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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Apr 29. 2024

E7. 사사

 여호수아(Joshua)의 영도 아래 요단(Jordan) 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에 나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정도 교두보를 형성한 후,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위 사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인 요르단 지역의 느보산 정상에 있는 나무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인 정복기의 지도자는 에브라임 지파 출신 여호수아였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 먼저 여리고(Jericho) 성을 무너트린 후 아브라함(창세기 12장 6절)과 야곱(창세기 33장 18절)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처럼 세겜(Shechem)으로 갔다. 자연스럽게 비옥한 땅인 사마리아 산지를 야곱의 두 번째 아내이자 사랑했던 라헬의 후손인 에브라임(Ephraim), 베냐민(Benjamin), 단(Dan)과 므낫세(Manasseh) 지파가 기업으로 받았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는데, 요셉의 두 아들 이름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이다. 단은 라헬의 여종 빌하가 낳은 야곱의 아들이었다. 구약 성경 여호수아 24장에 보면, 이 시대 행정 중심지는 세겜이었다. 여호수아 시대부터 사무엘 시대의 도래 이전에 에브라임 산지를 포함한 사마리아 산지는 이스라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나머지 지파들은 사마리아 산지를 제외한 다른 지역들을 기업으로 받았다. 갈릴리 산지 지역을 기업으로 받은 스불론(Zebulun), 잇사갈(Issachar), 아셀(Asher), 납달리(Naphtali) 지파는 레아와 그 여종의 후손이다. 그리고 요단강 건너 지역을 기업으로 얻은 지파는 므낫세(Manasseh), 갓(Gad), 르우벤(Reuben) 지파였다. 에브라임의 친형이었던 므낫세 지파는 인원이 많다고 사마리아 산지와 요르단 지역 두 군데에서 기업을 받았다. 르우벤과 갓 지파는 레아의 후손들이다. 한편 유다(Judah) 지파는 ‘닫힌 지역’인 유다 산지와 네게브 지역을 기업으로 얻었다. 시므온(Simeon) 지파의 기업은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 속하였다. 여호수아 14장 13절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분배 작업 이전에 갈렙(Caleb)에게 헤브론(Hebron)을 기업으로 주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이 묻힌 무덤 곧 이들의 선영이 있는 곳이었다. 유다 지파인 갈렙은 헤브론이 열악한 지역임을 알면서도 이 지역을 기업으로 선택해야 했다. 광야에서 천막생활 한 그의 조상들의 삶을 알았지만, 갈렙은 어쩔 수 없이 안 좋은 곳을 선택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 별로 분배받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기존의 거주민과 충돌하였다. 이집트에서 나와 40년 동안 광야에서 집단으로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력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능가할 수 없었던지 현지인과 혼인하며 동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사(士師)에 의한 통치가 200여 년 동안 이루어졌다. 처음 성경을 접했을 때 ‘사사기(士師記)’가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사가 음악이나 문학의 대가 밑에서 사사(師事) 받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떤 일에 도움받고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사사(謝事)인가? 그 뒤에 사사가 영어로 ‘Judges’ 임을 알게 되었고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가톨릭 이른바 구교(舊敎)에서 쓰는 구약성서에는 ‘판관기(判官記)’라고 되어 있다.

      

 여호수아 시대에 활약한 유다 지파인 갈렙의 조카 웃니엘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자 사사 드보라, 기드온, 삼손 등 12명의 사사가 과도기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였다. 사사들은 여러 지파에서 나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왕정 시대를 맞기 전 베냐민 지파에서 사사인 사무엘과 첫 왕 사울이 나왔다.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은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사무엘 상’ 7장 15~16절에 보면 에브라임 산지를 중심으로 순회하면서 사사 일을 수행했다. 다윗 왕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유다 지파가 실세가 되었다.

     

 각 지파들에 대한 가나안 땅 분배 방식은 창세기 33장에서 보듯이 그들의 조상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자기 슬하를 세 무리로 분류한 사실과 유사하다. 첫째 무리는 첩들과 그 후손들을, 둘째 무리는 본처 레아와 그 후손들을, 마지막 세 번째 무리는 그가 사랑했던 라헬과 그 후손들이었다. 왕정이 시작될 때까지 야곱의 본처인 레아의 후손들은 둘째 처인 라헬의 후손들로 구성된 지도력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왕정 전까지 실질적 통치는 에브라임 지파에서 이루어졌는데,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로서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이면서 공식적인 장자가 되었다. 역대상 5장 1절의 기록에 의하면 르우벤이 야곱의 장자(長子)지만 그의 실수로 인하여 장자의 명분이 요셉의 자손에게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왕은 유다 지파에서 배출된다는 창세기 49장에 나오는 야곱의 예언 같은 유언이 있었다. 유다가 영적 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갈렙은 헤브론이 열악한 지역임을 알면서도 기업으로 선택했다.

     

 유다 지파의 큰 어른이었던 갈렙의 선택은 한편으로 어리석어 보였다. 그러나 솔로몬 왕 사후 이스라엘 민족이 분열된 후, 남방의 유다 왕국보다 북방의 이스라엘 왕국이 약 140년 앞서 멸망당하였고, 그 이후 이스라엘이라는 말 대신에 유대 혹은 유대인이라는 말이 대세가 되었다. 예수가 유다 지파에서 출생하게 되면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게 되었다.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룻(Ruth)기에서 유다 지파 출신 보아스가 이방인인 룻과 혼인을 통해서 다윗이 나왔고 예수는 그 후손임을 신약성경에서 밝히고 있다. 이방인 룻이 유다 지파의 보아스와 혼인할 때 유다 지파가 고대하는 하나님 나라가 마침내 세워질 수 있다고 룻기는 예언한다.

     

 유다 산지의 특징은 단단한 석회암 지역이란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이와 유사하다. 목이 단단하게 굳어질 대로 굳어진 유대인들은 자신의 동족 출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배척했다. 혈통적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목격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이를 배척함으로 스스로 이 은혜에서 제외되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탕자의 비유’가 이를 잘 증언한다. 어떤 부자의 둘째 아들이 북방 이스라엘 같은 이방인이라면 첫째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 옆에 남았으나 결국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유대인이다. 유다 지파 곧 유대인은 메시아를 배출시키는 역할만 한 후 스스로 메시아가 성취할 구원에서 제외되었다. 마태복음 19장 30절의 예수 말씀처럼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되었다. 그래도 결코 유대인은 버려지지 않는다. 구약 성경 호세아 1~2장과 에스겔 37장은 언젠가 에브라임과 유다가 하나가 될 것을 예언했다.

     

 사사기를 읽다 보면 3장 19절에 ‘돌 뜨는 곳’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무슨 채석장(採石場)이려니 하고 읽어 나갔는데, 영어 성경을 보면 ‘idol’이라고 나온다. 당시에 우상을 새기는 돌이 특별하였다고 생각되고 현지어로 우상을 그렇게도 불렀다고 생각된다. 이집트의 유적에서 사람이나 스핑크스의 얼굴 동상에서 코와 귀 등이 파괴됨을 본 적이 있다. 유적지가 한때 기독교가 우세했던 시기에 우상파괴라는 의미 부여로 석상의 코와 귀 등을 훼손한 것 같다. 당시 기술이 월등했더라면 그 우상들을 쓸어버렸겠지만, 얼굴 정도만 훼손해서 오늘날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어쨌든 당시에 그 지역에서 돌로 우상을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옛말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말이 있었다. 사(士)란 나라에서 공부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고 과거 시험 같은 제도를 주관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선발된 사람들을 말하는데, 사회지배 계급으로 온갖 권력을 누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반 평민은 생업에 종사하게 했는데, 그중의 으뜸이 농사(農事)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다음이 공인(工人), 상인(商人)의 순서이다. 그사이 사회가 커지고 복잡하게 됨으로써 여러 가지 직업이 생기고 그 순서도 변천이 있었다. 사회의 권력 구조가 바뀌어도 일반인들의 사(士)가 되기 위한 노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학문이나 직업상 알아야 할 정보가 늘어나서 그 직업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공부나 경력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학사(學士), 석사(碩士), 박사(博士) 제도가 생기고, 기사(技士), 회계사(會計士), 법무사(法務士)니 하는 명칭이 생겨났다. 옛날에는 사법서사(司法書士)라는 직군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없어지고 행정사(行政士) 등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젊어서는 이렇게 ‘사’ 자를 따기 위하여 노력해도 나이 들어 은퇴하면 귀농•귀촌하게 되어 농자(農者)가 되는 게 대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말로 ‘사’ 자(字)로 끝나는 직업이 돈 많이 벌고 결혼상대자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알아보니 한자 말로 다 달랐고,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판사(判事), 검사(檢事) 하고 변호사(辯護士)가 달랐다. 의사(醫師), 교사(敎師)에게는 ‘스승 사’ 자(字)를 쓰고 있다. 옛 외국영화에 ‘사관(士官)과 신사(紳士)’라고 있었는데 ‘토관과 신토’라고 한자어를 잘못 읽었다는 유머도 있었다. 그 영화의 영어 제목이 ‘An Officer and A Gentleman’이라 군인 장교를 사관이라고 하나 본데 사관학교라는 명칭에도 보인다. ROTC는 Reserved Officer Training Corps의 약자라고 배웠고, 초등학교 교사 양성하는 교육대학이 옛날에 2년제일 때는 Officer 대신에 Non-officer를 써서 RNTC라는 제도가 있었나 본데, 교련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하면 하사관(下士官)으로 병역을 필한 것으로 쳐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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