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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어른과 아이의 경계

by 온규

9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디지몬어드벤처"라는 애니메이션을 들어봤을 것이다. 90년대 "디지몬어드벤처"는 같은 시기 방영했던 "포켓몬스터"와 함께 전 세계 아이들을 모험 속으로 이끌었던 주인공이다.

출처 디지몬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인연


디지몬과 파트너가 된 주인공들은 선택받은 아이들로 불리며 함께 모험하며 성장해 나간다. 나도 그 당시 작은 거실에 앉아 브라운관 티브이를 통해 디지몬 모험을 함께하던 아이였다. 디지몬들의 진화를 했을 때 두근거리던 설렘, 다음 진화는 얼마나 더 멋있는 모습일까 하는 기대, 그 과정들을 전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모험들을 잊어버리고 살만큼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 때쯤 디지몬어드벤처의 마지막 시리즈 극장판인 "디지몬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인연" 작품을 접했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차고 넘쳤고 귀에 익숙한 오프닝 음악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은 10대를 졸업한 이후로는 느낄 수 없었던 종류의 설렘으로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디지몬 어드벤처 시절 초등학생의 나이로 등장했던 주인공들은 마지막 시리즈인 만큼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른과의 아이의 애매한 경계에 서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으면 술잔을 기울일 만큼 훌쩍 커버린 주인공들을 보니 마치 지금의 내 모습과 같았다. 지금의 우리 모습은 주인공들의 모습과 같다.


출처 디지몬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인연


어른과 아이의 애매한 경계

"어른과 아이의 애매한 경계" 이 단어가 뜻하는 애매함 속에서 갇혀 나를 믿고 나아가기에는 어리숙한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기에는 도태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 속에서 메인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 "태일"과 "매튜"는 함께 모험했던 친구들은 진로를 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에 더욱 불안함을 느낀다. 조금 더 방황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해도 괜찮을 나이에 나와 맞는 무언가를 일찍 찾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제생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모습이 지금 내 모습과 같아 나를 아프게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순서대로 놓인 계단들을 밟아 올라가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누구나 방황할 수 있다 생각한다. 그 방황의 끝에 내가 좋아하는 내가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주인공들은 파트너 디지몬들과의 이별을 앞당기는 선택을 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한 희생과 내면의 성장을 이끌어 내는데 단순히 악역 디지몬을 해치우는 내용인 줄만 생각한 나를 생각이 많아지게 만들었다. 과거 "디지몬어드밴처" 작품에서 세상을 몇 번씩이나 구했던 일들로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현재는 버겁기만 한 왕관을 벗어던지고 희생하며 그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는 배울 부분이 많다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도 처음에는 스스로를 모래 속 진주인 줄 알고 살아가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부딪히고 좌절하다 보면 진주가 아니라 파도가 깎아낸 유리조각일 뿐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설령 내가 진주가 아니라 유리조각이더라도 아름답게 변하기 위해 부딪히고 깎였을 과정들을 생각해 보자

"디지몬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인연" 마지막 주인공 신태일의 파트너 디지몬 아구몬은 이별의 순간 "태일아 많이 컸구나" 말한다. 그 말은 마치 어린 시절 디지몬어드밴처와 함께 여행했던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처럼 우리는 많이 자랐다. 다른 힘듦과 행복을 경험하면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있다. 진주 같은 사람도 파도가 깎아낸 유리조각 같은 사람도 아름다움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디지몬어드벤처와 함께 모험을 하고 자라 어른의 경계에 서서 디지몬어드벤처와 이별을 한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아이들이다.​

출처 디지몬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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