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스키 범(Ski bum)이란 말이 있다. 집도 없고 노숙을 하면서 스키에 미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돈 없는 젊은이들이 스키장 화장실에서 자고, 라면 먹으면서 스키와 보드 타는 헝그리 보더와 스키어들이 있다고 하지만, 휘슬러에 같이 일하는 강사 중 프로페셔널 한 월드클래스 스키 범이 하나 있다. 금발에 초록색 눈을 가진 미남으로 얼핏 보면 영화배우같이 잘 생겼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하루는 손님들을 데리고 같이 산으로 이동하는 곤돌라 안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강사들은 강사 스케줄 잡아주는 스케줄러(Scheduler)나 스키 스쿨의 매니저의 전화를 받아야 출동할 수 있기 때문에 핸드폰은 필수다. 그런데 브루노(Bruno)라는 친구는 핸드폰을 한 번도 구입한 적이 없고 전화는 필요 없다고 해서 나와 한참 동안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에 핸드폰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한다. 집은 쓰러져 가는 캠핑 카 이고, 친구 집이나 스키장 락커 룸에서 샤워 하며 캠핑 카 안에서 한겨울에도 난로 하나로 지낸다고 한다.
그는 스키 강사를 해서 돈을 벌고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조차 싫어서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을 한다. 마사지 기술을 익혀서 아는 사람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돈을 벌어 살림에 충당 하기도 한다. 워낙 재간이 좋아서 20세 초반에 세일즈를 잘해 돈을 벌어 스포츠카도 사고 잘살아 보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것이 좋아서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아버지는 건축가이고 집안은 큰 부자다. 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여름에는 카리브 해에 있는 아버지 별장에서 쉬고 온다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건축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카리브 해에 큰 정원이 있는 호화 저택에 살고 있어요.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유산을 받겠지만, 나는 그 재산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고 살아요. 누이도 있고, 조카도 있고 또 사회에 공헌도 해야 하니까 나는 그 재산을 탐내지 않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예로부터 사랑하는 자식이면 여행을 보내라고 했다. 만약에 자녀들이 여행을 가서 브루노와 같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면 참으로 값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도 세계 여행을 다니며 여러 방면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좋은 경험을 했다. 새로운 사상과 관점을 접할 때마다 ‘참 멋지게 사는 이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 속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고 살다가 브루노와 같은 자유인과 대화하고 그의 삶을 살짝 엿보면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때가 많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자연인의 자유로운 삶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브루노도 한때는 마약 딜러도 하며 나쁜 길로 떠났다. 하지만 스포츠가 좋고 자유롭고 싶어 마약에서 손을 떼고 자유롭게 산다고 한다. 자유로운 것도 좋지만 돈이 좀 더 있다면 여행도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편안한 집에서 더 재미있게 살지 않겠냐고 물어보자 브루노는 이 질문에 크게 반박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돈의 노예가 되지. 자유스럽고 편안한 것과는 정반대야. 돈은 마약 같은 것이기에 돈 맛을 보면 돈을 더 벌고 싶고, 당신의 인생은 돈을 향한 인생으로 변할 거야. 나는 돈이 없으면 그때그때 일해서 벌고 여행하고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잘 곳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일거리도 있어서 부족한 것이 없어. 나는 자유스러운 나의 삶이 좋아. 내 주위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이 나의 삶을 부러워하지. 나는 그들의 얽매인 삶이 하나도 부럽지 않아. 나는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초월해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살고 있어.”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브루노 그래도 돈이 조금 있으면 살기 편할 거야, 대부분 사람들은 노후 보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만약 네가 백만 불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너한테 그 돈이 있으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지금 네가 캠핑 카에 자는 것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편할 거야." 그러면서 내가 ‘You are rich ? I am free’ 라는 주제로 책을 쓴다고 하자 브루노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라며 자기 얘기하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3년 전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집세도 내고 평범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완전한 자유를 느껴. 처음에는 배도 고프고 잘 때도 없어서 고생하고 걱정도 했는데. 사람들이 날 그냥 굶어 죽게 놔두질 않아.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면 행복해지는지 가르쳐 주면 사람들은 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위해 도움을 주지. 여행 경비를 주기도 하고 돈을 주기도 해. 지금 타고 다니는 캠핑카도 나에게 도움을 받은 어떤 이가 선물로 준 거야. 사람은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하고 도울 줄도 알아야 해. 내게 백만 불이 있으면 나는 땅을 사겠어. 땅을 사서 과일, 야채, 곡식을 심어 가난한 이들과 서로 나누어 먹을 거야. 서로 도우며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