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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kuromi Mar 12. 2023

나는 꿈과 잠시 이별하기로 했다.

빅5병원 신규간호사의 응급사직

"간호는 인간이 삶을 시작한 때로부터 존재해왔고, 전쟁과 같이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더욱 그 가치를 발휘해 왔다. 다시 말해 간호는 말로 설명되기 이전에, 간호학이라는 학문으로 정립되기 이전에, 사회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 시작되고 이루어졌으며, 그렇게 제공된 간호서비스는 환자의 건강과 사회의 유지에 영향을 미쳐왔다."

<메풀 전산초 평전>, 대한민국 간호학의 어머니




간호학 하면 나이팅게일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나에게는 처음으로 간호라는 꿈을 안고 읽었던 메풀 전산초가 떠오른다.

여느 고등학생처럼 대학 입시를 앞두고, 무슨 과에 진학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에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타협하듯 차선의 후보로 간호학을 마주했다. 하지만 간호학을 알면 알수록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와 맞닿아있음을, 현생을 뒷받침하기에도 밝은 전망까지 갖추고 있어 우리의 만남은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간호학과를 진학했을 때 

나는 간호사의 직업이 추구하는 인간적 가치,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일의 특수성과 전문직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인간 사회와 함께했던 간호학의 역사, 그것에서 비롯되는 상징성 마저도 동경했다. 그렇다고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조건, 의료계의 어두운 현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현실을 감수할만큼의 이상이 나에겐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내가 간호사가 되기까지의 긴 시간들보다 간호사가 되고 나서의 기억들이 먼저 떠올랐고, 깊게 들여다보면 내 못난 모습을 낱낱이 마주해야 할까봐 지레 도망쳤다. 내가 겪었던 간호사로서의 시련이 내 인생 전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까봐 그래서 나를,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병원이 내 세상의 전부였을 때는 알지 못했다.

그곳에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나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이곳을 두려워하는 감정만 있었으니까. 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병원에 무슨 기대를 했기에 이토록 실망하고, 나를 미워하며 눈물만 흘렸을까 생각한다.


간호의 인간적 가치 뒤에는 간호사라는 인간의 희생이 있다. 

환자를 위해 간호사는 끼니를 거르고, 화장실을 참으며, 출근 전후 추가근무를 받아들이고 3교대를 하는 것. 화려한 사명 속에서도 간호사는 인간이었다. 이러한 일들의 반복 속에서 간호사는 지친다. 돈도, 명예도 무색해질 만큼. 특수성과 자부심에는 뒤따르는 책임과 완벽함이 있다.


신입간호사는 일을 못한다. 모든 게 처음이니까. 

이 말 한마디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하루하루 예측할 수 없는,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담당간호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그마저도 틀릴까봐 두려워하면서 생명 앞에 나를 내던진다. 이곳에서는 모르는 게 죄다. 쫓기듯이 혼나며 배우고, 울면서 공부한 기억이 아직도 날 힘들게 한다. 배움의 가치는 숭고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완벽히 잃었다.


냉정하게 이 모든 것들은 익히 알려지고, 들려왔던 신규간호사의 앓음이다. 

심지어는 병원 실습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신규간호사로서의 문턱 앞에 있었다. 근데 그 '경험'이라는 게 나라는 인간을 참 되돌아보게 했다. 모든 경험 앞에 우리는 처음이다. 나로 살아온 세월이 한참이어도 이 곳, 이 순간의 나는 처음이었다. 감정이 나를 덮쳤던 순간들이 많았다. 배움이 무서움으로 변했을 때 감당하기 어려웠고, 벅찼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력감이었다. 분노도 우울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감정이었다.


탓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이유도 없이, 그때의 모든 것들이 내가 더는 이 곳에 있지 않아야 할 이유였다. 직업에 굳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인생 절반 이상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인데, 힘듦 속에서도 일말의 긍정, 희망쯤은 있어야 지속가능한 시간들로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그것이 그때 내겐 없었다.


물론 이렇게 퇴사를 했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간호사의 꿈을 펼치기 위해 준비해왔던 시간보다 병원에 있었던 시간이 짧았고, 이렇게 내 모든 꿈과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병원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선명했기에 보건교사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망치듯 임용을 준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조급함이 밀려와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그리고 불현듯 병원에 대한 생각이 스친다. 병원을 잘 다니는 친구들이 문득 부러웠다. 누군가 그랬다. 질투의 감정을 잘 활용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한다.


후회였다.

퇴사의 결정을 후회한다기 보다는 환자를 위하지 못했던, 딱 그 정도의 그릇이었던 나의 마음과 간호사로서 성장하기 위한 부딪힘에 그대로 맞고 쓰러져 나를, 내 꿈을 돌보지 못한 나라는 사람의 최선에 대한 아쉬움. 처음에는 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내가 너무 별로인 사람 같아서.


그래서 병원을 생각하면

떳떳하지 못한 아련함과 동시에 미련 같은 게 있다.

원망스럽고, 화나고, 안타까운 가운데 좋은 추억도 있어서 힘들다.



꿈과의 이별.

병원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내 마음의 진정성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나를 본다. 이제껏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돌보지 못한 내가 있고, 간호사가 있다. 간호사를 꿈꾸던 지난 날에는 병원 간호사를 고집하던 내 마음이 있었고, 현실에 부딪히며 내 직업을 원망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라는 직업의 무게를 알고, 담당간호사로서 일하고 싶은 의지가 다시금 차오른다. 역설적이게도 그렇다. 그 곳에 두고 온 내 과거, 현재, 미래가 나를 붙잡는다.


그렇게 난 두 번째 임상을 꿈꾼다.

하지만 첫 번째 실패를 경험했기에 이 결정에는 치열한 고민과 합리적 의심이 뒤따른다. 내가 두 번째 병원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간호사의 현실을 충분히 겪어냈기에 더 나은 환경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어렵게 다시 꾼 꿈에 기대가 없다는 것도 슬픈 일이니까.


나는 그곳에서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기대한다. 

시련에 좌절했던 나를 너그럽게 안아줄 수 있음과 동시에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담대함도 있었으면 좋겠다.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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