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는 6일간 일정이었지만,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 곳이다. 칠레는 광대한 바다와 산이 세계적 관광 명소로 유명하지만, 가장 인상 싶었던 것은 칠레 사람들이다. 비즈니스 관계상 3-4일간 사업 파트너를 방문하고 맨 마지막 날은 리구리아(Liguria)라는 산티아고 식당 체인점 구석에서 혼자 앉아 샐러드를 먹으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 고급스럽지 않고 평범한 분위기의 서민적인 식당인데, 칠레의 전통적인 기풍과 전통을 살린 멋진 곳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브라질에 살아서 어느 정도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었는데, 칠레는 아주 색다른 분위기였다. 좀 시적이고 문학적인 분위기라고나 할까! 노벨문학 수상자이고 칠레의 영웅적인 존재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가 있어서 그럴까.
유럽같이 화려하거나 고풍스럽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정서가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나는 혼자서 와인 한 병을 거의 마셨다. 옆에 있는 테이블에는 6-7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혼자 술을 먹고 있는 게 딱 했는지 나를 그들의 테이블에 초대해 주었다. 혼자 쓸쓸했는데 참 고마운 친구 들이었다. 그들은 에콰도르에서 온 친구가 방문 중이라 같이 환송할 겸 모였다고 한다. 나는 참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보았어도 옆 테이블에 있는 이방인을 이렇게 따뜻하게 초대해 주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참 따뜻한 민족인 것 같았다.
사흘은 산티아고에서 일을 보고, 이틀은 파울로 네루다(Paulo Neruda)의 고향 발파라이소(Valparaiso)에 머물기로 했다. 이곳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한 시간 반 가량 떨어진 항구도시로 전통 가옥 들의 지붕이 노랑색, 주홍색 등으로 칠해져 있는 로맨틱한 도시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유명했던 라틴영화 일 포스티노 라는 파울로 네루다(Paulo Neruda)와 한 소년에 관한 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 영화의 한장면은 그의 실제 집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어떤 처녀를 짝사랑하고 있는 동네 청년에게 시를 써 주며 서로의 우정을 싹트게 하는 감동을 준 영화이기도 하다. 네루다는 칠레의 영웅으로서 외교관과 대통령 후보에 오르기도 하고, 공산주의자로 몰려 망명 생활까지 한 민족주의자 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생가를 방문하고 싶어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 갔다. 그의 집은 고급스럽지 않지만,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아름다운 집이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데 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술을 좋아했던 그가 간직했던 위스키를 모아 놓았던 바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시를 썼던 서재는 3층 옥상에 있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런 멋진 곳에서 시를 써서 세계적인 시인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국민의 영웅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대중과 잘 어울렸다는 점이다. 그는 유명인 이었지만 평범한 동네 바에서 서민들과 술을 마시면서 대화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소박한 서민의 시인이자 동지 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람이 정치를 하면 얼마나 서민들의 고충을 잘 이해해서 올바른 정치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옆에 예술가처럼 생긴 아주 멋진 커플이 앉았다. 나도 와인 한 병을 시켜 혼자 마시고 있는데, 이 커플이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나도 그림에 대해 한마디 했다. 그러자 그들이 혼자 앉자 있지 말고 그들의 테이블에 합석 하자고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친해졌다. 우리 옆자리에 다른 두 명의 여행객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또 자연스럽게 칠레 사람이냐고 물어보면서 친해져서 어느덧 우리 테이블은 5명이 되었다. 새로운 멤버 두 명은 스위스에서 온 젊은 관광객이었다.
어느덧 새벽 2시가 되어 바를 닫아야 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손님을 더 이상 받지 않고 끝날 시간이 되자 바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 모두가 셔터를 내리고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이 참 인상적 이었다. 가장 이색적이고 멋진 밤 문화는 이처럼 규칙을 초월한 파티가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 저녁 내내 써빙을 해 주던 웨이트레스가 일을 끝낸 후 문을 닫고 노는 광경이 너무 낭만 스러우면서 자연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