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6. 파랑(靑, blue)

물 빛과 하늘 빛

by 포레스트 강

1. 青天有月來幾時 (청천유월래기시) 파란 하늘에 있는 달은 언제 생겼을까?

2. 我今停杯一問之 (아금정배일문지) 나는 지금 술잔을 멈추고 한번 물어보네.

3. 人攀明月不可得 (인반명월불가득) 사람은 밝은 달을 오를 수 없지만

4. 月行却與人相隨 (월행각여인상수) 달은 되려 사람을 따르네.

5. 皎如飛鏡臨丹闕 (교여비경임단궐) 흰빛 거울이듯 붉은 문에 드리워

6. 綠煙滅盡清輝發 (녹연멸진청휘발) 푸른 안개 걷히고 맑게 비추네.

7. 但見宵從海上來 (단견소종해상래) 밤이면 바다서 떠올라

8. 寧知曉向雲間沒 (영지효향운간몰) 어찌 알랴? 새벽 구름에 짐을

9. 白兔搗藥秋復春 (백토도약추부춘) 흰 토끼 가을봄 없이 약 찧고

10. 嫦娥孤棲與誰鄰 (상아고서여수린) 상아는 외로이 뉘와 더불꼬?

11. 今人不見古時月 (금인불견고시월) 지금 이 사람은 옛날 달을 못 봐도

12. 今月曾經照古人 (금월증경조고인) 지금 저 달은 옛사람을 비췄으니

13. 古人今人若流水 (고인금인약류수)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물 흐르듯

14. 共看明月皆如此 (공간명월개여차) 밝은 달을 매한가지로 보네

15. 唯願當歌對酒時 (유원당가대주시) 바라나니 술잔 들고 노래할 때

16. 月光長照金樽裡 (월광장조금준리) 달빛이여 술동이를 내내 비춰주길.

- 이백(701~762), <把酒問月 (파주문월) 술잔 들고 달에게 묻다>


이백 표구.jpg 이백 시 표구


위 시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의 유명한 작품이다. 보통은 11행과 12행에 있는 ‘지금 이 사람은 옛날 달을 못 봐도, 지금 저 달은 옛사람을 비췄으니’ 하는 구절이 자주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백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인데, 젊어서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다가, 뒤에 벼슬에 들었으나,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유배되는 등 불우한 만년을 보냈다. 이 시와 같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시를 짓기에 뛰어났으며, 이별과 자연을 제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필자의 장인은 손수 이 시를 한자로 써서 표구하여 두었는데, 장인이 돌아가시고 어쩌다가 그 액자가 우리 집으로 와서 지금은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면서 벽에 걸려 있는 이백의 시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1행의 앞머리에 있는 청천(靑天)과 6행의 녹연(綠煙)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달이 떠 있는 밤에 술 한잔하면서 읊은 시인데, 이백은 첫 구절에서 하늘의 색깔을 청색(blue)이라고 표현하고, 여섯 번째 행에서 안개는 녹색(green)이라고 느끼고 있다. 우리도 청천(靑天)은 맑은 하늘, 혹은 마른하늘이라고 말한다. 청천벽력(靑天霹靂)이라는 말은 맑은 하늘에 날벼락, 혹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의미한다. 비가 오지 않는 마른하늘은 푸르다고 동양인은 인식하고 있었다. 하늘을 청색으로 느낀 감성은 오늘날의 색감으로 볼 때 아주 자연스럽다. 이 시로 볼 때, 옛사람들은 컴컴한 밤에도 마른하늘의 색깔은 청색일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여섯 번째 행에서 푸른 안개(綠煙)가 다 없어지면 맑은 빛이 휘발(輝發)된다고 노래하고 있다. 아마도 초록의 숲에 안개가 걷히면서 보았던 광경을 회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백은 대낮에 본 하늘과 안개 낀 숲의 색깔을 회상하고 밤에도 그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백의 시에서는 밤하늘의 색깔을 맑은 낮에 본 색깔로, 밤안개의 색깔은 대낮에 본 숲의 색깔로 기억하고 묘사하고 있다. 이 시가 교훈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는 크지만, 분위기를 잡아주는 주위의 풍경을 묘사하는 표현은 관념적이고 사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 점에 있어서는 고려 시대의 시인 이조년의 짧은 시조가 더 사실적이다. 앞의 ‘백(白, white)’이란 글에서 언급한 이조년의 시에서는 달밤에 비친 흰 배꽃과 두견새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시인이 느끼는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가람이 파라니 새 더욱 희오)

山靑花欲燃 (산청화욕연) (뫼가 퍼러하니 꽃이 불붙는 듯하다)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올봄이 본데 또 지나가나니)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어느 날이 이 돌아갈 해요)

- 두보(杜甫, 712~770), 절구(絶句)


이 한시는 두보의 시 중의 하나로 별 제목 없이 오언절구(五言絶句)로 쓰인 시이다. 이백과 두보는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천재적인 재주를 가졌으나 난세에 살면서 안녹산(安祿山)의 난 등으로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하고 고생하며 강호를 유람했다. 두보(杜甫)를 시성(詩聖)이라고 하고 이백을 시선(詩仙)으로 칭한다. 이 명칭에서도 나타나듯이 이백은 도교적이고 두보는 유교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했다. 유교적인 통치이념을 가진 우리나라 조선의 왕실과 신진 사림파 학자들은 두보의 시 1,647편 전부와 다른 사람의 시 16편을 새로 창제한 훈민정음으로 해석하고 주석을 달아 풀이한 25권 17 책의 책을 발간했는데, 이것이 바로 두시언해(杜詩諺解)이다. 원명은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이다. 성종 12년(1481)에 나온 초간본에는 방점이 있고 ‘ㅿ’과 ‘ㆁ’이 쓰였으나, 인조 10년(1632)에 간행된 중간본에는 방점이 없고 ‘ㅿ’과 ‘ㆁ’을 쓰지 않은 점이 크게 다르다. 풍부한 어휘와 예스러운 문체가 드러나 있고, 초기 한글의 음운 변천 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의 젊은 유학자들이 두보의 시를 사랑한 까닭은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깊은 인간성과 진실성이 그의 시에 넘쳐났고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유교 정신에 투철해 있다는 점을 두보의 덕망으로 꼽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보의 시는 관료들의 등용문인 과거를 준비하는데 필수적인 텍스트가 되었고 채점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였다.


위 시의 번역은 두시언해에 나오는 우리말 번역을 오늘날의 어법에 맞게 필자가 수정한 것이다. 국문학자도 아닌 필자가 이 두보의 시를 여기에서 인용하는 것은 이 시에 색채에 관한 언어가 몇 개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강과 산, 새와 꽃이 나온다. 강은 파랗고(江碧) 산은 퍼러하고(山靑), 새는 더욱 희고(鳥逾白), 꽃은 불붙는 듯하다(花欲燃). 한자어에서는 강의 색깔과 산의 색깔을 글자로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두 색깔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필자는 이를 언어적인 ‘청록 색맹’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백과 두보 시대에 분명 ‘푸를 녹(綠)’이라는 글자가 있었지만, 두보의 시에서는 green 색인 산의 색깔을 녹(綠)으로 하지 않고 청(靑)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언어적인 ‘청록 색맹’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적인 경향은 청산(靑山)이라고 하는 말로 굳어졌다.


우리가 가끔 들어 보는 말에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 있다. ‘사람이 가는 곳에는 청산이 있다’라고 직역할 수 있으나, ‘푸른 산이 있으면,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그런 곳이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어디를 가든 우리 인간은 적응하여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외국에 유학이나 이민 가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먹자, 청산에 살어리랏다네.

- 고려 가사, 청산별곡(일부)


위의 고려 가사 청산별곡에서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자’라고 자연에 귀의하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현대인인 박두진 시인의 시 ‘해’의 서두에서 읊고 있는 산도 분명 청색이다.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 박두진(1916~1998), <해>(일부)


오늘날의 색감으로 볼 때 물이나 하늘의 색깔은 멀리서 보면 분명히 청색이다. 그러나 하늘이나 물의 본색이 청색은 분명 아니다. 운동장에 있는 공기나 세숫대야에 있는 물을 푸르다고 할 사람은 없다. 태양의 빛이 물이나 공기 중의 입자들과 부딪쳐서 에너지가 흡수되는 과정에 청색 계통의 빛이 덜 분산되고 오래 살아남아 있어서 우리 눈이 하늘과 바다를 멀리 바라볼 때 청색 계통으로 인식한다. 대낮에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수평선이 보인다. 색의 농염이랄까 구름의 존재 등으로 하늘과 바닷물의 색깔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초음속으로 가다가 가끔 뒤집어 거꾸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조종사가 순간적으로 착각을 일으켜 바다로 급속히 조종간(操縱杆)을 꺾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이런 사고를 방지하는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청색과 녹색을 언어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청록색맹’으로 인한 모호성과 무지(無知)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본다. 최근의 화제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면 여주인공의 옷 색깔이 ‘푸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를 청색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녹색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여주인공과의 관계가 부적절한 것임을 인지하고 남주인공이 헤어질 결심을 마음속으로 하지만 둘의 관계가 쉽게 끝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이 ‘청록색맹’의 개념을 집어넣으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청색 옷을 좋아하는 여자와 녹색을 좋아하는 남자가 객관적으로는 서로의 처지가 달라도 두 사람이 근원적으로는 같은 곳을 지향하기 때문에 관계가 쉽게 끊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에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이 있다. 서구인들은 녹색과 청색을 잘 구분하여 쓴다. 앞의 ‘시인의 초록, 과학자의 초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한 워즈워스의 시에서도 들은 푸르고(green field), 하늘은 파랗다(blue sky)고 명시적으로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처음 온 서구인이 블루 마운틴, 그 산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그렇게 명명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도 삼림 속에서 청색을 느낀 모양이다.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에 골드 코스트(Gold Coast)라는 지명이 있는데, 백사장에 모래가 좋을 뿐 그곳에 금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금을 따라 움직이는 당시 탐험자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겼으리라.


청(靑)은 ‘날 생(生)’과 ‘붉을 단(丹)’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단(丹)은 물감 들이는 재료로 돌을 뜻한다. 붉은 돌 틈에서 피어나는 새싹은 더 푸르러 보인다. 그 쓰임새로 청과(靑果), 청년(靑年), 청룡(靑龍), 청송(靑松), 청자(靑瓷), 청와대(靑瓦臺) 등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 엷은 푸른색을 즐겨 썼다고 한다. 이 물감은 라피스 라즐리(lapis lazuli)라고 하는 광물에서 추출했다고 하는데, 1920년에 색명으로 정식 채용되었다. 라피스 라즐리는 라틴어의 '돌'과 '파랑'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청금석(靑金石)이라고 불렸으며, 단일 광물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광물로 구성된 암석이다. 보라색을 띤 청색 돌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주산지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이었다고 한다.


녹색의 산을 청색으로 바꿔 쓴 게 미안했던지 우리 선조들은 ‘푸를 청(靑)’자에 ‘물 수(水)’변을 더해 ‘맑을 청(淸)’자 쓰기를 좋아했다. 녹두로 쑨 묵은 너무나 하얗고 맑아서 청포(淸泡)라고 했다. 또 우리 조상들은 자연생 꿀을 한자어로 청(淸)이라고 불렀고, 맑은 물엿을 인공적으로 만든 꿀이라는 뜻에서 조청(造淸)이라고 했다. 우리 지명에 경상남도 산청(山淸)이 있는 게 참 흥미롭다. 중국에서는 만주족이 세운 마지막 왕조인 청(淸)이 있다. ‘밝을' 명(明)을 대신하여 ‘맑고, 빛이 선명하다’라는 의미의 청이 들어섰다. 청국(淸國)은 우리나라 역사에 암울한 시기를 제공했지만, 청국장이라는 콩 음식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아울러 청산에 흐르는 물은 청산유수(靑山流水)로 잘도 넘어간다. 산골에 흐르는 물은 참 맑고 시원하다. 그렇게 깨끗한 물을 청수(淸水)라고 한다. 우리는 잘 쓰지 않는 한자어인데 일본인들은 좋아한다. 일본 교토(京都)에 오래된 사찰로 청수사(淸水寺, 키오 미즈 테라)라고 있다. ‘오차노미즈’라는 지명이 있을 정도로 차(茶)에 쓰이는 물을 중요시 했던 일본인에게 맑은 물은 아주 긴요한 필수품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15. 초록(綠, g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