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8. 보라(紫, violet)

쪽과 도라지꽃

by 포레스트 강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진(山陣) 수진(水陣) 해동청(海東靑) 보라매도 다 쉬어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너머 임이 왔다 하면, 아니 한 번도 쉬어 넘어가리라.

- 이정보(1693~1766), 시조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전라남도 장성군으로 가려면, 터널을 통해서 기차는 철길로, 차로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쉽게 갈 수 있지만, 옛날에 도보나 말을 이용하여 가려면 험준한 고개를 넘어서 가야 했을 것이다. 그 고개 이름을 장성령, 노령(蘆嶺) 혹은 갈재라고 했는데 이 고개를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라고 노래했던 사람은 조선 영조 때의 이정보(李鼎輔)였다. 바람과 구름마저 쉬어 넘고 바람을 잘 이용하여 나는 산진, 수진, 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어 넘을 만큼 산세가 험하다고 노래하고 있다. 남도 민요 중에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 문전(梨花門前)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봐라’라고 시작하는 우리의 전통 민요가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 조상들이 민요나 옛시조에 자주 등장시키는 해동청 보라매란 표현이다.


지금의 황해도 해주와 백령도에서 나는 매 중에서 재주가 뛰어나고 청색인 매를 해동청이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매사냥을 즐겼던 듯, 삼국사기에 진평왕이 사냥하기를 즐겨 매나 개를 놓아 돼지, 꿩, 토끼를 잡으러 다녔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 시대에는 매사냥의 기관으로 응방(鷹坊)을 전국적으로 설치하기도 하였다. 몽골인들은 고려에서 해동청과 같은 좋은 매가 산출되는 것을 알게 되어 고려 고종 이래 매를 자주 공납하게 하였다. 양녕대군은 매사냥을 즐겼다가 아버지인 태종으로부터 세자 자리를 박탈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훗날 대신 왕이 된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신하들을 국문하며 ‘내가 매사냥을 한 것도 아닌데 너희들 말이 지나침이 있다’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공직자가 골프를 쳤다고 구설에 오르는 일이 있듯이 당시에 매사냥은 사치한 운동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몽골에는 칭기즈칸이 매를 길들여서 기러기, 물오리 등의 새를 사냥했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몽골에 매사냥이 성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13세기 몽골 제국 시대에 몽골 유풍이 고려에 많이 전해졌는데 고려에도 몽골식 매사냥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때 몽골어로 '보로(boro)'가 우리말에 차용되어 '보라매'가 된 것으로 보인다. '보라매'는 앞가슴에 담홍색의 털이 난 매로서 어려서부터 길들여 매사냥하는 데 널리 쓰였다. 즉 ‘보라매'는 난 지 1년이 안 된 매를 일컫는 말이다. 어려서 길들이기가 쉽고 활동력이 왕성해 사냥매로는 최상품이다. 보라매 외에 매사냥에 쓰이는 매의 이름으로는 산진이, 수진이, 삼계참 등이 있다. 산에 있으면서 여러 해 된 매는 '산진(山陳)이' 혹은 날진이, 보라매로 들어와 사람 손에서 1년을 난 매를 '수진(手陳)이'라고 한다. '삼계참'은 사람 손에서 3년 이상을 난 장수(長壽) 매를 가리킨다. 수진이, 산진이란 말 모두 몽골어에서 음차 한 말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해동청을 문헌에서는 ‘숑골매’라 하고 요동(遼東)에서 난다고 하였고, 해청(海靑)을 ‘거문 나치’라 설명하였다. 중국에서는 이 매를 해동청 또는 보라응(甫羅鷹)이라 하였다. 흰 것을 송골(松鶻), 청색인 것을 해동청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사용해 온 대표적인 꿩 사냥 매는 오늘날의 참매이고, 매도 오래전부터 꿩 사냥에 사용되었으므로 해동청은 이 둘 중의 하나에 속하거나 두 가지 모두에 속하리라고 여겨지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확언하기 어렵다. 참매는 수리 목 수리과에 속하고, 매는 매목 매과에 속하며 두 가지 모두 뾰족하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있다. 참매 날개의 등은 회갈색이고 뚜렷한 백색 눈썹선이 있고 아랫면은 백색 바탕에 회갈색 세로무늬가 촘촘히 있어 얼룩져 보인다. 매 날개의 등은 청회색이고 가슴에는 굵은 세로무늬가 있다. 뺨에는 길쭉한 흑색 무늬가 있다. 실제로 매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나 몽골에서는 매의 신원을 파악해 두는 버릇이 있어 온 듯하다. 오늘날 철새 연구를 위해 새의 몸에 인식표를 붙이듯이 매의 몸에 시치미를 붙여 매 주인의 이름 등을 표시해 뒀는데, 야생의 매를 포획한 후 그 시치미를 떼어 모른 척하고 자기의 매라고 주장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시치미 떼다’라는 말이 나왔고, ‘새침데기’란 말이 생겼다.


보라매는 우리나라 공군의 상징이다. ‘빨간 마후라(red muffler)’는 비행기 조종사(pilot)를 의미하고 보라매는 비행기를 상징한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날렵하게 창공을 나는 보라매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등 서양에서는 독수리(eagle)가 하늘을 나는 맹수의 대표로 여러 상징으로 쓰이고 있으나 우리 동양권에서는 매를 더 높이 치고 있다. 서울시 동작구에는 옛날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자리에 보라매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보라매의 앞가슴 깃털이 담홍(淡紅) 색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보라색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는 자(紫), 혹은 자주(紫朱)라고 표현하는데, 보라는 어감이 좋고 순우리말 같아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무지개의 일곱 색깔을 얘기할 때도 제일 마지막이 보라이다. 우리말로 보라가 이제 표준어가 되었다. 보라색은 영어로 purple 혹은 violet이다. 가시광선보다 에너지가 큰 복사선을 한자어로 자외선(紫外線), 영어로 ultraviolet(uv) ray라고 한다. 보라색이라고 하면 제비꽃, 도라지꽃이나 서양에서 온 라벤더가 생각나고, 식물의 열매 중에는 오디, 포도, 가지, 자색 고구마, 자색 감자가 생각난다.


서울시 성동구에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응봉(鷹峯)이라고 있다. 지금의 서울숲 건너편에 응봉역이 있고, 응봉동이 소재하고 있다. 높이가 약 80m인 작은 산에 개나리를 많이 심어 봄에는 노란색을, 여름에는 녹색을 발하고 있다. 예로부터 주변의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다. 조선 시대에 왕이 이곳에 매를 풀어 사냥을 즐기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매봉 또는 한자명으로 응봉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지금 응봉산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철새가 많이 찾아와 산 정상에서 철새를 관찰할 수 있으며, 서울숲과 남산, 청계산, 우면산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장소로 야경 또한 훌륭하여 밤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 봉우리 밑에 있는 바위가 한강을 향하여 깎아지른 듯하여 자연적으로 낚시터가 되어 있어 ‘입석 조어(立石釣魚)’라 해서 유명하였다. 매봉 또는 응봉이라는 산 이름은 우리나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가깝게는 강남구 도곡동에 매봉이라고 있다. 산 위에 매가 유유히 날아다닌 풍경을 연상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김윤식(1936~2018)은 자전 에세이인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출신인 자신이 열두 살 유년 시절에 기차를 타고 초록빛 들판을 지나 마산에 가서 본 쪽빛 바다의 추억을 회상하고 자신의 비평의 한 소재로 설명하고 있다. 비슷한 색으로 제비꽃밖에 보지 못했던 산골 아이가 난생처음 바다를 보고 느낀 빛깔의 충격을 소개하고 있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는 청마 유치환의 유명한 시 ‘깃발’을 분석하고 ‘쪽빛’의 의미를 음미하고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유치환(1908~1967), <깃발>


자신의 호에도 '푸를 청'이 들어있는 청마(靑馬)에게 있어 '깃발'은 언제나 바다와 더불어 있다. 경상남도 통영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한 유치환에게는 바다는 자연스러운 소재였을 것이다. 시인에게 바다(자연)는 푸르지(blue) 않고 쪽빛(purple)으로 보였기 때문에 '푸른 해원'이라고 표현했다고 평론가는 해석하고 있다. 마산에서 어린 김윤식이 본 바다 색깔과 통영에서 느낀 유치환의 바다 색깔이 얼마나 다른 것일까?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언어의 영역에서 표현될 때 색깔에 대한 인식은 사람마다 경험과 추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고등학교 시절에 시 '깃발'에 나오는 해원(海原)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말이다. 일본어로 海原(우나바라)은 바다를 의미하고, 일본에서는 소학생도 아는 쉬운 말이라고 한다. 만일 해원(海原)이 우리말이라면 '바다와 같은 벌판'이거나 '바다'와 '벌판'을 동시에 가리켜야 자연스럽다.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watery prairie(바다처럼 넓은 들판)‘가 적합하다. 유명한 영시 번역가인 이인수 교수는 ‘the distant purple sea’라고 번역하고 있다. 일본의 영향 아래 교육받은 청마니까 이런 표현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굳이 '바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푸른 해원'이라고 한 것이 다 뜻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海原이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그것이 우리말로 본다면 바다 아닌 벌판(들판)일 터이기에 '푸른 해원'이라고 표현했으리라고 비평가는 보고 있다.


유치환의 시 ‘깃발’에서 ‘푸른 해원’이란 구절은 우리 언어의 '청록 색맹'을 얼렁뚱땅 퉁 치고 넘어가려는 방법을 쓰고 있지 않고 있나 필자는 생각한다. 이 점을 김윤식 교수는 절묘하게 다른 방법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김 교수가 어려서 본 제비꽃의 보라색과 바닷물의 쪽빛이 같다고 보는 것은 선뜻 이해가 안 간다. 김 교수와 필자가 세대나 교육환경이 다르니까 뭐라고 반론을 펴기도 그렇다. 보라는 영어로 violet 혹은 purple인데 scarlet으로 확대해서 심홍색 혹은 진홍색이라고 바다의 색깔을 적색 기운이 나는 것으로 김 교수는 묘사하고 있다. 보라는 한자어로 자주(紫朱)라고 하는데 여기에 ‘붉을 주(朱)’자가 들어간다. 보랏빛 하면 핑크빛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 눈의 색 인식에서 참 중요한 일면이다. 적색과 자색은 가시광선의 에너지 스펙트럼에서는 꽤 많은 차이가 나는데 우리의 논의나 머리에서 유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참 불가사의하다. 심홍색은 추기경이나 귀하신 분들이 입던 옷 색깔로써 고귀함, 화려함, 왕자적 품격을 가리킨다. 자주, 쪽빛, 그것은 바로 심홍색이고, 당초에 시인 청마의 생리에 깃든 바다란 이 심홍색이었다고 김 교수는 결론지었다. 귀족도, 제왕도, 추기경도 아닌 통영 바닷가에서 자란 소년 청마에게 바다는 쪽빛이었지만, 혹자에게는 바다가 보라색, 또는 심홍색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한편 비평가는 쪽빛을 광물질의 색깔로 치부하고 있다. 과연 광물질이나 금속의 색깔이 어떻게 우리 눈에 보일까는 뒤에 다른 글에서 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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