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1. 사파이어

컬러 센터

by 포레스트 강

필자는 2013년 7월 초에 중동 지방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이집트 카이로에 가서 바로 비행기로 룩소(Luxor)로 이동하여 고대 이집트 왕조의 유명한 무덤군과 신전들을 관광하고 돌아와 카이로 근처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고 나서 버스로 시나이반도의 사막 지대를 통과하여 시내(Sinai) 산에 도착하였다. 시내산은 시나이반도 남쪽의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화강암의 바위산이다. 시내산은 여러 개의 주봉(主峯)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주봉 중 하나가 아랍어로 ‘게벨 무사’(모세의 산)라고 지칭되는 해발 2,285m인 봉우리이다. 산 아래 숙소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에 일어나 어둠 속에서 약 두 시간 산정으로 등산하였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정상 근처에 나무 하나 없는 바위산이다. 산 위에서 일출을 보고 붉은빛의 노을을 감상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가이드분이 하늘을 쳐다보며 ‘아마 모세 시절의 하늘도 저렇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라며 다음 구절을 소개하였다. 여기서 하늘이 사파이어 보석의 색깔처럼 청명(晴明)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Under his feet was something like a pavement made of sapphire, clear as the sky itself.

- 출애굽기, 24장 10절

참고로 중동 여행 이야기를 조금 더하면, 시내산 아래에 2세기 중엽에 로마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도들이 은둔해 살던 성 캐서린 수도원이 보존되어 있다. 근처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는 유적지를 몇 군데 돌아보고 조금 북쪽으로 이동하면,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경이 만나는 타바라는 소도시가 나온다. 여기서 버스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예약된 시간이 되면 이스라엘에 들어가는 입국 수속(入國手續)을 실시한다. 이스라엘에 입국하면 이웃해 있는 항구도시 에일랏으로 들어가는데, 그 도시 바로 옆은 요르단 땅으로 요르단에서는 도시 이름을 아카바라고 한다. 거기서부터 요르단과 이스라엘 지역의 유적지들을 며칠간 관광하였다. 여행 갔다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타바에서 자폭테러가 발생해서 한국인 관광객이 사상을 입은 불상사가 일어났음을 TV 뉴스에서 보도하였다.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대기 중에 괴한이 폭탄을 몸에 설치하고 버스에 올라왔는데, 앞에 있던 그 가이드분이 몸으로 막아 피해를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그때 위험한 지역을 참말로 겁 없이 여행했다고 생각하였다.

예로부터 하늘을 상징하는 돌이라고 알려진 사파이어(sapphire)는 ‘푸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Sapphir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성경에 보면 여러 종류의 보석이 나온다. 사파이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기독교를 상징하는 보석으로 쓰였다. 그런 연유로 사파이어는 덕망과 자애를 의미하며 성실함과 진실함을 나타낸다. 위 인용 구절에도 나와 있지만, 사파이어를 한자어로 청옥(靑玉)이라고 한다. 청옥이라는 말은 근대 일본에서 번역하면서 붙인 단어고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남보석(藍寶石)이나 청보석(靑寶石)이라고 불렀다. 서양에서는 사파이어를 비롯하여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를 4대 보석으로 치고 있다.

사파이어의 주성분은 알루미늄 산화물인 알루미나(Al2O3)로서 루비와 같다. 주요 성분이 같은 광물인데 루비는 붉은색이고, 사파이어는 청색이다. 알루미나 결정의 에너지 갭(energy gap)은 가시광선 중 보라색의 에너지값인 3.3 eV보다 훨씬 크다. 가시광선의 광자들이 갖는 에너지가 금지대의 폭(에너지 갭)보다 작아, 알루미나 결정의 가전자대의 상부에 있는 전자들이 광자들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금지대 너머에 있는 전도대 하단의 에너지 상태로 건너갈 수가 없다.그러므로 알루미나 결정에 가시광선이 쪼이면 알루미나의 전자들은 빨주노초파남보의 광자들의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소가 지붕 위에 있는 닭 쳐다보듯, 그냥 통과시키고 만다. 알루미나를 통과한 빛들은 가시광선의 여러 가지 파장의 빛이 섞여 있으면 우리 눈에는 흰색 즉 무색으로 보인다.

무색을 띠는 많은 물질이 색깔을 띠게 되는 이유는 그 물질에 혼입(混入)되어 있는 불순물 원자 때문이다. 에너지 갭이 큰 결정에 불순물 원자가 있으면 금지대 안에 그 원자가 에너지 준위를 형성하게 된다. 루비 광물의 붉은색은 알루미나 결정에 크롬(Cr) 원자가 불순물로 혼입 되어 있기 때문이다. 루비의 Cr 불순물 원자 안에 있는 전자들이 외부에서 비친 빛을 흡수하고 들뜬상태로 되었다가 곧 낮은 상태인 준안정상태로 천이가 일어나며 그때 줄어든 에너지값에 해당하는 붉은색 빛을 방출한다. 루비에서 에너지 준위 간의 천이는 나중에 루비 레이저의 원리를 설명할 때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가시광선보다 더 높은 에너지의 광자들을 갖는 자외선에 노출된 루비 결정은 진한 빨간색 빛을 방출한다. 같은 알루미나가 주성분이면서 사파이어 보석이 청색을 띠는 이유는 철(Fe)과 티타늄(Ti) 불순물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원자 수준의 불순물을 컬러 센터(color center)라고 부른다.

사파이어는 보통 푸르고 투명한 파란색의 보석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노란색, 자주색, 주황색, 초록색도 있다. 이는 사파이어 보석 내에 다양한 컬러 센터의 존재로 생기는 현상이다. 청색 사파이어가 아닌 다른 색상들의 경우 보통 '팬시 사파이어'라고 분류된다. 핑크와 오렌지색을 띠고 있는 사파이어도 있는데, 이 두 가지 색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사파이어의 경우 청색 사파이어보다 더 높은 가치로 판단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매우 드문 경우이며, 최고의 품질을 가지고 있는 청색 사파이어야말로 가장 희귀하고 귀중하다고 보석 감정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푸른 사파이어끼리도 색상을 구분하여, 같은 ‘블루 사파이어’ 중에서도 파란 계열의 보석이 값이 비싸고 색이 옅거나 진한 계열의 보석들의 값은 내려간다. 내포물(內包物)이 없을수록, 즉 투명도가 높을수록 사파이어는 더 높은 등급을 받는데, 이중 '콘플라워 블루 사파이어(cornflower blue sapphire)'라는 보석의 경우 내포물이 없는 수준으로는 최고 등급을 받는 사파이어라고 한다. 인지도가 높은 다른 색상의 ‘로열 블루 사파이어(royal blue sapphire)’는 ‘콘플라워 블루 사파이어’보다 좀 더 진해서 말 그대로 깊이 있는 파란색을 보여준다.

여기서 원자 불순물과 내포물의 차이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둘 다 모체를 이루는 원자 이외의 다른 원자가 혼입(混入)되어 있는 점에서는 같으나 불순물은 원자 수준에서 모체 원자 자리에 들어가 있어 우리 눈에 그 불순물은 보이지 않고 컬러 센터가 되어 보석이 영롱한 색깔을 내게 한다. 반면에 내포물은 불순물 원자들이 다른 원자들과 화합물을 이루어 모체 내에 별도로 존재하여 우리 눈에 뜨이고 모체 보석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보석의 경우 금(흠집)이나 내포물이 있는 것과 거의 없는 것을 같이 놓고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좋은 사파이어 보석을 고르는 색 관련 기준은 색의 분명함, 색의 강렬함(채도), 색의 밝음이나 어두움(명도)의 세 가지라고 한다. 최상의 사파이어는 색이 뚜렷하게 파랗고, 채도가 적당히 강렬하고, 명도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너무 어두워서 흑청색에 가깝거나 반대로 너무 연해서 무색에 가까우면 중간 톤의 파란색보다 급이 낮은 것이다.

사파이어와 헷갈리기 쉬운 저급의 보석으로 스피넬(spinel)이라고 있다. 청색 계열의 스피넬 보석 중에서 블루 계열 사파이어와 색이 흡사한 보석이 많아서 색만 보고 보석을 고를 때 유의하여야 한다. 계열이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서로 색이 비슷한 보석들이 은근히 많다. 스피넬은 광물 이름인데 그 광물의 원자 배열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특정한 결정구조를 ‘스피넬 구조’라고 명명하면서 오늘날에는 공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료들의 결정구조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모든 보석은 자연에서 채집 혹은 채굴되었다. 보석의 가치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희소성으로도 평가되었다. 사파이어 매장량이 풍부한 남부 아시아나 동남아에서는 표사광상으로도 산출되므로 하천에서 자갈밭이나 토사를 헤집어도 작은 사파이어 덩어리가 나온다고 하는데 인도, 스리랑카가 아주 유명하다. 이러한 광석이 보석뿐만 아니라 공업적인 재료로 응용되면서 수요가 늘어났다.

이렇게 사파이어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공적으로 사파이어 결정을 합성하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합성 사파이어는 합성 다이아몬드에 비교하여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편으로, 1902년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많은 제조법이 고안되었다. 인공 합성법은 원료를 혼합하고 고온, 고압을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현재는 상업적인 사파이어 합성에 용융 합성법(flame fusion)이 많이 사용된다. 이는 눈에 보기에만 아름다우면 되는 장신구 용도의 사파이어 합성일 경우이며, 더 빼어난 결정 품질이 요구되는 산업 용도의 사파이어 합성에는 수열 법, 온도 구배법, 초크랄스키(Czochralski) 법 등 더 비싼 합성법을 이용한다.

인공으로 만들기 쉽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나가 중요한데, 합성 사파이어는 산화알루미늄(알루미나)을 원료로 하고, 결정의 성장조건이 다른 유사 합성 결정보다 상대적으로 호조건인 관계로 충분한 시간과 돈, 장비만 있으면 한 번에 최대 500kg짜리 결정도 만들 수 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장점으로, 결정이라는 특성상 철판처럼 필요한 대로 성형하거나 접합시킬 수가 없고, 한 번에 만들어지는 크기가 결국 최종적으로 쓰일 수 있는 크기의 한계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름 3cm짜리 결정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지름 4cm짜리 웨이퍼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인공 사파이어는 합성하기 수월하면서 경도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높아서 초경(超硬) 재료로 공업적 수요가 많다. 한때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LP(long playing) 레코드가 유행하던 시대에는 레코드 바늘에 흰색이나 분홍색 사파이어를 사용했다. 고급 시계나 장식품의 ‘유리' 부분에 '사파이어 글라스'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웬만한 고급 시계의 글라스(유리알)는 대부분 인조 무색 사파이어 결정으로 되어 있다. 몇 년이 지나 시계 몸통은 세월의 흔적을 보이지만 사파이어 글라스만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을 연마할 때 문지르는 사포(砂布)에도 사파이어 가루라 할 수 있는 알루미나가 도포되어 있다. 단순히 경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몇몇 물리적 특성들도 양호하여 여러 방면에서 응용되고 있다.

사파이어 유리의 단점은 일반 강화유리보다 비싸고 너무 경도가 높아서 가공이 어렵고, 반사율이 높아서 광원 주변에 있을 때 많이 번쩍거린다. 사파이어가 경도는 높아도 충격에는 그리 강하지 않다. 얇은 만큼 충격에 매우 취약해서 이것으로 휴대전화의 전면 유리를 만들었다가 떨어뜨리면 잘 깨져버릴 가능성이 있다. 가격도 비싸거니와 스마트폰의 전면 유리로 사용되지 않는 이유이다. 화면에 스크래치(일명 흠집)가 생기면 기분 나쁘고 눈에 거슬리는 선에서 끝나지만 깨지게 되면 실로 난감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압도적인 경도 덕에, 스크래치가 생기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카메라의 렌즈와 ID(identification) 확인용 터치센서의 커버 글라스에는 일반 유리가 아닌 사파이어 유리를 사용하고 있다.

사파이어 웨이퍼(wafer)는 특수 반도체 소자의 기판(substrate)으로 쓰인다. 보통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소자를 심지만, LED(light emitting diode) 같은 갈륨비소(GaAs) 계열의 화합물 반도체 소자를 제조할 때는 인공으로 합성한 사파이어 웨이퍼를 기판으로 사용한다. 합성 사파이어 결정은 군사용으로도 많이 활용하는데, 미사일이나 전투기 등에 적외선 탐색기의 전파 창(窓, window)으로 사용된다. 사파이어는 경도가 강하고 빛이 투과되는 대역이 넓으며 열 방사율이 낮은 특성으로 기타 군용 장비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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