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 모닥불과 촛불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다.

by 포레스트 강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 박인희(1945~ ) <모닥불>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촛불 하나 이렇게 밝혀 놓으셨나요?

어느 별 어느 하늘이 이렇게 당신이 밝혀 놓으신 불처럼 밤이면 밤마다 이렇게 타오를 수 있나요?

- 송창식 (1947~ ) <촛불>


# 모닥불부터 촛불까지 : 일상을 채우고 역사를 만들어온 '불’


박인희의 노래에서 모닥불은 덧없는 우리 인생의 비유이고, 송창식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 사랑의 빛을 의미한다. 널리 사랑받은 대중가요 속에서 모닥불, 촛불이 각각 인생과 사랑의 비유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이것들이 너무 익숙하고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은 불의 활용에 그 시작과 발달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이를 적절히 생활에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문화가 발전되었다.


모닥불은 불을 열원으로 곡식이나 고기를 익혀서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만드는 취사 용도로 발전되었다. 인류가 문화적인 활동을 하면서 모닥불은 취사 목적 외에 캠프파이어(camp fire)처럼 정감적이며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회적인 도구로 쓰이고 있다. 지금은 캠핑에 가서 모닥불은 피우지 않고 차박 매트를 설치하고 석탄이나 석유를 이용하여 그릴에 불을 피우고 바비큐를 먹고 이른바 불멍을 즐기는 것이 유행하고 있지만, 모닥불은 원래 건초나 낙엽 등을 태워서 피웠다. 매캐한 연기가 나서 불편을 끼치지만, 주위를 들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감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분위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촛불은 어두움을 밝히는 조명의 목적으로 발명되었으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촛불은 우리 언어와 사고에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유대인들이 축일 등에 촛불을 밝히는 것이나, 문화적인 행사에서 전등을 모두 끈 채 촛불을 밝히고 선서나 다짐을 시행하는 행위도 모두 이런 유형에 들겠다. 조명의 수단이 횃불, 등잔불, 촛불, 백열전등, 형광등, LED 등등으로 발전해 왔지만, 그 문명 기구들이 불을 만드는 재료나 원리는 달라도 기본적인 활용도는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촛불이 실내용이라면 야외용으로 횃불을 들 수 있다. 횃불은 밖에서 어둠을 밝히는 게 원래의 목적이지만, 계몽적이고 선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올림픽 등 체육행사 전에 이벤트로 치르는 성화 릴레이 행사에는 적정한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불씨를 유지하며 나라를 건너고 전국을 돌며 봉송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전국 각지에 봉수대를 세우고 봉화(烽火)를 올려 연기를 통신시스템으로 이용하였다.


내비게이션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던 옛날에는 밤에 등대에서 반짝이는 등댓불은 지나가는 선박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도와주는 고마운 불빛이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야간에 배를 운전하는 선원들에게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안심하게 하는 역할을 하거나, 날이 좋은 대낮에는 육지의 관광객들에게 사진 찍기 좋은 명소 역할을 한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캐슬힐 등대, 뉴포트 서쪽 끝에 자리한 이 등대는 그 옛날에 선원을 항해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했다. 요즘에는 일반인에게 그 등대가 공개되지는 않지만, 부지 근처까지는 갈 수 있어 뉴포트 다리와 캐슬힐의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등대는 1988년 미국 국가사적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등대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서해안 대부도 옆 오이도에는 빨간색 등대가 상징물로 세워져 있고, 제주도 서귀포에는 50여 년 전에 세워진 부부 등대가 있다. 등대가 야간에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대낮에 관광객이나 드론에게 자신의 위치와 자태를 뽐내는 신세가 되었다.


요즘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촛불은 생일 케이크의 초일 지도 모르겠다. 생일에 생크림을 잔뜩 바른 케이크 앞에서 주인공의 생일을 축하하고 잘라 나눠 먹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할아버지 생신에 삼촌이 사 온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둘러앉아 나이를 갈음하는 촛대를 꽂고 ‘생일 축하합니다. ~~’ 노래를 합창하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입김을 호 하고 불어 촛불을 꺼 버리는 것이 어린이들에게는 참이나 재미있나 보다. 촛불 불어 끄는 데에 큰손녀보다 조금 늦은 작은 손녀가 못내 아쉬워하고 기분이 나빠 보인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얼른 초에 불을 다시 붙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못 분 작은 손녀에게 기회를 준다. 생일 촛불은 소중한 이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에 작은 이벤트로서 그 자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작지만 소중한 촛불부터 모닥불, 봉화, 등댓불까지 '불'은 처음 인류에게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삶 곳곳을 채우고 역사를 만들어왔다.


# 불의 색, 세계의 색


우리는 흔히 불은 빨간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촛불이나 모닥불처럼 소박한 재료를 연료로 하는 경우가 아닌, 석탄이나 석유로 연료를 삼는 경우, 주위는 더욱 뜨거워지고, 불빛은 빨강을 넘어 파랑이나 보라색을 띠게 되고 흰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구리나 철을 녹이는 용광로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열기와 눈부심을 경험한다. 불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거기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이 빨강에서 녹색, 청색으로 바뀌고, 어떤 경우에는 여러 종류의 빛이 섞여서 백색으로 보이게 된다.


빛이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은, 색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우리는 언어생활에서 노랑, 빨강, 오렌지색은 따뜻한 색으로 파란색은 차가운 색으로 묘사하고 있다. 빨강이 제일 정열적이고, 노랑은 포근하며, 녹색은 칙칙하고, 청색은 차가운 느낌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옛날에 나무나 낙엽 정도를 태워서 도달하는 불의 색깔이 빨강 정도였고 숯 정도를 때우면 그 불길이 활활 빨갛게 타고 뜨겁게 느껴져서 정열적으로 느끼지 않았나 생각된다. 노랑이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은 수선화, 개나리, 유채꽃 등 봄에 피는 꽃들이나 국화, 해바라기 등 따뜻한 가을 햇살에 피는 꽃들의 색깔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녹색은 무언가 칙칙한 느낌을 주는데 여름에 축 늘어진 이파리를 연상하게끔 하고 한자어에서는 안개의 색깔을 녹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청색은 무언가 차가운 느낌을 주는데, 여름에 푸른 해변으로 피서를 가고, 추운 겨울의 맑은 하늘이나 바다가 더욱 푸르게 보이고, 차가운 물이나 얼음을 청색으로 묘사하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어떤 신령한 물체에서 빛이 방출된다는 믿음도 아주 오래전에 형성되었다. 불교에서 보살의 몸 뒤로부터 빛이 내비치는 것이나 천주교에서 성화 가운데 성인을 헤일로(halo)라고 부르는 원으로 감싼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후광(後光)이라고 부르는데, 뒤에서 나오는 빛이라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보살이나 성인이라도 자체 발광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후광은 비유적으로 어떤 사물을 더욱 빛나게 하거나 두드러지게 하는 배경을 의미한다.


이렇듯 열과 빛, 빛과 색은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우리 삶 깊숙이에서 작용하고 있다.


#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태양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에는 겨울에 우리들의 교실이나 사무실에 라디에이터(radiator)라고 부르는 당시에는 꽤 고급인 난방기구가 있었다. 보통 라디에이터는 창문가 벽에 조금 떨어져 설치되어 있는데, 스위치를 켜면 뜨거운 물이 관을 통해 들어오고 온수의 열기로 방의 공기가 데워지고 방 안이 훈훈해진다. 이같이 열을 발산하는 장치를 라디에이터라고 불렀는데, 뜨거운 물체에서 빛이 방출되는 현상을 '라디에이션'이라고 부른다. 물리학에도 ‘라디에이션’이라는 용어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물체가 뜨거울수록 그 물체에서 더욱 짧은 파장의 빛이 나온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나온 빛을 물리학적으로 라디에이션(radiation)이라 부른다. 복사(輻射) 혹은 방사(放射)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 어떤 물체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라디에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20세기 들어 우리 인류가 깨달은 아주 획기적인 개념이다.


그렇지만 이 현상은 지구가 생긴 후부터 언제나 존재해 왔다. 우리 인류가 오랫동안 경험하고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라디에이션은 바로 태양으로부터 온다.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에 있는 아주 거대한 라디에이션 소스(radiation source)로서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그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생명현상과 대부분의 에너지 현상은 바로 태양으로부터 오는 복사 때문이다. 태양계가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 지구는 태양의 영향 아래에 있으며, 인류가 지구를 점령한 것은 태양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태양의 존재와 역할은 경이롭다.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다."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 전도서 1:9


이 문장에는 이 세계의 과학적 원리가 그대로 담겨있다. 해는 모든 에너지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촛불부터, 생소하고 심오해 보이는 모든 빛은 결국은 모두 해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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