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7. 남(藍, indigo blue)

쪽빛 바다

by 포레스트 강

우리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네 글자로 된 고사성어 중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있다. 식물인 쪽을 말하는 남(藍)은 염색 재료로 청색을 물들일 때 쓴다. 천이나 헝겊에 물을 들이면 쪽 풀보다 더 푸르고 선명한 빛깔이 난다고 한다. 성악설(性惡說)로 유명한 순자는 이에 비유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청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 풀보다 더 푸르고, (靑出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冰水爲之而寒於水).


여기에서 나온 말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역사 속에 보이는 청출어람의 예로, 북위 시대에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孔璠)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배웠는데, 몇 년이 지나자 이밀의 실력이 그 스승을 앞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공번은 이밀에게 더 가르칠 게 없다며 도리어 제자에게 스승 삼기를 청했다. 제자인 이밀도 훌륭한 사람이지만 스승 또한 제자에게 배우기를 꺼리지 않았으니 본받을 만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글자 남(藍)은 ‘풀 초(艹)’와 ‘볼 감(監)’으로 이루어진 글자로써 보기(監)에 좋은 색을 뽑는 풀 즉 ‘쪽 풀’이라는 뜻이다. 예로는 남벽(藍碧, 진한 초록), 남색(藍色), 남실(藍實, 약으로 쓰는 쪽의 씨), 남청(藍靑) 등의 어휘가 있다.


그러면 청출어람이란 말은 어떻게 나왔을까? 식물로서 생명현상을 유지하면서 살아서 남색을 뽐내는 쪽 풀을 채취하여 삶으면 청색 계통의 염료를 얻을 수 있다. 색채를 전문으로 연구하지 않았어도, 오랜 경험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이 터득한 지식일 터이다. 그 쪽물에서 나오는 색이 변하여 더욱 청색이 된다. 이는 쪽이 죽어서 세포를 이루는 화학성분이 변하여 밖에서 오는 빛을 흡수하는 능력이 변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쪽은 식물이므로 그 색깔은 녹색 계통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식물의 색깔을 특별히 구별은 안 하지만 쪽의 색인 남색은 진한 녹색일 것으로 판단된다. 쪽 풀을 물에 담가 끓이면 진한 녹색 물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청색으로 변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녹색은 좀 어두운 색으로 인식하고 청색은 밝고 맑은 색으로 인식한다. 진한 남색(사실은 진한 녹색)보다는 맑은 청색을 높이 사서, 청출어람이란 말이 생겼다고 본다.


프리즘에서 분산되어 나오는 빛 스펙트럼의 명칭을 파장의 크기 순서대로 적외선, 빨강, 주황, 노랑, 초록, 청록, 파랑, 보라, 자외선으로 붙여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여기서는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일곱 가지 무지개색 중에서 뒷부분을 파랑, 남색, 보라의 순서가 아니라 청록, 파랑, 보라라고 적어 놓았다. 남색이라는 표현이 없어지고, 청록이라고 써서 파랑과 위치가 바뀌었다. 즉 청출어람이란 말에서 남색은 파랑과 보라의 중간이 아니라 초록과 파랑의 중간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렇게 이해해야 청출어람이란 말의 유래를 설명하는 게 자연스럽다. 즉 진한 녹색인 쪽 풀이 맑고 깨끗한 청색으로 바뀌는 것이 경이롭게 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색의 명칭을 잘 못 배웠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청색 계열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 갈까 한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윤석중(1911~2003) 작사, 윤극영(1903~1988) 작곡, <어린이날 노래>


이 동요에서 하늘도, 벌판도, 우리 어린이 곧 청년이 있는 오월이 다 푸르다고 한다. 어떤 때에는 이 모두가 다 파랗다고도 말한다. 우리말은 녹색과 청색을 특별히 구별하여 쓰지 않고 있는 ‘청록 색맹’의 특징이 있다. 영어로 녹색은 Green, 청색은 Blue인데, 여기에 적색인 Red를 합하여 RGB를 빛의 3요소라고 한다. 우리 눈에는 이 세 가지 빛을 알아보는 망막세포가 있는데도, 우리 선조들은 G와 B를 구별하지 않는 언어 습관을 갖고 있었다. 서양문명이 들어오고 생활과 기술이 세계화되면서 요즘은 어려서부터 교육받을 때 두 색을 확실히 구분하는 훈련을 받아서 요즘 사람들은 정확히 G와 B를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 교통신호등에서 녹색신호를 청신호 혹은 파란불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blue라고 우기는 사람은 없다.


바다는 푸르다. 영어로 blue이다. 일부 사람은 바다를 쪽빛 즉 남색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바다가 푸른 이유는 하늘이 푸른 이유와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바닷물에 햇빛이 입사하면, 햇빛의 여러 스펙트럼의 광자가 물 분자와 상호작용을 하는데, 빛의 삼원색 RGB 중에서 청색(blue) 빛의 에너지(속도)가 가장 높아 굴절하는 횟수가 많아서 즉 오래 살아남아 물 밖으로 반사가 일어나서 멀리서 바라보면 바닷물이 푸르게 보인다. 가까이서 보는 바닷물은 스펙트럼의 모든 빛이 거의 골고루 반사가 일어나 흰빛으로 보인다. 대야에 청색 염료를 풀어놓으면 투명했던 대야의 물이 청색으로 보인다. 염료에 포함되어 있는 성분이 청색 빛만 반사해 내기 때문이다. 심해에서는 모든 빛이 물에 흡수되거나 물 밖으로 반사되어 컴컴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거나, 배를 타고 먼바다를 나가보거나, 아니면 영화 등의 화면으로 바다를 보면, 바다의 광활함과 청량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우아하게 항해하고 싶다면 장밋빛이 가득한 돛을 달면 되고, 강하게 보이고 싶다면 해적선 스타일로 배를 꾸리면 된다. 이제는 바다 위에서도 요트 같은 배를 멋을 한갓 부려 치장할 수 있다. 바다도 지구의 일부이니까, 비 온 뒤에 운이 좋으면 배 위에서 무지개를 볼 수 있고,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에는 수평선 위로 붉은 노을을 감상할 수 있고, 해가 진 뒤에는 칠흑 같은 밤이지만 달빛이나 별빛 아래에서 맑은 하늘이라면 낮의 청천을 회상하겠고, 짙은 해무가 껴 있다면 이백처럼 녹색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바다는

어디서부터 가져온 파도를

해변에, 하나의 사소한 소멸로써

부려놓은 것일까?

누군가의 내부를 향한

응시를 이 세계의

경계에 부려놓는 것일까?

바다는 질문만으로 살아 오르고

함성을 감춘 질문인 채 그대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천상 돛을 하나 가져야 하겠기에

쉬지 않고 사랑을 하여

파란 돛을 얻는다.

- 장석남(1965~ ), <파란 돛>


장석남 시인은 바다에서 치는 파도의 색깔을 파랗게 인식하고 보통 흰색인 돛을 '파란 돛'으로 묘사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근해의 지중해 연안을 프랑스어로 코트다쥐르(Cote d’Azur)라고 한다. Cote가 프랑스어로 언덕 혹은 해안, Azur가 하늘빛, 쪽빛이란 뜻이니까 ‘푸른 해안’ 혹은 ‘푸른 언덕’의 의미이다. 사전에서는 지질학 용어로 ‘감벽(紺碧) 해안’이라고 번역한다. 여기서 감(紺)은 감색, 야청 빛, 검은색을 띤 푸른빛을 의미한다. 벽(碧)은 푸른 옥돌을 의미하는데 ‘벽안(碧眼)의 미녀’ 등의 용법으로 쓰인다.


코트다쥐르(Cote d’Azur)는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을 가진 프랑스 남부 해안가 마을을 지칭한다. 고갱을 비롯해 피카소 등 많은 화가와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으며 작품을 남긴 곳이다. 수년 전에 테러가 난 곳이라 경계가 삼엄하기는 하지만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와 유유자적 하늘을 나는 갈매기,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성벽들을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는 듯하다. 프랑스의 남쪽 지중해에 있는 대도시 마르세유(Marseille)에서 자동차를 몰고 동쪽으로 해안을 따라가면, 생트로페(St. Tropez)를 지나고 영화로 유명한 칸(Cannes), 니스(Nice)를 지나 앙티브(Antibes) 등으로 아기자기한 바닷가 마을이 이어진다. 이어서 모나코(Monaco)와 망통(Menton)이 나오고 10분만 더 가면 이탈리아가 나온다. 해안가를 따라 난 도로를 자동차로 가다 보면 저 아래로 쪽빛 바다가 눈을 아주 시원하게 해 준다.


코트다쥐르의 바다 색깔과 우리나라의 바다 색깔이 다를 수 있을까? 바닷물의 색깔이 분명 파란색이라도, 동일 지역이라도 계절에 따라 또는 대기의 온도나 수온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아침과 한낮과 저녁의 바다 색깔도 다를 것이다. 이를 필설(筆舌), 즉 글이나 말로 설명하기는 그 사람의 과거 경험이나 언어 구사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인종 또는 사용 언어에 따라 색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같은 국적이고 성장 환경이 비슷하더라도 개인차가 있다. 그래서 색의 객관화를 위하여 색채를 귀중하게 다루는 인쇄, 패션, 염료, 방송 업계 사람들은 색 좌표나 색 패턴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프랑스의 국기는 청(靑)·백(白)·홍(紅) 삼색기이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적 변혁기를 거치며 형성된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고 배웠다. 이탈리아 국기도 삼색기로 프랑스 국기와 모양이 유사한데, 청색 대신 녹색을 쓰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색은 진한 청색이다. 국가대표 축구팀 유니폼도 청색이 기본 색깔이다. 코트다쥐르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탈리아 축가 국가대표팀을 일명 아주리 군단이라고 부르는데, 축구팀 유니폼의 색깔이 청색인 점과 관련이 있다. 아쥐르와 아주리, 청색을 의미하는 두 나라의 단어는 비슷하지만, 막상 축구팀 유니폼 색깔을 마주 놓고 비교하면 육안(肉眼)으로도 차이가 난다.


청색이 짙어지면 남색이라고 하는 언어적 습관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무지개 스펙트럼에서 청색과 보라 사이에 있는 색을 남색이라 하는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남색은 영어로 dark blue 혹은 indigo blue라고 하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앞에서 논의한 대로 청출어람이란 말에 나오는 남색은 dark green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피의 색깔을 적색이라고 인식하는데, 피부에 보이는 핏줄의 색깔은 파랗게 보인다. 피부 가까이서 보이는 핏줄은 정맥이라고 알고 있는데, 혈액 속에 적색인 헤모글로빈의 양이 동맥에 비해서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겁을 먹고 있는 사람의 안색(顔色)은 새파랗게 질려 있다고 말한다.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백사장으로 나온 사람의 입술은 새파랗다. 아마도 물에서 밖으로 나오면 춥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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