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이야기 하기는 쉽다. 4

국민학교 고학년

by 자작 쉼터



국민학교 고학년


4학년, 분교가 사라졌다.


나는 면에 있는 국민학교로 가게 되었고, 학교까지는 산고개 두 개를 넘어야 했다.

첫 번째 산고개에는 버섯 재배장이 있었다. 검은 천으로 덮인, 안을 알 수 없는 곳. 그 앞에 서기만 하면 심장이 먼저 두근거렸다. 눈을 꼭 감고 지나가거나,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채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바람에 들썩이던 검은 천은 늘어져 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축축하고 음침한 공기가 몸에 달라붙었다.


두 번째 고개를 넘으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길. 여름이면 뙤약볕 아래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 흔들리는 공기 속을 가로질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년을 혼자 걸어 다녔다.


아빠는 아주 가끔 차비를 주셨다. 하지만 대부분은 걷게 하셨다. 진짜 똑똑한 애들은 걸어 다니며 공부하는 법이라며, 버스를 타지 말고 책을 보며 걸으라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돈이 없어서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그 덕분에 나는 늘 걸었다. 가끔 차비를 주시는 날이면 버스대신 나는 하얀 돌사탕을 샀다. 깨물면 금세 사라질까 봐, 입안에서 아끼고 아껴 굴리고 또 굴리며 걸었다.


그 2년은 지금도 가장 아련하다. 처음 친구를 사귀었고,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으며, 아빠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감정들은 그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시기부터 엄마의 학대보다 오빠의 폭력이 더 무서워졌다. 다행히 학교생활이 즐거웠기에 그 공포는 잠시 밀려나 있었다. 지금은 오빠와 연락을 끊었다. 글을 쓰며 깨닫는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이 부모가 아니라 오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직 이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부모의 부재는 자식들을 서로의 상처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에게 받은 것을 형제끼리 주고받게 된다는 것.

다시, 좋은 기억으로 돌아가 보자.


5학년 담임 선생님은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셨다.
“진주는 커서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
그 말 한마디에 내가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예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말도 야무지고 똑 부러진다며 늘 칭찬해 주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옷도 선물해주셨는데 연노란 면으로 된 겨울 잠바, 모자에는 하얀 털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옷을 너무 아껴 졸업사진도, 겨울도 그 옷 하나로 버텼다. 옷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믿고 싶었다. 지금 사진을 봐도, 참 잘 어울리는 옷이다.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고무줄놀이, 피구, 그리고 처음 가 본 친구 집. ‘현이’라는 친구는 늘 나를 데리고 다녔고, 공부도 알려주었다. 무리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보호받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빠 일을 도왔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해질녘, 찬바람 속에 마른 흙냄새와 벼짚 냄새가 섞였다. 그 냄새가 좋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좋았다.

그 시절의 나는 대체로 행복했다. 집에서의 불안은 익숙했기에, 좋은 감정 속으로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익숙한 불안은 끝내 나를 따라잡았다. 힘들 때면 그때의 공포가 현실과 뒤섞여 튀어나왔다.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단소 실기시험 날이었다. 친구들 앞에서 손을 내보일 자신이 없었다. 이 산고개를 넘으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단소는 입에 대지 못했고, 선생님은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실기시험은 그렇게 끝났다.


졸업식 날, 나는 울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슬펐다. 찬란했던 시간은 그렇게 끝났다.

이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나의 중학교로 건너 뛰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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