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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Jan 27. 2023

A7. 흑(黑, black)

블랙 벨트

태권도나 유도 같은 무술에서는 도복을 입고 훈련을 한다. 무술 실력에 따라 도복에 색깔이 있는 띠를 두른다. 요즘은 주택가에 태권도 학원이 있어서 어린이들이 건강관리 차원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 필자 손녀도 태권도에 흥미를 느껴 처음에는 자신이 하얀 띠라고 하더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란 띠, 파란 띠, 빨간 띠 순으로 올라갔다. 실력에 따른 띠의 색깔 규정이 협회 차원에서 있나 본데, 동네 학원마다 적절하게 변형해서 관리하나 보다. 외손녀에게 알아보니 비슷한 색깔 등급이 줄넘기나 수영 학원에도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시키는 방법으로 쓰지 않나 생각된다. 어쨌든, 태권도에서는 초보자에게 흰색을 최고의 실력자에게 흑색 띠를 부여한다. 어린이에게는 바로 블랙 벨트를 주지 않고 품띠라고 하여 위 사진과 같은 검정과 빨강이 스트립(strip)으로 되어 있는 띠를 주는가 보다. 일부 회사에서 실시하는 품질관리 기법의 하나인 ‘6 시그마’ 인증에서도 최고의 등급을 black belt라고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느끼는 색이 검정과 흰색이다. 흑백 논리(黑白論理)라는 말이 있다. 모든 문제를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 옳고 그름의 양극단으로 구분하고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려는 편중된 사고방식이나 논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선악을 상징적으로 흑과 백으로 나누어 인식하고 있다. 광명은 선을 상징하고, 암흑은 악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중상모략하기 위해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 퍼뜨리는 행위를 흑색선전(黑色宣傳)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 사실이라면 명백(明白)하다고 말한다. 흰색은 밝다 또는 옳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누군가 마음이 음침하고 흉악하면, 음흉(陰凶)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물을 빛과 어둠, 즉 양과 음으로 대비하여 인식하고 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어둡다고 느낀다. 빛 즉 가시광선이 없는 상태를 우리 눈은 흑으로, 빛이 있는 상태를 백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보통 색을 무채색과 유채색으로 나눈다. 즉 무채색은 채도는 없고 명도만 있다. 대표적으로 검은색, 회색, 흰색이 이에 속한다. 검은색은 물체가 모든 빛을 흡수하여 그 물체에서 나오는 빛 즉 명도가 0이고, 흰색은 그 물체가 모든 빛을 반사해서 명도가 최대로 높다. 우리의 언어 습관 중에 색채어에서 색이 진해지면 그 말 앞에 ‘검다(dark, black)’라는 표현을 덧씌운다. 예를 들면, 검붉은 피, 블랙핑크(black pink), 검푸르다, dark blue 등의 말을 쓰고 있다. 백색광(white light)은 서로 다른 파장(주파수, 에너지)을 갖는 다수의 빛이 섞여 있는 빛을 말한다. 우리는 공기의 색이나 물의 색을 무색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흰색은 무색이 아니고 다색이다. 단색광(monochromatic light)은 단 한 가지의 파장을 갖는 빛을 의미한다.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느끼고 있는 여러 개의 색깔 중에서 어느 특정한 색을 의미한다.


태양이 비추는 대낮에도 우리 눈은 검정을 감지할 수 있다. 대상 물체가 빛을 받더라도 모든 파장의 빛을 물체가 흡수하고 반사되는 빛이 하나도 없으면, 우리는 그 물체가 검다고 인식한다. 이런 현상을 유추하여 천체물리학에서는 별이 수축하여 모든 물질을 빨아들여서 아무것도 심지어 광자 하나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를 블랙홀(black hole)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물리학 용어로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가 있는데, 에너지의 복사 이론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흑체는 입사하여 들어오는 모든 빛(복사)을 주파수에 상관없이 모두 흡수하는 이상적인 물체를 말한다. 흑체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에너지의 빛을 일단 흡수하여 자신의 에너지로 만든 후에 이를 복사의 형태로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물체라고 정의한다. 이런 흑체에서 무엇이 나오는지를 실험적으로 조사해 보면 그 결과는 우리 일상의 경험적 사실과 잘 일치한다. 흑체는 차가울 때보다 뜨거울 때 더 많은 복사 에너지를 내놓으며, 뜨거운 흑체 스펙트럼의 봉우리는 차가운 흑체의 그것보다 더 높은 주파수 쪽에 치우쳐 있다. 쇠막대를 가열하면, 처음에는 흐릿한 붉은색, 밝은 주황색, 푸른색으로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백색으로 변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까만색을 무지나 부지로 이해한다. 어떤 소식이 없으면, 깜깜무소식이라고 말한다. 건망증이 심하면, 내가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나?라고 말한다. 까마귀의 겉이 검어서 나온 말일 게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시조 귀절도 있다. 우리 풍습에 까치는 길조로 보는데, 비슷한 부류인 까마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까마귀가 그렇게 나쁘고 아둔할까? 어느 아마추어 조류 관찰자가 어느 날 망원경과 카메라를 들고 까마귀를 관찰하려고 나섰다. 계곡에서 까마귀 떼를 만났는데, 까마귀들이 운동회를 하는 것 같았다. 계곡에서 까마귀들이 경주하듯이 떼를 지어 날다가  넓은 공터에 내려앉아서는 까마귀들이 무슨 미션을 수행하는 것 같다. 근처 큰 나무에 앉아 있는 다른 까마귀들은 어린이 운동회를 감상하며 잘하는 얘 칭찬하고 손뼉 치는 부모같이 무언가 떠들고 야단이다. 참 까마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하산하여 자기 집에 들어가 카메라에서 찍은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휙 돌아서 창밖을 보니, 아까 무리 중에 있던 까마귀 두 마리가 큰 나무에 앉아서 자기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집안에 상을 당했을 때 유족들은 검정 상복을 입는다. 다른 집에 문상할 때도 검은 옷을 입고 가야 예를 제대로 갖춘다고 알고 있다. 장례식 때 주요 색상은 검정이다. 우리는 검은색이 엄숙한 분위기에 맞는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에서 유래한 풍습이고 우리의 전통 상복은 남자는 굵은 베옷이었고 여성들은 무명으로 된 소복을 입었다. 우리 한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부른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조상이 흰옷을 즐겨 입어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일상복이 베옷이나 무명옷이 주였는데, 이를 유채색으로 염색하려면 추가적인 공수가 들어가야 했고, 좋은 염료가 없어서 잘못 물을 들이면 안 들인 것만 못하므로 옷감 그대로 옷을 지어 입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당시에는 세탁기나 세제가 없던 시절이라 흰색 옷이 때가 잘 타도 세탁하기에 무난했고, 잿물 등에 세탁하면 때가 대부분 지워졌고, 지워지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고 입지 않았나 싶다.

 

옛날에 중고교 시절에 교복을 입었는데, 동복(冬服)은 학교에 상관없이 검은색이나 그와 가까운 색이었다. 겨울에는 추워서 비추는 빛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하는 검정 옷을 입어야 보온이 잘 되고, 보는 사람도 시각적으로 따뜻하다고 느낄 수 있다. 여름철이 되면 검정 교복은 입은 사람이 덥고, 보는 사람도 더워 보이니까, 흰색 계통으로 하복(夏服)을 입었다. 흰색은 때가 쉽게 타서 깨끗해 보이지 않으니까 회색의 교복을 주로 입었는데, 시원한 느낌이 드는 청색 교복을 선택한 학교도 있었던 것 같다.

 

인류 역사에서 흑색은 신분을 상징하는 제복의 색깔로 쓰여 왔다.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출신의 스탕달(Stendhal, 1783~1842)이 쓴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주인공이 출세하고 싶던 신분으로 군인의 제복 색깔을 의미하는 ‘적(red)’과 성직자 옷 색깔인 ‘흑(black)’을 대조적으로 제목에서 쓰고 있다. 지금은 군복이 얼룩무늬의 녹색이거나 모래 색깔이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붉은색이었나 보다. 한편 요즘도 신부(神父)나 성직자는 검정 옷을 많이 입고 있다. 그러나 최근 텔레비전에서 본 바티칸의 어느 예식에서 추기경의 의복과 모자는 진홍색, 혹은 심홍색의 색깔이었다. 소설 ‘적과 흑’의 제목의 유래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는 카지노에 있는 룰렛의 회전판 색이 붉은색과 검은색인 것에서 주인공의 인생을 도박에 비유한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그러나 스탕달 자신이 정확하게 밝히지 않아서 제목의 유래는 불명하다.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줄리앙 소렐은 평민의 신분에서 벗어나길 갈망한다. 그의 귀감(龜鑑)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전쟁터에서의 활약을 통한 출세가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해서 그는 차선책으로 상류층 귀부인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한다. 그는 시골 도시의 시장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 후 시장의 아내인 레날 부인을 유혹하고 그녀를 굴복시킨다. 그 후 부인과의 염문설이 퍼지자 줄리앙은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신학교로 진학하고 거기서 라틴어 실력으로 늙은 대주교의 인정을 받는 성직자가 되는데 순전히 출세를 위한 발판이었다. 결국 그는 파리의 권력자인 라 몰 후작의 개인 비서가 되고 그의 딸 마틸드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마틸드는 임신하게 되고 후작은 어쩔 수 없이 줄리앙을 귀족 신분으로 만들기를 결정하고 거액의 돈과 영지를 물려준다. 줄리앙이 새로운 성까지 얻고 기병대 중위로 임관하여 출세 가도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 후작의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내막을 폭로하는 레날 부인의 고발이었다. 분노한 후작은 딸에게 결혼을 취소하지 않으면 의절하겠다며 파리를 떠나버렸고, 딸은 줄리앙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줄리앙은 분노로 이성을 잃고 옛 도시로 달려가 미사에 참례 중이던 레날 부인의 어깨를 권총으로 쏜다. 부인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줄리앙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여전히 줄리앙을 사랑하는 레날 부인과 마틸드, 그리고 줄리앙의 유일한 친구 푸케가 그를 구명하려고 사방으로 고군분투하지만 실패하고 줄리앙은 결국 단두대에서 참수형을 당한다. 줄리앙의 시신을 거둔 푸케는 마틸드와 함께 그의 장사를 지내준다. 레날 부인도 줄리앙이 처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줄리앙이 가르치던 자신의 아이들을 껴안은 채로 병상에서 생을 마감한다. 당시 젊은 남자들의 신분 상승 야망의 헛됨을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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