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다짐!
26년이다. 또 한 살을 먹었다.
이젠 감흥도 없다. 다만, 오십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무섭다.
어릴 적에는 마흔이 되면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뭔가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고, 인생을 다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막연히 상상했다.
하지만 마흔을 훌쩍 넘기고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나는 여전히 철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철든 척을 하고 있다.
정신연령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스무 살 무렵의 내가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젊음이라도 함께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또 아니다.
흰머리는 늘고, 살은 붙고,
풍채만 보면 나관중의 『삼국지』 속 동탁이다.
'동탁은 절대 권력이라도 누렸지!'
나는 그저 소시민, 아니 NPC 10002번쯤 되는 인생이다.
그나마, 머릿속 상상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물론, 상상을 현실로 저지르는 바보 같은 선택지는 없다.
그래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 상상조차 괴랄하거나 원초적이지도 않다.
그저 쉰다섯이 되기 전 현금 자산 10억을 가진 중산층,
풍채 좋은 뚱뚱한 아저씨가 되고 싶을 뿐이다.
어디에서든 누군가에게 쩔쩔매지 않고
손 벌리지 않으며
당당하게 할 말 할 수 있는 사람.
이성에 대한 욕망은 옅어졌다.
아무리 예쁜 여성이 지나가도
머릿속으로 결혼해 살아보면
웬수가 된다.
플라톤이 말했던 '예순이 되어 정념이 끊어졌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이 말이 슬금슬금 내게도 와 닿는다.
정념.
그놈의 정념이 십 대 후반부터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가.
이제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동시에 묘한 해방감도 있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자연의 법칙을 배운 기분이다.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2026년, 부서가 바뀌었다.
익숙하던 업무를 떠나 전혀 새로운 일이다.
나이 든 사람에게 도전을 요구하는 건 솔직히 달갑지 않다.
하지만 익숙함에 머물면 머리는 둔해지고 사람은 게을러진다...
사실 다 변명이다.
먹고살아야 하니 그냥 옮긴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건 언제나 두렵다.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받는 평가는
더 무섭다.
부서를 옮기기 전, 부서장에게 들은 말이 썩 좋지 않았다.
나는 웬만한 말은 다 참고 넘기는 사람인데
그 말만큼은 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흰소리는 빨리 흘려보내는 게 상책이다.
침울한 마음으로 아내 통순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크게 분노해줬다.
그 모습에 살짝 감동까지 받았는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잊을 만하면
옆에서 다시 꺼내고
또 꺼냈다.
결국 참다못해 말했다.
“통순, 내 부서장은 딱 한 번 말했어.
근데 당신은 지금 몇 번을 하는 거야.
이미 두 자릿수를 넘겼네!”
“아! 오빠가 잊고 행복해질까 봐 계속 말해주는 거지. 껄껄껄!”
중년 아저씨처럼 웃는 아내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 정념이 사라질 수밖에 없겠구나.
더 나아가
왜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됐다.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로 유명하다.)
2026년이다.
나는 지금 시험받는 자리에 서 있다.
상처받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냥 덤덤하면 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평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조용히 있다 보면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아무 일 없듯 잊혀질 수도 있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다만 하나,
재테크만큼은 꾸준히 해야 한다.
욕먹는 건 기분 나빠하면 그만이지만
재테크를 게을리하는 건
앞으로의 삶에 치명적이다.
이 부분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말고
약속한 대로 계속 이행해야 한다.
또 이행하고, 또 이행해야 한다.
딱 1년 뒤,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