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생각보다 강하다.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체육인 사람 손 들어볼까"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든 사람은 반에서 나뿐이었다.
나는 반에서 체육을 싫어하는 유일한 아이로 10대 시절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나는 체육 그 자체보다도 땀 흘리기를 싫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둘은 분리될 수 없기에 나에게 체육은 땀을 흘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땀을 흘렸을 때 차오르는 축축함은 찝찝함으로, 숨이 차올라 가쁘게 내쉬어야 하는 나의 상태는 불편함으로, 어느새 온몸의 열기와 함께 달아오른 홍조는 못생김으로 느껴져 싫었다.
그래서 여름의, 체육시간을 가장 싫어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더이상의 체육시간은 없을 것 같았지만
나는 내가 가장 힘들고 나약해졌을 때 다시 운동을 택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운동을 했던 경험은
그럼에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혹은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를 위해 가끔씩 이벤트성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여름,
땀의 계절과 함께 맞이한 나의 취준은 코로나의 영향과 함께 참 험난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함께 호기롭게 시작한 취업준비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좌절했고, 자존감과 자신감은 끝도 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려보지 않았던 불합격 소식은 땀 대신 눈물을 더 흘리게 만들었던 여름이었다.
아등바등 버텨오듯 결과로써 내 존재와 삶을 증명해내며 살아온 나는 이따금 조급했다. 합격발표를 sns에 올리는 동기들의 소식을 애써 무시한 채 내 최선의 부족을 생각했고, 한없이 모자란 나의 단점만 보여 자기혐오가 시작될 때쯤 어느덧 취준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최종합격을 기다리는 곳은 오직 한 곳, 발표까지 2주가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나는 묶여있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채로 덩그러니 놓여졌다.
이때의 나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늘 우선순위에 밀려 미뤄두었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취준과 합격 발표에 사로잡혀 있는 을의 입장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들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
전자에는 소홀했을지 몰라도 후자의 건강에는 관심이 많았던 인생이라 글과 낭만을 사랑했던 나였다.
사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운동할 때 분비되는 체내의 세로토닌이 불안과 우울을 감소시키고, 스트레스에 대한 완충작용을 한다는 것은 내 망가진 마음에 건강한 신체를 뒷받침 해야 할 객관적 근거로 스스로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하면서 어떤 상념도 용납하지 않는 상기된 몸 상태가 그렇게 조금 더 강한, 건강한 내가 되는 느낌이 처음으로 좋았다.
어쩌면 나는
하기 싫었던 운동을 해내면서
인내하고, 끈기 있게 성취해내는 나의 모습을 보며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머리가 아닌 몸의 감각으로 느껴보는 자아의 감각과 고난과 성취는 무겁게 가라앉았던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체육을 다시 맞이했다.
기쁜 마음으로
때때로
여느 사회생활에 지쳐 너덜너덜해진 나를 발견할때면 운동을 떠올린다.
적어도 스스로만큼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성과에 내 모든 가치를 내어주지 말자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놓아버리지 말자고 되뇌이며 다짐을 굳히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여본다.
23년 여름은 비 오는 날이 많을 예정이라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 야외 운동을 더불어 자연을 즐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7월의 주말, 나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저녁시간이 되어 물과 자두 몇 알을 주섬주섬 챙겨 홀로 인왕산으로 향했다. 인왕산은 초보자가 등산하기 좋은 산이라 등산하다 보면 슬리퍼, 샌들만 신고 오신 분들도 계실 정도지만 내 몸은 정직하게 땀으로 둘러쌓였고, 숨은 턱 끝까지 올라와 귀에서 심장소리가 들려오며 얼얼한 감각만이 열기와 함께 나를 감쌌다.
비로소 정상에 다다랐을 때
생동감이 흘러 넘치는 나의 몸과 더불어 눈 앞에 선물처럼 펼쳐진 서울의 야경은 무정하게 아름답다. 좋아하는 인디 음악을 들으며 감상하는 서울의 밤은, 저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힘들고 슬펐던 나의 모든 것들은 모른 채 아름다움으로 미화시키는 감각이었다. 그저 물리적인 거리의 멀어짐이 잠깐이나마 현실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모기에 헌혈당하면서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흘려 보냈던 나의 서울 한복판. 그마저도 즐기고 싶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20방 넘게 물림…^.^)
이런 단순한 원초적인 감각만으로도 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음에
이런 소박함의 소중함을 아는 내가 좋은 밤이었다. 자연 앞에 속세의 힘듬도 자잘한 고민도 잦아드는 경험을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오감을 다해 나를, 자연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 20대를 보내고 있다.
내가 흘릴 수 많은 땀에 나의 노력과 사랑과 가치들을 담아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