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0. 고체는 에너지띠를 두른다

에너지 대역과 에너지 밴드 갭

by 포레스트 강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서 독일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으로 이주한 파울리(W. Pauli, 1900~1958)는 1925년 한 개 이상의 전자를 갖는 원자들의 전자 배치에 관한 기본적인 원리를 발견하였는데, 이를 배타원리라고 말한다. ‘한 원자에서 같은 양자 상태에 두 개 이상의 전자들이 함께 존재할 수 없다.’ Pauli는 원자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연구하여 배타원리를 유추하였다. 원자의 스펙트럼으로부터 그 원자의 여러 상태를 결정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상태들의 양자수를 추정할 수 있었다.

배타원리에서 배타(排他)라는 말은 ‘남을 배척한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인데, 시사용어로 주권국가의 연안에 ‘배타적 경제수역’이 인정된다. 배타원리가 영어로는 exclusion principle인데, exclusion은 ‘독점’, ‘전속’이라는 용어로도 번역된다. 요즘은 별로 쓰지 않는 말이지만, 어느 연예인이 한 회사의 제품만을 위해 모델 활동을 하면 그를 그 회사의 ‘전속모델’이란 말을 썼다. 어느 유명인이 한 언론 매체와만 회견하면 그 매체에서는 독점 인터뷰(exclusive interview)라고 하면서 특종이라고 대서특필하였다. 특허 같은 지식재산권에 관한 계약을 시행할 때 소유권자가 이용자에게 독점적인 권리(exclusive right)를 허여(許與)하냐, 아니면 제3 자에게도 비슷한 권리를 허여 할 수 있는 비독점적인(nonexclusive) 계약이냐에 따라 계약금액에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현대의 원자론에 의하면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둘은 전기력으로 묶여 있다. 원자핵은 전자보다 1,800배 이상 질량이 더 나가며, 원자나 원자핵의 크기는 추정하고 있으나, 전자의 크기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전자는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라고 믿고 있다. 전자는 색도 모양도 없다. 그 내부에 더 작은 세부 구조도 없다. 전자들은 서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똑같다. 이는 마치 똑같은 제복을 입고 있는 연병장의 병사들과 같다. 병사들은 체격이나 얼굴이 달라도 오직 지휘자의 구령에 따라 훈련한 대로 움직일 뿐이다.

원소(element)의 원자번호(atomic number)가 그 원자가 갖는 전자의 개수가 된다. 수소(H) 원자는 전자를 하나만 가지고 있다. 원자번호 2번인 헬륨(He) 원자는 2개의 전자를 갖고 있다. 철(Fe) 원자는 26개의 전자를, 우라늄(U) 원자는 92개의 전자를 거느리고 있다. 하나의 원자에 속해 있는 전자들은 파울리가 발견한 배타원리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낮은 에너지 상태부터 차근차근히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아래의 낮은 에너지 상태가 채워져 있으면 다음 전자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상태에 위치하게 된다. 원자의 어떤 양자 상태를 먼저 차지하고 있는 전자는 그 상태에 대해서 다른 전자에 대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헬륨, 아르곤(Ar), 네온(Ne)같이 주기율표의 제일 오른쪽 칸에 있는 원소들은 불활성(inert) 원소라고 부르는데, 상온에서 전자들이 허용된 모든 양자 상태를 완전히 채워서 원자 하나하나가 부족함이 없어 자유공간에 원소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 이들 원소를 불활성 기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다. 수소나 질소 혹은 산소는 두 개의 원자가 모여 H2, N2, O2 같은 분자를 이루는데, 소속된 모든 전자의 양자 상태를 완전하게 하여 상온에서 기체 상태로 자유공간에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원소들은 대부분 소속된 전자들의 양자 상태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고체나 액체 같은 응집체(condensed matter)를 이루게 된다. 그 결과 ‘1’ 뒤에 ‘0’이 23개 이상이나 붙은 어마어마하게 큰 아보가드로 수만큼의 원자들이 상하, 좌우, 전후로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많은 소속 전자들은 배타원리를 준수하며 낮은 에너지 준위(energy level)부터 차곡차곡 허용된 양자 상태를 채우게 된다.

고체에서 반복적인 주기를 가지고 원자들이 배열되어 있으면 우리는 이 고체를 결정(crystal)이라고 부른다. 이런 결정 내에 있는 전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어 에너지 준위가 몰려 있는 에너지 대역(energy band)을 형성한다고 고체물리학자들은 예측한다. 여기서 밴드(band)라는 말은 그 모양이 상처 부위에 붙이는 밴드나 대형행사에서 볼 수 있는 음악 밴드 일명 악대(樂隊)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고등학교 음악 밴드나 육해공군의 군악대를 연상하면 된다. 대형 행사에서 보면 각 악대는 여러 가지 악기를 든 대원들이 열을 맞추어 이동하고 있다. 악대와 악대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는 보통 지휘자(band master)가 있지만, 그 외에 사람이 거기에 있으면 안 된다. 저 아래 하층부에 있는 에너지 준위부터 전자의 에너지 상태가 채워지게 되는데, 제일 상층부에 있는 몇 개의 에너지 대역이 결정의 성질을 좌우한다. 제일 상층부의 대역을 전도 대역(conduction band), 바로 아래의 대역을 가전자 대역(valence band)이라고 부르고, 두 대역 사이의 공간을 금지 대역(forbidden band)이라고 부른다. 금지 대역의 에너지 폭을 에너지 밴드 갭(energy band gap)이라고 부른다.

대역(帶域)을 줄여서 대(帶)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순전한 우리말로는 ‘띠’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혁대(革帶)라고 하고, 사람들은 머리에 머리띠를 즐겨 맨다. 옛날의 머리띠는 할머니들이 독감에 걸려 머리가 아프면 흰 대님을 잘라 머리에 매고, 아픈 게 나을 때까지 매고 있었다. 요즘에는 젊거나 어린 여성이 멋으로 머리에 밴드라는 이름의 플라스틱 띠를 두르고 있다. 또한 시위 현장에서는 시위자들이 머리에 천을 질끈 동여맨 모습을 볼 수 있다.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말에 띠지라고 있다. 새 책을 서점에서 살 때 책을 바깥에서 두르고 있는 폭 5cm 정도의 띠를 말한다. 띠지 안에는 주로 책에 대한 광고 문구를 기재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도서의 식별번호인 ISBN 바코드 등을 찍어 넣고 있다.

금속 결정에는 금지 대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금속의 에너지 밴드 갭은 0(영)이다. 그래서 전기적 에너지를 금속에 주면 에너지 밴드의 상층부의 상태에 존재하고 있는 전자들이 그 전기적 에너지를 받아 더 높은 에너지 준위인 상태로 올라가게 되고, 그 비어 있는 상태를 주위의 다른 전자들이 채우게 된다. 결국 전자들이 이동하게 되어 우리는 금속은 전기를 잘 통한다는 뜻으로 도체(conductor)라고 부른다. 부도체(insulator)는 에너지 밴드 갭이 커서 웬만한 전기적 에너지로 가전자대(價電子帶)에 있는 전자들이 에너지 밴드 갭을 뛰어넘어 전도대(傳導帶)로 가기가 쉽지 않다. 반도체(semiconductor)는 에너지 밴드 갭이 어느 정도 되나 전자들이 전기나 빛 에너지로 금지대(禁止帶)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도이고, 적절한 도핑으로 전기를 통할 수 있다.

결정(고체)에 빛이 쪼이면, 빛에 속한 광자의 에너지가 결정에 속한 전자에게 전달된다. 지금까지 색에 대한 글에서 색이란 발광체로부터 온 빛에 물체가 반응하는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근거로 새벽이나 저녁에 보이는 노을의 색깔, 파란 창공이나 바닷물의 색깔을 설명한 바 있다. 식물의 색이 녹색인 이유는 여러 가지 파장의 빛 중에서 유독 녹색에 해당하는 빛을 이파리에 있는 엽록소가 흡수하지 않아 우리 눈에 반사되어 녹색으로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꽃과 낙엽의 색깔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설명한 바 있다, 고체의 색깔은 그것이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에너지 대역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앞의 글 ‘5. 빛과 그리고 그림자 – 빛이란 무엇인가?’에서 가시광선의 파장이 380~750nm라고 하였다. 가시광선의 해당 에너지값은 수 eV 수준인데, 구체적으로 보라색은 3.3 eV, 빨간색은 1.7 eV 정도이다. 결국 고체의 에너지 밴드 갭의 크기와 가시광선의 에너지값을 비교하면 우리 눈에 어떤 색으로 보일까를 알 수 있다. 앞으로는 물질의 에너지 대역, 구체적으로 에너지 밴드 갭의 개념으로 색을 해석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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