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게
양발을 벽에 올린 채 그녀는 휴대폰으로 당근마켓을 보고 있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기타 모임을 검색한다. ‘기타 박스’라는 이름이 뜬다. 자세히 읽어보기도 전에 대충 훑고는 ‘모임에 가입하기’ 버튼을 누른다.
그녀는 모임에 가입한 것만으로도 이미 1년은 다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들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한 기억도 있는 듯하고, 기타 실력이 원하는 만큼 늘지 않아 결국 그만둔 듯한 기분까지 앞서 온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가입했던 모임은 한 달쯤 지난 뒤에야 우연히 떠오른다. 그녀는 무엇을 배워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녀는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크고 시간은 조금씩 생긴다. 나이가 들면 취미나 자기 계발 같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발만 살짝 담갔다 빼는 것만으로도 마치 다 해낸 듯, 이미 정을 떼어낸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 그녀에게 말해주면 좋겠다. 너는 내향적이고, 게으르며, 발전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 계속 시도했다가 실패하며 좌절하지 말고, 차라리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집에서 TV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어쩌면 네 행복의 길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그녀는 나의 딸이다.
나는 사랑을 준다고 주었는데, 그녀는 왜 이렇게 공허함을 느끼며 방황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엔 그녀는 나보다 훨씬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고 제약도 적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녀는 게으르고 한심하게 느껴진다. 나라면 그 젊음과 조건으로 무엇이든 시도하고 도전해 보았을 텐데.
오늘 저녁, 딸이 밥을 먹으러 온다고 한다. 나도 이제 쉬어야 할 나이인데, 이상하게도 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날 이렇게 만든 건 엄마다. 엄마는 늘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면서 그에 대한 결과를 원한다. 나는 엄마의 기분을 맞추느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르게 되었다.
오늘도 엄마네 집에 밥을 먹으러 간다. 가기 싫다. 그렇지만 ‘갈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못했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엄마는 늘 이렇게 묻는다. “오늘 밥 먹으러 오지?” 질문이지만 사실은 통보다. 나는 마지못해 “응”이라고 대답한다. 늘 이런 식이었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무조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말 대신 의미 없는 소리를 낸다. “으응.” 그 소리는 동의도 거절도 아닌, 다만 마찰을 피하기 위한 소리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누군가를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날 이렇게 만든 건 엄마라고 생각하면, 나는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엄마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편하다.
엄마는 국그릇을 내 쪽으로 밀어놓고 젓가락을 든 채 나를 본다.
“엄마 말이 틀려?”
나는 잠깐 웃는다. 웃는 얼굴이 가장 안전하다.
“아니, 틀린 건 아닌데… 그냥 지금은 기타가 좀 재밌어서.”
“재밌어서?” 엄마가 그 말을 씹듯이 되묻는다. “재밌는 게 얼마나 가겠어. 너 원래 뭐 시작하면 금방 시들해지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밥을 한 숟갈 더 뜬다. 밥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말이야, 재미 말고 필요한 걸 해야 돼.” 엄마는 반찬을 내 그릇에 얹으며 말한다. “엄마가 다 살아보니까 알아. 너 건강해지라고 하는 말이야.”
“알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
엄마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이는 건 대답보다 빠르다.
“기타 배워서 뭐 할 건데?”
“… 그냥.”
“그냥이 어딨어. 결과가 있어야지.” 엄마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너는 맨날 그냥이야. 그래서 아무것도 안 되는 거야.”
그 말에 가슴이 철컥 내려앉는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말하면 더 길어진다는 걸 안다.
“엄마가 헬스 등록해 놨다니까. 같이 다니자. 엄마도 너랑 같이 가면 좋고.”
‘같이’라는 말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든다.
“엄마, 나 혼자 좀 생각해 보고…”
“뭘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씩이나 해? ” 엄마가 말을 끊는다. “넌 생각만 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엄마 말 좀 들어.”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배는 여전히 고프지 않다.
“엄마는 왜 내가 뭘 원하는지는 안 물어봐?”
잠깐의 정적.
엄마는 내 얼굴을 본다. 당황한 표정이다가, 이내 다시 익숙한 얼굴로 돌아간다.
“그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잖아.”
그 순간 나는 알게 된다. 이 대화에는 출구가 없다는 걸.
“응.”
나는 다시 그 소리를 낸다. 으응. 동의도 거절도 아닌 소리.
엄마는 그제야 안심한 듯 다시 반찬을 집어준다.
“엄마가 괜히 이런 말 하는 건 아니잖아.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저녁 엄마가 싸준 반찬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냉장고 안에는 사흘 전, 엄마가 사준 반찬이 그대로 있다.
나는 잠깐 냉장고 문 앞에 서 있다가, 그 반찬들을 꺼낸다.
뭘 먼저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버린다.
그렇게 하루가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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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갈망했었다.
나도 엄마와 이런 갈등을 겪어보고 싶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일상적인 갈등을 겪는 관계를.
그래서 이 글은
내가 원했던 모녀 관계를 상상하며 쓴
짧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