제조용으로 활용된다. 화학공학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화학공학이라는 학문의 기원과 역사 자체가 정유 및 석유화학 플랜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화학공학은 암모니아, 비료, 석유 등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계를 가동하기 위해 그 옛날에 기계공학에서 파생된 학문이다. 필자가 통신회사에 근무할 때 대표이사께서 우리나라에서 화학공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가서 전자공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하고 석유 탐사 및 채굴하는 미국회사에 근무하다가 귀국하신 분이었는데, 어느 날 손님이 방문해서 대화 중에 어떻게 화학공학에서 전자공학으로 전공을 바꾸시게 되었냐고 묻게 되었다. 그에 답하는 대표님 말씀 중에 화학공학은 기계공학이라는 구절이 지금도 기억난다. 화학공학에서는 열역학, 열전달, 물질전달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루는데 일부분은 기계공학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화학 관련 과목을 잘하거나 관심이 많으면 대학의 화학공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이 많고, 그래서인지 그 과에는 여학생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일단 대학에 들어와서 보면 수강하는 과목에 수학이 많고 기계공학과 유사한 과목이 많은 것을 알고는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대부분의 화학공학과는 그 명칭에 생물공학이라는 말을 쓰고 유기화학이나 바이오 관련 과목을 많이 개설하고 있다.
석유는 우리의 의식주에 모두 사용되는 현대 문명에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이다. 전 세계적으로 농업, 수산업, 공업, 수송, 통신, 전력, 군수산업 등 모든 현대적 산업은 석유 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석유는 자동차, 비행기, 선박, 공장 등의 동력으로 사용되고, 제철소, 화력발전소, 시멘트, 제지, 유리 제조공장에서 열에너지 발생용으로 사용된다. 또한 석유는 의류의 원료가 되는 합성섬유, 농산물 재배에 필요한 비료, 농약 등의 물품, 스포츠용품, 전자회로 기판 등으로 쓰이는 각종 플라스틱, 합성고무, 완구, 샴푸, 입욕제, 화장품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여기서 열거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석유가 활용되지 않은 물건은 없다. 심지어 원유의 정제 후에 남는 찌꺼기인 잔여물도 아스팔트, 윤활유, 껌 등으로 활용될 정도이다.
우리는 석유 제품을 일제강점기부터 등잔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석유라는 이름으로 시판하는 등유를 시장에서 사다가 등잔에 붓고 여러 겹의 굵은 실로 된 심지에 불을 붙여 야간에 조명용으로 사용하였다. 시골에서 농번기에 초저녁에 방에 켜 놓은 등잔불을 어린아이가 자다가 깨어 잡아당겨 화상을 입거나 집안 화재로 커지는 경우가 있었다. 일부 가정에서는 고급품으로 호야라고 불린 유리벌브를 등잔 위에 씌워 바람으로부터 불꽃을 보호하고 석유 소모를 줄이는 장치를 썼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호야(火屋, Hoya)라는 이름은 당시에 유리벌브를 제조하여 공급하던 일본회사의 이름이었다. 그 회사가 오늘날에는 전자회로를 담고 있는 반도체 제조용 마스크를 제조하여 공급하고 있다. 우리 시골에서는 농어촌에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이 이루어진 1970년대 초반까지 등잔을 야간 조명으로 썼다. 필자도 고등학교 다닐 때 방학 동안에 집에 내려가면 등잔불 밑에서 공부했는데, 독일어 정관사 격변화인 der, des, dem, den 등을 외운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석유의 소비는 경제 발전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난방 수단으로 온돌을 연탄으로 달구는 대신 등유를 썼고, 석유난로와 석유 보일러가 도심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보급되고, 취사에도 활용되었다. 원유 이외에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가 수입되어 난방과 취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천연가스 운반의 필요성이 국가적인 과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1980년대에 국책 연구기관에서 다양한 문제를 검토하게 됐는데 선진국의 문서를 보면 LNG라는 용어가 자주 나왔다. 당시에는 용어도 생소한 때여서 한 연구원이 세미나 발표에서 LNG를 liquid nitrogen gas(액체질소 가스)로 해석한 적이 있었다. 액체질소는 그 연구원이 영하 몇 ℃에서 철강의 강도나 인성을 측정하고자 할 때 사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세미나 참석자가 ’ 액체질소 수요가 얼마나 된다고 큰 배로 수입까지 해 오나요?‘라고 질문을 하여 한바탕 웃은 기억이 있다.
우리 생활에 레저가 일반화되면서 휴대용 LPG(liquefied petroleum gas) 캔을 사 가서 야외에서 고기를 굽거나 밥을 짓게 되었다. 휴대용 캔에 액화석유가스를 주입하고 밀봉하는 시설을 갖춘 중소기업이 생겨났고, 휴대용 불판 폭발 사고도 종종 보도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에서 석유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은 자동차의 대량 보급과 전기 수요의 증가로 늘어난 발전용 석유나 천연가스 소비 때문이다. 원유와 LNG를 운반하는 유조선의 수가 늘어났고, 석유화학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울산, 여천, 대산 등에 석유화학 공단을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석유소비국이 되었는데, 이에 따라 공단 지역의 환경과 안전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