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르치는 개인 레슨(Private Lesson) 강사들 중 나이 많은 폴란드 출신 테드(Ted)가 있다. 그는 머리와 수염이 하얀 70세의 백발 노인이다. 스키 강사 초고연령은 88세인데 보드 강사가 70세는 좀 드물다. 주로 젊은 층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40대가 보드 타는 것을 보기조차 쉽지 않다. 나는 휘슬러 보드 프라이빗 스쿨 강사 중 제일 못 타는 사람 중 하나인데 테드 같이 나이 많은 이가 보드를 잘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폴란드 출신으로 캐나다에 이민 온 지 30년이 되었고, 부인은 토론토에 살고 있어 겨울만 되면 가족과 헤어져 이곳으로 와서 혼자 산다고 한다. 30년 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할 때 공산국가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기계 공으로 캐나다에 이민을 오게 되었다.
테드는 보드 코치 출신이며 죽은 그의 딸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했던 국가대표이기도 했다. 70세 노인이면 잘 걷지도 못할 텐데 보드 강사라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하루는 정말 잘 타는지 보기 위해 같이 정상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그런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보드의 고도 기술인 카빙(Carving)도 잘하고 나무 사이도 막 지나가고 스피드도 꽤 낸다. 단지 장거리를 계속하기는 좀 힘든 것 같아 가끔 쉬었다 가기는 하는데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잘 탄다. 레슨도 잘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또 한 가지 70세 노인이 혼자 떨어져서 사는 것이 항상 의아했는데 하루는 그와 함께 술 한잔 같이하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스노우 보드 국가대표 선수인 딸이 하나 있었다. 삶에 열정적인 딸은 스노우 보드만 아니라 스포츠를 통한 마약 퇴치를 위한 운동에 가담하여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들에게 스노우 보드를 가르치고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일을 하였다. 테드 역시 불우한 소년 소녀들을 무상으로 숙식을 제공하며 스노우 보드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마약퇴치운동에 너무 깊게 말려들어 마약 딜러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한때 테드는 자기 딸을 살해한 이가 누군지를 짐작했고, 그를 자기 손으로 죽이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 딸의 복수를 위한 만반의 계획을 세우고 그를 살해하기 직전 테드는 사랑하는 딸의 음성을 들었다. "Dad, please don't do it"(아버지 제발 그러지 마셔요). 그 음성이 얼마나 선명했던지 테드는 손에 들었던 칼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딸이 간곡하게 부탁하는 음성을 듣고 불타오르던 복수심을 내려 놓은 것이다.
우리가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을 때 이런 얘기를 하던 테드는 여러 사람 앞에서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이 든 보드 강사인 그가 그 순간 멋있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그가 부인을 토론토에 놔두고 휘슬러에서 혼사 사는 이유도 죽은 딸의 아픔 때문이다. 아직도 자다가 깨고 악몽에 시달리며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겨울철에 스노우 보드 강사라도 하지 않으면 이런 지루하고 어두운 날들을 지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테드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나에게 스노우 보드가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참 삭막했을 거야. 딸의 죽음 후 나는 실의의 빠져 삶의 낙을 잃었지. 게다가 가지고 있던 재산도 사기를 당해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 지금은 주위의 불우한 아동들에게 보드를 가르치는 삶에 희망을 보고 살고 있어. 눈과 산은 참 고마운 존재야.”
테드는 딸의 죽음에 너무도 상심하여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딸의 죽음은 정말 슬프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어머님을 여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안다. 하지만 자녀의 죽음은 이보다 더 훨씬 크다고들 한다.
스키강사 중 70세 된 같은 이름을 가진 또 한 명의 테드가 있다. 그는 토론토에 살다가 50대에 부인과 잠깐 놀러 왔다가 휘슬러의 블랙홈 산에 있는 글레이시어(Glaciar)라는 곳에서 스키를 타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스키 강사가 되었다. 재미있는 일은 테드는 50대에 스키를 처음 탔다고 한다. 그때 처음 타 본 스키가 너무 좋아서 교육을 받고 강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지금은 아내도 스키 스쿨에서 매니저로 일한다고 한다. 스키를 늦게 배운 대신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연습했고, 지금은 가장 나이 많은 원로 스키 강사 중 하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은 스키 스쿨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참 보기가 좋다. 스키 강사인 테드는 이렇게 말했다.
“50대에 처음 스키를 접했지만 스키에 반했고 나의 은퇴생활은 여기서 스키 강사를 하면서 부인과 지내야 겠다고 결심했어. 우리는 스키 강사 하면서 버는 돈으로 집세 내고 용돈도 쓰지. 겨울에는 여기서 스키 강사와 여행을 하며 6개월간 지내고, 여름에는 수영장이 딸린 토론토 우리 집에서 지내며 할리데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할머니랑 전국일주를 하면서 살아. 내 인생은 참 즐거워.”
존(John)이라는 할아버지 보드 강사를 만났는데, 그는 75세로 최고령 강사다. 88세의 최고령 스키 강사도 있긴 하지만, 75세에 보드를 탄다니 참 경이로웠다. 단지 보드를 타는 것만이 아니고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다. 하도 신기하고 믿어지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가서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존(John), 그 나이에도 보드를 잘 탈수 있나요? 아주 정정 하시네요.”
“나는 이 나이에도 보드를 잘 타는 인기 강사야. 특이 나이 좀 먹은 손님들이 나를 보고 용기를 가지고 더 열심히 배우려 하지. 나는 시니어 클럽에서 60세 이상 시니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는데 참 재미있어. 이 일은 스트레스가 없으며 나의 최고의 은퇴 플랜 이야. 은퇴하고 내 생활비도 벌어가면서 이렇게 좋은 자연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지내는 것은 최고지.”
이런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은퇴 계획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 10억 정도 모으면 은퇴해서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돈 많고 나이 많은 사람과 결혼에서 편안하게 살라고 한다. 흔히들 나이가 들어 병에 걸리면 자식이 있어야 돌보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자식과 부모들이 돈 때문에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10억 벌려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병으로 죽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가끔 노후에 어떻게 살까 상상해 본다. 70대에도 200-300만 원 정도 용돈을 벌면서 세상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삶도 괜찮지 않은가 싶다.
챙(Chang)이라는 44세의 중국계 캐나다인은 Anderson, IBM과 같은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며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어놓고 42세에 은퇴한 싱글이다. 토론토에서 호화로운 콘도에 살다가 세를 주고 밴쿠버에 집을 또 사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 스키 스쿨에서 버는 수입은 용돈으로 쓰고 임대료 수입으로 저축도 하며, 남은 날 동안 돈 걱정하지 않고 살기 위해 이곳 휘슬러에서 스키 강사를 하며 싱글로 산다고 한다. 어떻게 이곳 휘슬러에 와서 강사를 하게 되었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10년 전에 이곳 휘슬러에 놀러 와서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운동하고 세계 최고의 설경을 즐기며 사는 것이 내 최고의 은퇴 플랜이 될 것 같아서 이곳으로 오기로 마음을 먹었지. 나는 컨설팅 기업에서 열심히 일해서 평생 먹을 돈을 벌어 놓았고, 겨울에는 스키 강사 하고 여름에는 골프를 치며 살아. 휘슬러는 스키 뿐만 아니라 골프 천국이기도 해. 경제적이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골프를 칠 수 있는 곳이 휘슬러야.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 인생을 즐기며 싱글로 사는 재미도 좋지. 나는 파티도 자주 하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내 삶이 좋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