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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May 09. 2024

E14. 헬몬산과 요단강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라.' (시편 133편 3절)

     

 헬몬산(Mt. Hermon)은 이스라엘의 최고봉으로 높이가 2,814m이다.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같은 존재이다. 헬몬산이 높이 융기되면서 동반적으로 주변에는 분지 등과 같은 낮은 지역이 생겼다. 헬몬산이 있는 지역을 골란고원 혹은 바산이라고 부른다. ‘평평한 땅’이라는 의미의 ‘바산’은 그 명칭 자체가 암시하듯이 산지의 정상이 평평하게 이루어진 고원지대이다. 산지의 평균 높이는 600m 정도이며 북쪽과 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고, 남쪽과 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이런 지형 조건 때문에 지중해로부터 불어오는 비바람의 영향을 받아 바산은 강우량이 높은 지역이 된다. 그 결과로 바산 지역과 연결된 사막은 다른 지역과 달리 동쪽으로 훨씬 들어간 곳에서 시작된다. 바산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높은 산지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을 막아 주어 농작물 재배에 피해를 줄여 준다. 이런 요인과 현무암이 두터운 이 지역의 비옥한 토지로 인하여 바산은 고대로부터 레반트 지역에서 유명한 곡창지대였다. 특히 바산의 밀 농사는 로마제국 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시편 22편 12절의 ‘바산의 힘센 소들’이라든지 아모스 4장 1절의 ‘바산 암소들’이라는 성서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바산은 목축지로도 유명하였다. 오늘날에도 바산에서는 소들을 대량으로 방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다.

     

 헬몬산 지역에서 연간 약 1,500mm 이상의 강우량은 대부분 눈으로 내린다. 겨울 동안 내린 눈은 이른 여름철까지도 녹지 않고 쌓여 있다가 여름이 되면서 서서히 녹게 되는데 그렇게 녹은 물은 지표면 아래로 스며들어 헬몬산 주변의 샘들을 통하여 다시 분출된다. 이러한 물은 동서남북으로 흘러 나가게 되는데, 남쪽으로 흐르면 이 샘들이 요단강의 수원지가 된다. 역사적으로 헬몬산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모세나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헬몬산은 정복해야 할 가나안의 최북단 지역이었다. 헬몬산 주변의 우거진 숲들, 산기슭에 있는 여러 수원(水原), 눈으로 덮여 있는 정상의 모습 등은 고대 시대부터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경외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성경에서 헬몬산과 주변의 장소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럴 것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에 거대한 신전이 세워진 ‘단(Dan)’이나 헤롯 시대에 로마 황제 숭배 신전이 있었던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 등이 모두 헬몬산 기슭에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긴 강인 요단강은 헬몬산 기슭에서 발원하는 세 개의 강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세 강의 이름은 ‘나할 헬몬’, ‘나할 단’, ‘나할 스닐’이다. 훌레 계곡의 북동쪽에 있는 헬몬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나할 헬몬’은 헬몬산 기슭의 바위들 사이를 뚫고 나오는 거대한 샘에서 시작된다. ‘나할 헬몬’의 주변에는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들로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헬라 시대 이곳에는 ‘판’이라는 자연신을 숭배하는 신전이 세워졌었는데, 이런 연고로 현재 이곳을 ‘바니아스’라고 부른다. 신약시대 이 지역에는 ‘가이사랴 빌립보’가 있었다. 좁은 협곡을 따라 흐르는 나할 헬몬은 경사가 급한 지역에서는 폭포를 이루기도 한다. 이 강은 남서 방향으로 흐르면서 ‘나할 단’을 만나고 다시 ‘나할 스닐’을 만나게 된다. ‘나할 단’은 수정같이 맑은 샘물이 모여서 흐르는 하천으로서 이 물은 눈이 녹아 내려온 것이어서 한 여름철에도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다. ‘나할 스닐’은 큰 규모의 샘물에서 시작되는 두 강과 다르게 지표면 물줄기이다. ‘나할 스닐’은 여름철에 유량이 급격히 줄어들며 겨울철 우기에는 갑작스러운 빗물의 유입으로 홍수가 나기도 한다.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를 가운데 두고 상부의 요단강과 하부의 요단강으로 나눌 수 있다. 강물이 발원하는 헬몬산 기슭에서 훌레 호수를 거쳐 갈릴리 호수까지 이르는 상부 요단강은 그 길이가 약 90km이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 이르는 하부 요단강의 길이는 약 320km가 된다. 보통 요단강이라 하면 하부 요단강을 일컫고 있다.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와 사해 사이인 요단강 계곡을 흘러간다. 결국 요단강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을 흐르는 강인 셈이다. 요단강의 직선 길이는 105km 정도이지만 요단강의 실제 길이는 무려 320km나 된다. 이는 요단강이 굴곡이 심한 지역을 흐르면서 사행천(蛇行川)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단강 계곡은 여러 지질시대의 융기 현상이 있을 때마다 심한 침식작용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계곡 내에 계단 형태의 독특한 지형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질 현상은 요단강 강바닥을 중심으로 양편 지역에 고르(Ghor), 갓다라(Quattara), 조르(Jhor)라고 하는 세 가지 지형적 구조를 만들었다.

     

 고르는 요단강 계곡 주변의 양쪽 산지에서 강 쪽으로 형성된 넓고 평평한 지역이다. 산지로부터 물 공급이 가능한 고르 지역에서는 농작물 재배가 가능하며 목축을 위한 초지도 형성되어 있다. 요단강 계곡에 있는 중요 거주지들은 고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벧산 근처와 여리고 근처의 고르 지역은 이 지역을 흐르고 있는 수원을 이용하여 옛날부터 훌륭한 농경지를 만들었다.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다른 고르 지역들은 건조하고 황량한 모습을 띠고 있다. 고르 지역보다 한 단계 낮은 지역인 ‘갓다라’는 ‘계단’이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파생되었다. '갓다라'는 사막처럼 건조한 지역이며 대부분이 울퉁불퉁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농작물 재배는 거의 불가능하다.

     

 조르는 요단강 계곡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요단강 자체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요단강은 조르 지역을 흐르는 강이라고 볼 수 있다. 요단강의 충분한 수분과 요단강 계곡의 아열대성 기후로 인하여 조르 지역에는 울창한 삼림이 형성되어 있고,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요르단의 메다바에서 발견된 고대 이스라엘의 모자이크 지도에서도 배회하는 사자의 모습이 요단강 계곡 안에 그려져 있다. 조르 지역은 겨울철과 봄철의 우기에 자주 범람하는 지역이다. 성경 여호수아 3장 15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가 ‘모맥 거두는 시기’인데 이때는 요단강 언덕에 물이 넘친다고 하였다. 이는 조르 지역으로 넘쳐흐르는 요단강의 범람을 지적한 것이다.

     

 요단강 계곡에 거주하였던 사람들이 서로 가까운 지역 안에 살면서도 요단강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은 요단강 주변에 형성된 갓다라와 조르 지역 때문이었다. 요단강은 전체 길이가 긴 강이지만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따라서 강을 건너는 일은 우기가 아닌 경우 별로 어렵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서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이 다메섹 주변의 강에 비하여 요단강을 혹평하는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요단강 지역을 통과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전적으로 요단강 주변의 삼림지대인 조르와 지형이 험하고 건조한 갓다라 지역 때문이었다.

     

 요단강이 요단강 계곡을 통과할 때 양편 산지에서 요단강으로 유입되는 물줄기로 여러 개의 강이 있다. 그중에서 중요한 강들은 서쪽의 하롯강, 파라강, 와디 켈트와 동쪽의 야르묵강, 얍복강 등이다. 하롯강(Nahal Harod)은 사사 기드온(Gideon)이 미디안 족속을 맞아 싸우기 위하여 진을 쳤던 하롯 샘에서 발원하는 강이다. 이 강은 길보아 산 밑의 긴 통로인 동부 이스르엘 골짜기를 거쳐 요단강으로 유입되는데, 이 지역의 중심도시로 유명한 벧산(Beth Shan)을 거친다. 파라강(Nahal Fara)은 동부 사마리아 산지에서 발원하여 요단강으로 유입되는 상시천(常時川)이다. 파라강의 수원지는 세겜의 북쪽으로 있는 두 샘이다. 와디켈트(Wadi Qilt)는 유대 광야를 흐르는 물줄기로서 예루살렘의 북쪽에서 발원하여 여리고 근처에서 요단강으로 유입된다. 야르묵강(Nahal Yarmuk)은 요단강 동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강으로 바산 지역의 샘들에서 발원하여 골란고원과 길르앗 산지 사이를 갈라놓는 좁은 계곡을 따라 흘러서 갈릴리 호수 남쪽에서 요단강으로 유입되고 있다. 현재는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세 나라의 국경이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얍복강(Nahal Yabbok)은 요단강 동편 지역인 길르앗 산지를 가로질러 요단강으로 유입되는 강이다. 이 강은 800m 높이의 산지에서 해저 300m의 요단강 계곡으로 상당한 높이 차이가 있는 지역을 흐르고 있다. 이 강이 흐르고 있는 계곡은 고대로부터 요단강 동편에서 서쪽의 사마리아로 올라가는 중요한 도로가 형성되어 있었다. 야곱도 외가가 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땅으로 들어올 때 이 강이 흐르고 있었던 계곡을 따라 여행하였다. 야곱은 자기의 쌍둥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이곳 얍복강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창세기 32장 22~33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기독교 장례식에서 가끔 듣는 한영찬송가 291장의 후렴 중에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천국 갈 때 요단강을 건넌다는 성경 구절은 없다고 한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생각해 보자는 다짐일 것이다. 이는 외가에 가서 일가를 이루고 난 후 그 식솔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심정을 이해해 보자는 취지라고 생각해 본다.

      

 헬몬산에 맺힌 이슬이 모여 물줄기가 되어 요단강으로 들어오고 요단강 계곡을 따라 흐른 후에 사해에 유입된다. 사해 이후에 물이 빠지는 구멍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요단강의 물은 건조하고 더운 지방을 흐르는 도중에 증발하거나, 결국 사해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사해는 땅속의 소금 성분이 축적되어 염해가 되고,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은 호수 즉, 사해(Dead Sea)가 된다. 이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변해버리는 캘리포니아주의 어느 지역과 ‘죽음’이라는 말을 공유하게 되는 까닭이다. 위 사진은 케이블카를 타고 마사다에 올라가면서 아래의 사해 부분을 찍은 것이다. 얼마나 황량한 땅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기술을 이용하여 그 죽음의 땅을 삶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의 경우 로키산맥의 얼음이 녹은 물을 관개시설을 설치하고 끌어와서 각 도시의 식수원으로 쓸 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계곡에 과수원을 만들고 각종 채소와 쌀들을 생산해 내는 커다란 농장 지대를 만들었다. 사막으로 불모지였던 애리조나(Arizona) 주 등에 라스베이거스(Las Vegas) 같은 도시를 새로 건설하고 항공산업과 영화산업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이스라엘에서도 요단강 물을 끌어오는 관개시설을 건설하여 요단강 주변에 농지를 확대하고, 사해 주변에는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해변의 뻘 등을 활용하는 제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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