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9. 회색(灰色, gray)

나목

by 포레스트 강

앞의 절, 삼원색에 관한 글에서 검정, 흰색, 회색을 무채색이라고 했다. 무채색은 채도(Saturation)가 0인 색으로 빛의 세기만을 나타내고 있어서 색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검은색은 물체가 받은 모든 빛을 흡수하여 그 물체에서 나오는 빛이 0(zero)이어서 명도(Intensity)가 0이고, 흰색은 그 물체가 모든 빛을 반사해서 명도가 최대로 높다. 그 중간에 위치하는 색깔이 회색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명도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나오고 각 사람이 회색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회(灰)는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ash)를 의미한다. 색깔을 표시할 때 잿빛이라는 말이 있다. 흐린 하늘을 ‘잿빛 하늘’이라고 한다. 재를 물에 잰 것을 잿물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비누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다. 한편 광물성 회는 석회(石灰)의 준말로 암석에서 채취하고, 시멘트의 원료로 쓰인다. 한동안 양회(洋灰)라고도 불렀다. 전통적으로 시체를 매장할 때 지하수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광물질인 회를 뿌렸다. 중동지방에서도 매장하는 무덤에 회를 뿌린 듯하다. 부정적인 표현으로 ‘회칠한 무덤’이란 표현이 성경에 나온다.

회색은 ‘잿빛 하늘’이란 말에서 보듯이 보통 구름 낀 흐린 날을 연상시킨다. 햇빛이 잘 나는 화창한 날에는 하늘의 구름 색깔이 흰색이지만 흐린 날에는 구름에 검은색이 섞여 있어 회색으로 보인다. 대기에 섞여 있는 성분이 구름에서 일부 빛을 흡수하여 흰색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 비나 눈이 쏟아질 듯하면 흰 구름에 먹물을 뿌려놓은 듯 먹구름이 끼고 곧 비나 눈이 쏟아진다.


겨울철에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은 무채색이 주류를 이룬다. 늘 푸른 상록수가 있는 산이나 거리에서는 초록색이 보이지만 겨울 풍경에는 대체로 검정, 회색, 흰색 계통이 눈에 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여름에 무성하던 초록의 잎은 단풍이 들었다가 다 떨어지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산이나 시가지의 찬바람을 맨몸으로 막고 있다. 추운 겨울에 헐벗은 나무는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이런 나무를 우리는 나목(裸木)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1950년대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소설가 박완서는 <나목>이라는 소설에서 펼치고 있다. <나목>은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을 소재로 쓴 박완서의 등단 작품이다.


나는 어머니가 싫고 미웠다. 우선 어머니를 이루고 있는 그 부연 회색이 미웠다. 백발에 듬성듬성 검은 머리가 궁상맞게 섞여서 머리도 회색으로 보였고 입은 옷도 늘 찌든 행주처럼 지쳐 빠진 회색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회색빛 고집이었다.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고 있노라는 생활 태도에서 추호도 물러서려 들지 않는 그 무섭도록 탁탁한 고집.

- 박완서(1931~2011), <나목> 1장 중에서


전쟁 중에 집에서 포격으로 젊은 두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심상을 작가는 회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 곳곳에 '회색빛 벽지', '잿빛 휘장', '부연 그림자', '희게 회칠한 벽' 등의 표현이 등장하여 회색이 당시 사회의 참담함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 회색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은 환상 같은 황홀한 빛을 보고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표현이 눈에 띈다.


눈 때문에 어둠도 부옇고 어둠 때문에 눈도 부옇고, 고개를 젖히니 하늘도 자욱하니 별빛을 가로막고 암회색으로 막혀 있었다. 나는 명도만 다른 여러 종류의 회색빛에 갇혀서 허우적대듯 걸었다. 아무리 허우적대도 벗어날 길 없는 첩첩한 회색, 그 속에서도 나는 환상과도 같은, 회상과도 같은 황홀한 빛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 박완서(1931~2011), <나목> 10장 중에서


박수근(1914~1965) 화가는 물감을 여러 차례 캔버스에 발라 올려 화강암의 표면 같은 우툴두툴한 재질을 만든 후에 그 위에 단순한 선묘로 대상의 형태를 새겨 넣는 특이한 기법을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묘사 대상으로는 생활 주변의 소재들로 집과 마을, 산과 나무, 여인과 아이들, 시장과 골목 등 다양하지만, ‘나무 화가’라고 불릴 만큼 나무를 많이 그렸다. 나무는 고목(古木, 枯木)이 많고, 이파리가 달린 나무는 흔치 않다. 아마도 전쟁 중에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해 버려 황량하게 된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에서는 박수근의 독특한 화풍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枯木)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연 혼돈 속에 고독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 박완서(1931~2011), <나목> 12장 중에서


오늘날 그의 나무 그림 원본 앞에 서게 되면 녹색 기운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밑그림 작업 중에 녹색 물감을 발라 올려 잿빛 아래에 녹색 성분이 있기 때문이리라고 추측된다. 지금은 겨울이라 나무가 황량한 모습이지만 봄이 되면 나뭇가지에 새잎이 돋아나듯이 그때 고생하는 서민들에게 희망이 움트고 있다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박완서나 화가 박수근은 필자의 아버지 세대 이전에 사시던 분들로 한국에서 격변기를 거치며 참으로 고생하신 분들이다. 소설에서도 화가인 남자는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려고 하고 있다. 전쟁 후 일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자가 들은 바로는 당시에 미군 부대 주변에 여러 직업이 있었는데, 손재주 있는 사람들은 ‘환쟁이’로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어려운 시절을 통과했다고 한다. 이북에서 단신으로 피난 온 젊은이가 환쟁이로 있으면서 주변의 마을에서 예의 바른 규수(閨秀)를 만나 결혼하고 잘 사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 백창우(1958~ ) 작사 작곡, 임희숙(1950~ ) 노래,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1984)>

위 가요에서 하늘에 떠 있는 낮달의 색깔이 살빛이고, 화자는 슬프다고 노래하고 있다. 낮달의 모습은 보통 하얀색이라고 느끼는데 창백(蒼白)한 얼굴이 연상된다. 아마도 시를 쓴 날의 일기가 흐려서 낮달이 회색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회색은 우리의 슬픈 감정을 나타낸다.

어려서 미술 시간에 크레용 중에 살빛이라고 불린 색이 있었다. 보통 그 색이 우리의 피부색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듯 우리의 색감에는 사람에 따라 어딘지 모르게 회색지대(gray area)가 존재한다. 우리는 살빛 즉 피부색으로 인종을 구분하여 부르는데 보통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으로 나눈다. 피부에 있는 멜라닌 색소의 양에 따라 피부색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는 황인종이라고 하는데, 실제 피부색 하고는 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인들의 피부색도 하얗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피부가 흰색에 가깝다. 펄 벅(Pearl S. Buck, 1892~1973)의 소설에서도 우리나라 선비 얼굴의 색을 희다고 표현한 구절을 옛날에 본 기억이 있다.

개인의 성격에도 매사에 맺고 끊는 게 분명한 사람이 있고, 물에 술 탄 듯이 술에 물 탄 듯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의 의견이 yes 혹은 no인지 분명하게 호불호를 표시하는 사람이 있고, 항상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며 사안을 두고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격변의 시기를 살아온 사람일수록 경험적으로 최종 결정을 쉽게 내리지 않는 것 같다. 양단간에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한쪽에서는 경솔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유부단하다고 한다. 색깔의 관점에서 보면 한쪽은 흑인지 백인지의 결정이 빠르고 모든 사안에 대해 자기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사람이고,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항상 회색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다. 후자를 경계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기회주의자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전쟁 후에 남과 북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명제 앞에 선뜻 그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린 문학작품도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8. 백(白, 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