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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이 한번 더 바라보기#10

우여곡절 성장기 - 내가 술을 끊은 이유

by 포야와 소삼이

집으로 가는 택시 안 나는 내 휴대폰이 주머니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눈은 감겨있었고, 점퍼 겉 주머니, 안주머니,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도 없었다. '에이.. 잃어버렸다보다' 하면서 지갑은 있나 뒤적뒤적 느린 손으로 찾아봤는데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어젯밤은 회식을 한 날이었다. 의외로 술이 먹고 싶은 날이었고, 직장의 회식이지만 나 혼자의 기분을 풀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술이 잘 들어갔고, 집에 일찍 가자는 내 작전이 통한 듯 나는 나만 모르게 취해가고 있었다. 고깃집에서 1차를 하고 주변 분식집으로 2차를 간 거 같은데.......


어느 새부터 인지 술을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필름이 끊긴다. 30대 후반 나타나는 현상이다. 1년에 3~4번은 꼭 그랬다. 직장인으로서 안 먹을 수 없는 자리도 있었지만 보통 내가 조금 더 술을 마시고 싶거나 막내 직원으로서 한두 잔 더 마시는 것도 있었다. 하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담배를 하지 않는 나는 건강에 문제는 없겠지 하고 넘어갔다.


그날은 처음으로 휴대폰을 잃어버린 날이었다. 지갑은 다행히 꺼내질 않아서 찾은 거 같은데 다음날 알아보니 근처 햄버거집에서 밤 11시에 남은 햄버거를 다 사주기도 했단다... 참나... 이런 게 기억이 안 나다니...


그날은 처음으로 둘째가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 날이었다. 새벽에 내가 좁은 거실 바닥 중 난방이 되는 싱크대 아래에서 누워서 자고 있는데 살짝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떴을 때 옆에 둘째가 있었다. '왜 여기서 자고 있냐 이 멍청아'라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둘째는 가끔 일찍 일어나서 내가 새벽에 출근할 때 다시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들어가서 자야지 아빠는 회사 다녀올게.. 안녕~'하고 인사하는데 쾡한 눈과 더 짙어진 주름을 쥐어짜며 바라봤으니 이상할 만도 하다


하루 종일 생각이 났다. 말을 하지 못하는 둘째의 눈에서 무언가 말을 하는 것처럼 날 바라보는 게 계속 생각나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둘째는 하루하루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나는 옆에서 잘 자라는 한마디 해주지 못할지언정 술을 거하게 먹고 들어왔다. 적당히 먹은 것도 아니고 혼자 사는 사람처럼,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그저 퍼마셨다. 술 먹은 다음날 저녁 첫째에게 온갖 잔소리를 들어도 괜찮았는데 둘째가 놀다가 베개로 때린 내 머리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큰 타격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아빠 괜찮아?' 정도의 말이라고 해줬으면 아니면 정말 심한 말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냥 하루 즐겼으면 됐지, 애들 보고 힘든데 하루 술도 못 먹을 순 없잖아. 하기보다 책한 권 읽어주지 못한 아빠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로 술을 끊기로 다짐했다. 원래 술을 많이 먹지 못하긴 하지만 술보다도 훨씬 다른걸 많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술 먹은 다음날도 지쳐서 일찍 쓰러지지 말고, 옆에서 같이 재워주면서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직장에서는 아내가 금주령을 내린 것처럼 말은 하였지만(내가 스스로 술을 끊겠다고 하면 믿질 않아서였다.) 내 가슴속에 깊이 떠올렸다. '내아이 한번 더 바라보자'


결국 휴대폰은 찾았다. 구글 휴대폰 찾기로 신호가 잡히는 곳을 수소문한 결과 생전 가보지도 않은 연대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걸 근처 중국집 사장님이 주워 보관 중이셨다. 휴대폰은 차에 여러 번 밟힌 듯 앞뒤로 액정이 깨져있었고, 진동만 작동하고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서 연락을 못했다고 한다. 정말 기가 찰 일이다. 휴대폰의 모습도 가관이었다. 주말에 서비스센터에 가서 30만 원을 넘게 주고 수리를 했다. 둘째가 좋아하는 딸기 사줘야 되는데 정말 할 말이 없다.


우리 부부 같은 경우는 둘째가 느리고 다른 아이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변화에 민감하였다. 오늘은 어떤 말을 할까, 어느 발음이 안 좋을까, 언어치료 선생님과 어떤 대화를 하면서 변화시켜야 할까 등 아빠인 나도 당연히 참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 나는 이제 술을 먹지 않을 예정이다. (현재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모임, 회식, 술자리 등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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