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무서워
둘째 아들이 태어나 병원에서 집으로 올 때, 속싸개 위 겉싸개에 꽁꽁.
집에 와 약 150일간 누워, 기대어, 엎드려 심지어 유모차에서도 이불과 베개와는 늘 짝꿍이었다.
아들 6년 인생의 3년은 이불과 붙어 지낸 듯한데, 작년 코로나 1년으로 이불은 둘째의 베프(best friend)가 됐다. 아침에 눈을 떠 거실 밖으로 나오면 밤새 식은 거실의 공기 탓에 아들은 다시 침실의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금세 아침 일상인 만화 시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 나오는 아들 몸에는 1,100X2,000 사이즈의 싱글 이불이 들러붙어 있다. 그리고 손이 없어 깜빡한 베개까지 추가한다.
어린이집에서 귀가 한 뒤, 소파나 식탁에 앉을 때도 주변엔 이불과 베개가 따라다닌다. 걸리적거려 방에 던져버리면 어느 순간 다시 거실에 자리 잡고 있는 이불과 베개. 그렇게 좋으면 너 다 가져라.
침실의 이불을 거실까지 간혹 주방까지 끌고 다니는 꼴이 보기시러 자기 몸을 다 덮을 충분한 사이즈의 담요를 사줬다. 한동안 덮고, 두르고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잘 때 덮는 이불이다. 더 포근하고 묵직하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코로나로 '집 밖은 위험해'에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우리 아들은 "무서워, 무서워" 하면서 이불속으로 머리를 쏙 집어넣는다. "들어와, 들어와" 하면서 엄마를 불러들인다. 하얀 이불속에서 아들과 둘이 꼭 붙어 있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하다.
어릴 적 지금은 폐허가 되어 철거된 할머니 댁에는 쾌쾌한 냄새가 스멀 올라오는 아주 두꺼운 이불이 있었다. 장롱 속으로 들어가서 놀다 보면 이 냄새에 취해 잠이 들곤 하는데, 이불이 아주 푹신했던 기억이 난다. 그 장롱 속에는 왜 그렇게 베개가 또 많았는지 친척들이 다 와서 그 좁은 데서 자는데도 베개는 부족하지 않았다. 베개만 다 꺼내서 내 구역을 만들고 배게 싸움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 정겨운 이불과 베개는 항상 넉넉했다. 두꺼운 이불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내 몸을 누르듯 묵직한 게 나를 덮으면 내가 잠이 온 건지 나를 잠에 들게 한 건지 무서운 꿈을 많이 꾸었던 기억도 난다. 어찌나 무거운지 하나 꺼내서 펴면 다시 접기 어려웠다. 그걸 들고 장롱에 넣다가 떨어뜨려 다시 접은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 기억으로 어머니가 나의 결혼을 앞두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께 이불을 선물하셨다. 부귀와 영화를 뜻하는 모란과 국화 같은 꽃문양도 화려한 그 두꺼운 이불을 선물하셨다. 한번 누워보시라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란히 이불을 덮고 행복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두꺼운 이불이면 시골집 한창 추운 겨울에도 끄떡없을 것이다.
이불은 어쩜 세상의 추위와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방패막일까, 내 아들에게 세상은 이불속처럼 따뜻하고, 안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