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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Apr 22. 2024

E5. 이스라엘

 야곱이 외삼촌 라반(Laban)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거기서 가족을 꾸려 일가를 이루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후 원래 자기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두려워서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야곱 홀로 남아 노숙한다. 야곱의 꿈에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the socket of Jacob’s hip)를 치매 위골(違骨)되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Israel)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세기 32장 26~28절). 야곱을 축복한 후 그 사람은 떠나고, 잠에서 깬 야곱이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했는데, 그 후에 야곱은 엉덩이가 위골 되어 평생을 절며 살았다고 한다.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는데,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후 세계 2차 대전 후에 가나안 지역으로 돌아와서 건국하고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칭하였다.

     

 야곱의 아들이 열둘이었는데, 이 중에서 요셉이 노년에 얻은 아들로 아버지가 그를 총애하였다. 그 형들이 이를 시기하여 그를 장사꾼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서 요셉은 이집트로 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서 명철하고 지혜 있는 요셉은 여러 위기를 넘기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때마침 세상에 기근이 들어 야곱과 그 아들들이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내려가게 되고 결국은 총리가 된 요셉의 덕에 야곱의 직계 66명이 이집트의 고센(Goshen) 땅으로 이주한다. 이집트에서 낳은 요셉의 두 아들을 포함하여 야곱의 집에서 이집트에 이른 사람의 합이 70명이었다. 고센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였던 곳이다. 고센은 하부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 동편에 있다. 이곳은 비교적 많은 강우량과 나일강의 관개시설로 이집트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었지만,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침입자의 공격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세월이 또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고, 야곱 즉 이스라엘 후손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이집트 사람과 충돌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 아래 집단으로 이집트를 빠져나온다. 이 과정이 성경책 출애굽기(Exodus)에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구원 계획을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집트에 내려지는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를 대표하는 태양신의 아들 바로와 여호와와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으로 우주적인 질서를 보존해야 하는 바로의 책임은 하나님이 내린 재앙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무너졌다. 필자가 어렸을 때 저녁에 할머니 손에 이끌리어 옆집에 마을을 가면 그 집 할머니가 옛날얘기를 해 주시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모세가 어릴 적 성경 이야기였다. 그분이 1800년대 태생이고 동네에 교회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초기 선교사가 지은 책을 통하여 그 얘기를 읽고 구술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빠져나온 후에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며 시나이반도의 광야지대로 진입한다. 시나이반도는 1967년 ‘6일 전쟁’ 중에 이스라엘이 점령했으나 그 뒤 반환하여 지금은 이집트 영토로 되어 있다. 시나이반도는 네게브 지역의 남부와 홍해의 두 해협이 이어지는 거대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시나이반도 동쪽에는 아카바만이 있고 서쪽에는 수에즈 운하가 시작되는 수에즈만이 자리하고 있다. 시나이반도 남쪽 끝에서 지중해까지의 거리는 약 380km이며, 수에즈 운하에서 사해까지의 거리는 약 260km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본향으로 가는 여정을 직선거리가 아니고 시나이반도를 돌아가는 가장 먼 길을 택한 데는 조직화되지 않은 군중이 군사적으로 예민한 지역을 통과할 수 없다는 지도자의 판단과 궁핍한 가운데 40년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절대자의 판단에서 나왔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시나이반도는 지형과 지질적인 측면에서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양분된다. 남쪽과 동쪽 그리고 서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북부 시나이지역은 중앙부를 거대한 분지로 만들었다. 남부 시나이 지역은 대단히 높은 산지로 되어 있다. 남부 지역은 고대부터 구리나 청록색의 보석 등 다양한 광물질이 생산되는 지역이었다. 남부에서 가장 높은 지역은 2,600m의 ‘제벨 카타리나’를 최고봉으로 하고 있으며, 근처에는 2,200m의 ‘제발 무사’ 곧 시내산이 있다. 수에즈 운하에서 300km 떨어진 시내산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50여 일 동안 여행한 끝에 도착한 곳이다. 성지순례단은 버스를 타고 수에즈 운하 근처를 통과하고 몇 곳의 유적에서 내려 구경하고 시나이반도를 서너 시간 달려 반도의 남쪽 끝을 돌아 밤에 시내산 근처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음날 미명에 일어나 시내산 등반에 나서서 일출을 산 정상에서 보았다. 시내산 정상에는 4세기경에 처음으로 세워진 기념교회가 있었다. 현재 정상에 남아 있는 교회 건물은 1934년에 재건하여 ‘삼위일체 기념교회’라고 부른다. 위 사진은 시내산 정상에 있는 기념교회의 모습이다, 정상에서 하산하면서 파란 하늘과 허연 바위산을 볼 수 있었다. 도중에 아론과 장로들이 모세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고 전해지는 장소도 보았다. 2세기 중엽 로마의 박해가 극심하여 기독교인들이 은둔자의 길을 택하게 되고 시내산 일대도 이러한 은둔자들이 몰려들어 집단을 이루며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성캐더린 수도원이 성립되었는데,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자 수도원 내에 기념교회와 성채가 지어져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십자군 시대나 오토만제국 시대에도 이 수도원은 보호되어서, 1500년 이상 된 고대 성서 사본들이 여기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누웨이바 지역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견되는 유적지를 들르고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경도시인 타바(Taba)에 가서 기다리다가 이스라엘 땅에 입국하는 수속을  밟았다. 조금 긴장한 가운데 이스라엘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로 다른 버스를 타고 요르단에 입국하여 호텔로 들어갔다.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에시온 게벨 혹은 에일랏이라고 부르고, 요르단에서는 이곳을 아카바라고 부른다. 에일랏만(아카바만)은 남북의 길이가 160km이고, 동서의 너비가 19~27km로서 이곳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네 나라가 국경을 서로 접하고 있다. 아카바만의 해안선 길이가 335km인 반면에 이스라엘 쪽은 11km에 불과하여 1957년 아랍연맹이 자기들의 영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갈등과 대립이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 지역은 일 년 연중 높은 기온을 유지하기 때문에 관광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 다음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요르단 땅을 북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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