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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Feb 09. 2023

주식회...寺


암자에서 스님들만 수행하는 건 아니지

회사 화단의 구절초가 열두 번 피고 지는 동안

나도 도를 닦고 해탈을 해서

신입사원에게 부처님 법문 같은 속 깊은 말 한마디 지껄일 수 있는 짬밥도 되었고 승진 누락에도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수행이란 끝이 없어서

또다시 번민.


기획안은 번번이 묵살되고 아이디어도 고갈됐을 때 구내식당 6천 원짜리 점심 먹고

2천 원 주고산 아메리카노 커피를 들고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갔다.

점심시간 빌딩 옥상엔 직장인들의 정겨운 담배연기가 어깨동무하며 서로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 틈에서 나도 작은 불씨 하나 피워 올렸지.

언제나 바람뿐인 옥상,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봄 냄새가 났다.

아마도 우리 빌딩 13층까지 도달하지 않았을까.

옆에서 전자 담배 피우던 젊은 직원들이 하는 말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야! 그래도 이만한 회사 없어 참아봐, 좋아서 회사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다른 회사도 다 거기서 거기다."

뿌연 한숨을 훅 내뱉는다.

조카뻘 되는 녀석이 벌써 저런 말을, 귀엽기도 하지, 몇 층에서 근무하는지 몰라도

뼈 감자탕에 소주라도 사주고 싶었다.

거기서 거기란 체념의 말이 얼마나 허무하게 들리는지 그대는 알까.

도반들이여! 가슴에 비수를 품고 다니든 사표를 넣고 다니든 오늘 오후라도 편안하기를.

그대들 젊음이 옥상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화석이 되지 않기를.


혹시 나도 후배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그러나 그대들 이것만은 알아주길 바란다.

'착하게 살자'라는 한 말이 나의 화두라는 것을,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내 이기적인 생각.

 혹시 내가 꼴 보기 싫어 심각하게 이직을 생각하는 후배가 있다면 그대는 안심하고 일하라.

그대들 위해서라면 작은 봇짐하나 메고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갈 준비는 돼있으니까.


결핍이 많을수록 상처받기 쉽다.
병아리 솜털 같은 부드러운 지적에도 참매의 날카로운 발톱에 긁힌 것처럼 퇴근 후에도 상처가 쓰린 걸 보면 나는 아직 득도를 하려면 멀었나 보다. 


사회생활.

수행보다는 고행이다.

툴툴거리면서도 퇴사하지 못하고 지금껏 먹이를 받아먹고 있으니 고행에 가깝지 않은가.

고맙기도 하지, 고행하는 데 제일 큰 가르침을 준 스승은 변덕스러운 부장과, 스펙 좋은 사장 조카

그리고...... 성과 없는 야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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