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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Feb 02. 2023

목련여인숙 여주인

가브리엘 포레



여인숙에 날개를 접은 늙은 천사가 귓속말로 전해준 소문. 목련 여인숙 여주인은 첼로를 전공한 음대 출신이라던가.


졸린 눈으로 숙박부를 밀어주는 그녀의 작은방.

카세트테이프 속에서 첼로가 처연하게 울던 어느 날 새벽 나는 물었지.

"누가 작곡한 곡입니까?"

힐끔 쳐다보고는 귀찮은 듯 요구르트와 수건만 내밀었다.

빨랑 니 방이나 찾아 들어가서 볼일 보고 쳐 자빠져 자라고 눈으로 말했다.

"첼로 맞지요. 누가 작곡한 입니까?"

또 한 번 물었다.

"가브리엘 포레 알아요?"

쏘아붙였다. 크레모아 터지듯 신경질 파편이 온몸 구석구석에 박혔다.

네까짓 게  말해주면 알겠냐? 경멸하는 눈치였다.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쪽팔렸다.

가브리엘? 포레? 날개 달린 천사 뭐 그런 건가?

가브리엘 포레가 누군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한 번 더 귀찮게 하면 물어뜯을 것 같아 포기했다.

첼로 얘기할 때 저렇게 핏대 세우는 걸 보면

음대 나온 여자가 맞긴 맞나 보다.


비 내리던 겨울밤 또다시 찾아든 목련 여인숙. 오늘도 그날처럼 첼로의 슬픈 멜로디가 안내실 골방에서 여주인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도 보고 마이마이도 틀어놓고 개성 있지만 혼란스러운 조합이다.

저 여자도 나처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고민에 빠진 것일까.

말없이 밀어준 수건과 요구르트에 첼로의 슬픈 목소리가 딸려 나왔다.

"가브리엘 포레, 꿈을 꾼 후에 맞지요?"

잘난 척을 했다. 나도 클래식은 좀 안다는 듯이.

그날 무시당한 게 열받아서 도서관 백과사전을 샅샅이 찾아봤었다.

"예 맞아요, 205호예요 빨리 올라가세요."

이번엔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정확하진 않았지만 분명 빨간 입술이 복화술로 말을 하고 있었다.

잘못 들었는지 자격지심인지.

'아줌마 뭐 그리 잘난 체할 것 없잖아.'

나도 복화술로 말했다. 


늙은 천사가 또다시 귓속말로 속삭였던 말 목련여인숙 여주인은 검지와 중지 두 개의 손가락 신경을 잃어 첼로의 현을 잡지 못한다던가.

비는 그쳤고, 올 때나 갈 때나 똑같은 첼로곡이 리플레이되고 있었 나는 더 이상

가브리엘 포레를 물어보지 않았다.


목련 여인숙엔 어울리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다.

간판에 온천 표시는 돼있는데 온천은 고사하고

겨울에도 찬물만 나오는 공동 세면장.

후진 여인숙에 첼로 전공한 음대 출신 여주인.

목련꽃은 하나 없고 방마다 검붉은 장미벽지로 도배된 목련 여인숙.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서로의 사연이야

어찌 됐건 오늘 엔, 첼로 전공한 여인숙 주인이나

그림 그리다 문득 서러워 찾아온 새벽손님이나 자존감 바닥을 친 삼류 중에 삼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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