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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Jan 08. 2023

새벽의 방문자

바퀴벌레도 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른다.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 지나가는 바퀴벌레 한 마리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불면의 밤엔 형광등의 미세한 전류 흐르는 소리도 신경질이 난다. 사라락 사라락 분명히 바퀴벌레가 화실을 탐색하는 소리다.

신경 쓰지 말고 양이나 세다 자야겠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바퀴 굴러가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만약에 바퀴벌레가 정력에 좋다고 소문이 난다면

일 년도 안돼 지구상의 바퀴벌레는 씨가 마를 텐데

내가 미친 척 헛소문이라도 내볼까.


불을 켜고 한참을 숨죽이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살찐 바퀴벌레, 장수풍뎅이는 아니더라도 장수하늘소 정도는 돼 보이는 당당한 체구의 바퀴벌레였다. 외로움이 깊어지는 새벽 한 시

이 녀석이라도 방문해 주니 고맙기도 해서 유리컵으로 사로잡았다. 기다랗고 매끄러운 유리컵에서 나오려 발버둥 쳤지만 매번

미끄러지고 있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몇십 번 기어오르기를 시도하다 드디어 끝까지 올라왔다. 성공이다.

손으로 잡고 눈 맞춤을 했다.

수줍었는지 기다란 더듬이를 바삐 움직인다.


겁먹지 마라 꼬마 건물주, 나는 오늘 너마저 사랑하기로 했으니 안심해도 돼.

내가 이리로 이사 오기 전부터 이곳은 너의 영토였겠지만 나도 갈 곳이 마땅찮아 이곳에 정착했으니 염치없지만 나에게 연민이라도 느껴서 동거를 허락해 주길 바란다.


공룡과 같이 살았지만 공룡은 멸종하고 어찌하여 너만 살아남아 푸대접만 받고 있느냐.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에도 대가 끊기지 않은 명문대가의 자손.

오늘은 하찮은 인간이 존경의 마음을 담아 너에게 반짝이는 별 하나를 주겠다.

아크릴물감 흰색으로 등딱지에 아주아주 작은 별 하나를 그려주었다.

비명횡사하지 말고 동료들을 만나 대장이 되어서 나보다 오래 살아라. 부탁을 하고 놓아주었다.

전광석화처럼 정말 빨리 사라졌다. 그것도 날아서.

바퀴벌레도 날 수 있다니 역시 존경할만하다.


발밑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별 하나, 대낮에 유성이 보인다.

며칠 전 선물로 준 별을 달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유유자적 화실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녀석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눈물겹게 반가웠다.

그래 우리 라면이라도 나눠 먹으며 오래오래 뻔뻔하게 살자.


멕시코 민요 라쿠카라차를 크게 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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