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이 글에서는 국민학교라 칭하겠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늘 나머지 공부를 했고, 1학년 때 공부를 못 한다는 이유로 팬티만 입고 복도에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팬티만 입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한글을 읽지 못해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 더 창피했던 것 같다. 울거나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지도 않았다.
다만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고슴도치 머리에 포동포동한 몸을 가진, 마흔 대 초반쯤 되었을 남자 선생님을 몹시 무서웠했었다.
그 이후 다시 팬티 차림으로 복도에 서 있었던 기억은 없다. 이상한 점은, 그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나를 보거나 흘깃거리던 장면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부끄럽고 고통스러워서 기억을 지워버린 건 아닐까 싶다.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때의 수치심은 오히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또렷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 후로도 위생검사 시간은 계속되었다. 나는 잘 씻지 못했고, 머리에는 이가 많았으며 손톱 밑과 몸에는 때가 가득했다. 옷은 계절에 맞지 않게 여러 겹 껴입었고, 소매 끝은 늘 해지고 얼룩져 있었다.
월요일마다 손톱검사를 했고, 나는 거의 매번 걸렸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자로 내 손등을 때렸고, 때가 있는 곳에는 굵은 매직으로 X 표시를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손등은 또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너무 창피해서 울지 못했고, 맞은 뒤에는 손가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런 일을 겪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고, 맞는 사람은 나 혼자였던 것 같다. 울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아이들 앞에서 우는 것이 더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우리 집에는 귀신이 살고 더럽다며 놀렸다. 누구도 나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나는 학교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가려운 머리를 긁으면 책상 위로 이가 떨어졌고, 들킬까 봐 얼른 손가락으로 눌러 죽였다. 공부보다 월요일마다 돌아오는 위생검사 시간이 훨씬 더 싫었다.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은 냄새난다, 더럽다며 놀렸다. 나는 도시락 뚜껑을 살짝 열어 한두 입 먹고 다시 닫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점심시간을 집에 돌아가서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어느 날 월요일 위생검사가 있는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 뒤에 있는 깻잎밭에 숨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리가 아프면 깻잎을 눕히고 그 자리에 몸을 말았다.
그때의 걱정은 하나였다.
깻잎밭 아주머니에게 누가 깻잎을 이렇게 엎어 놨냐고 혼나지 않을까 하는 것.
엄마가 나를 찾을까,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혼날까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위생 시간이 너무 싫었고, 깻잎밭은 편안했다.
깻잎은 크고 나는 그 안에 쏙 들어가 있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어린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럽다고 피하고, 말수가 없고, 학업이 느린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 이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느낀 점은...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어디에서도 보호받거나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의 기억은 가장 혼잡하고 복잡하다. 모든 감정과 기억이 그 시기에 멈춰 있는 느낌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그것을 증폭시키는 반복에 가까웠다.
몸과 옷이 더럽다고 따돌림을 받았던 일, 소풍날 도시락이 없어 부끄러웠던 일, 집의 냄비마다 구더기가 들끓던 풍경들. 그때의 기억들은 모두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가장 크게 남은 것은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에게 고집을 부리며 서서히 이겨 먹으려 했다는 기억이다. 학교에서는 말수 없는 아이였지만, 집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부모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짜증의 대상이 되었다.
그 감정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더 커졌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나의 가장 큰 문제, 그 죄책감의 시작은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