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로선 Mar 16. 2023

주인집 첫째 딸이 별을 죽였다

바퀴벌레 살인자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33art/240


오늘도 일용한 양식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그려준 별을  바퀴벌레도 술자리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이 녀석도 주당이 확실하다. 내가 해치지 않을 것도 아는듯했다.
아니면 나를 우습게 봤던지.
흔들리는 술잔옆에서 떨어진 새우깡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살짝 손가락이라도 가까이 가면 쏜살같이 사라져
숨어버렸다. 그래도 자기 방어는 확실한 녀석이다.

아카시아 피던 새벽에 만나 딱딱한 딱지에 작은 별 하나를 그려 줬었는데 늦가을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바퀴벌레가 명대로 살면 몇 년을 살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보다 먼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총각 있어?"

주인집 아줌마와 주인집 첫째 딸이다.

주인집 아줌마는 뚱뚱해서 옥상의 낡은 철 계단 올라오기 힘들다고 일 년에 한두 번 특별한 일 외에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첫째 딸 손에는 김치부침개 한 접시가 들려있었다.

"아 ㅡ 나도 그림배 우고 싶다. 너무 잘 그린다."

스케치만 해놓은 인물화를 보고 마음에도 없는 싸구려 칭찬 지껄이고 있었다.

주인집 첫째 딸은 아가씨 다섯 명을 두고 티켓 다방을 하는 여자인데 새벽에 술 처먹고 주정하다 나랑 싸운 적도 있는 껄끄러운 사이였다.

부침개를 권하며 주인아줌마가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다음 달부터 방세 오만 원만 올려줘야겠어."

어이가 없었다. 계약기간은 아직 육 개월이나 남았는데. 무식하면 뻔뻔하다고 방세 올려야 할 이유를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조곤조곤 설명을 했다.

나는 무식하긴 했지만 뻔뻔하지는 못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 바퀴벌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가 선물로 준 별을 달고 화실을 느긋하게 기어 다니다가 주인집 딸내미가 내리친 선데이서울 잡지에 맞아 압살 당하고 말았다.

몇억 년의 전통을 가진 명문가의 자손 바퀴벌레를

삼류 다방 마담이 살인을 한 것이다.

"아유 집을 깨끗이 써야 벌레가 없지. 이래서 총각한테 세주면 안 된다니까."

첫째 딸년이 주인 행세를 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맨 처음 이곳 옥상에 왔을 땐 그야말로 쓰레기 하치장 같았다.

친구 두 놈과 함께 이틀을 청소한 끝에 그나마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뭔 개소린지. 청소 인건비를 따진다면 족히 3개월은 월세 안 받아도 손해 볼 건 없을 것이다


잡지를 치우고 자세히 보니 분명 날개에 별이 그려져 있었고 반짝이던 별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담 년의 머리채라도 잡고 싶었지만  

이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갑과 을의 관계였으며 바퀴벌레 한 마리 죽였다고 방방 떠봤자 해는 고사하고 미친놈 취급받을 건 자명한 일이었으니까.

"집 좀 깨끗이 써요."
큰 딸년이 또 한마디 했다. 집주인의 혈족은 모두 집주인으로 대접받길 바라나 보다.

볼일 끝나고 내려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바퀴벌레의 애도 기간 49일이 끝날 때까지 밤마다 촛불을 켜놓고 저년을 저주해야겠다고.

별의 복수로 저 살인자 마담이 티켓다방 운영하면서 나이 어린 아가씨들 피 빨아먹는다고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야겠다. 마담이란 두 음절도 과하다. 사창가 포주라면 딱 맞을까.

바퀴벌레의 사체를 수습해서 해바라기 소피아로렌 발밑에 묻어주었다.

다시는 바퀴벌레에게 별은 주지 않겠다.

별을 지켜주기엔 적들이 도처에 있었고 나는 바퀴벌레를 따라다니며 경호해 줄 빠른 발도 없었으므로 책임 못질 인연이면 처음부터 모른 체 외면해야겠다.

발랄하고 레몬 향기 나던 멕시코 민요 라쿠카라차가 진혼곡이 되고 말았다.


살얼음 투명한 늦가을.

이 세상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죽었다.

바퀴벌레 별도 죽고 해바라기 소피아로렌까지 된서리를 맞고 죽었다

드디어 내 곁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겨울이 문밖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영혼까지 얼어버리는 옥상의 겨울화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묘비명
비록 천박한 여자의 손에 비명횡사했지만 한때는 가난한 인간이 몸서리치며 외로워할 때 별빛으로 반짝였던 곤충 오늘 영면에 들었다.
우리 다시 태어나면 사람도, 곤충도 아닌 길섶의 작은 꽃으로 피어서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 끼손가락 꽃반지로 생이 끝난다 해도 지금보다야 행복할 테니 부디 연이 닿으면 꼭

옆에서 피어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목련 여인숙엔 장미만 피어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