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의 장면
시간을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나는 지금, 2026년 1월 7일 목요일 새벽 5시 3분이라는 정확한 시간 앞에 서 있다.
올해로 마흔셋이 되어가는 나에게, 이 많은 시간을 한 번에 풀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기억은 늘 한 장면에 붙잡혀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고통스러운 지점에 이르러서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은,
이제는 조금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어서다.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머릿속에 쌓인 불순물들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이미지보다 감정만 남아 있다.
그 감정의 이름은 아마도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집에 혼자 있었고, 먹을 것이 없어
숯을 데워 쓰는 곤로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중멸치를 볶고 있었다.
집 안에는 타들어 가는 멸치 냄새가 가득 찼다.
답답함을 참지 못해 마당으로 나오려던 순간,
사촌오빠가 집에 들어섰다.
그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당황 속에서
재빨리 부엌으로 몸을 숨겼다.
멸치를 볶아 먹은 일 자체보다,
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감각이 먼저 나를 덮쳤다.
마치 내가 잘못된 존재라도 된 것처럼.
매캐한 연기와 비릿한 냄새를
손바람으로 쫓아내며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얼어 있었다.
사촌오빠의 발소리만 들으며
제발 이쪽으로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는 들어오지 않았고,
그가 떠난 뒤 마당에 서서
나는 내 행동을 몹시도 부끄러워했다.
그날 멸치가 어떻게 되었는지,
누군가에게 들켰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의 감각만은
지금도 잔상처럼 남아 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지금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마치 안부처럼 반복된다.
어린 나는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고,
몸에는 치료받지 못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지금도 골반 위에
띠처럼 남아 있다.
아마 말을 하지 못했을 뿐,
그 이전부터 쌓인 감각들이
다섯 살, 여섯 살의 나를 이미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감각.
들키는 순간, 숨고 싶어지는 몸.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는 말보다 먼저 몸이 얼어붙는다.
설명하기 전에, 변명하기 전에,
먼저 숨는다.
이 기억을 깊이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감정들이
사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불안정한 인간을 만들어왔다는 생각을 한다.
곧 출근을 해야 하기에
오늘은 여기까지 적는다.
이 기억을 꺼내 놓은 감정들이
오늘 하루의 나를 집어삼키지 않기를 바라며
화면을 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이든, 한 달 뒤든,
나는 또 다른 장면을 꺼내
다시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