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로선 Feb 21. 2023

엄마의 수다

민수의 여름 방학


민수 아버지가 갱이 무너진 사고로 죽고

방학이 끝날 무렵 민수 엄마는 선탄장에서 일을 했다. 선탄장은 석탄에서 이물질을 선별하는 작업장인데, 이곳은 남편 없는 과부들이 태반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광산에서 남편을 잃은 집들이 밥이라도 먹고살라는 회사의 작은 배려이기도 했다.


엄마는 오늘도 옆집 아줌마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엄마는 사택 헛소문의 진원지였다. 민수 엄마가 선탄장 최반장 도시락을 싸줬다거나, 최반장이 오밤중에 민수네 집에서 나오는 걸 봤다거나, 엄마가 수집한 소문들을  재가공해서 사택 아줌마들에게 친절하게 전달해 주었다. 마치 엄마가 직접 목격이나 한 것처럼 호기심 많은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연탄가스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긴데'라는 전제를 달고......


그날 밤 민수 엄마가 엄마의 머리채를 잡았다. 네년이 봤냐는 것이다. 과부 된 것도 서러운데 남편 없다고 무시하냐며 악을 쓰며  대들었다.

하이에나에게 물린 암사자처럼 엄마를 물고 뜯고 흔들었다.

점방 텔레비전에서 김일 레슬링 볼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싸움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동네 창피하다며 엄마를 끌고 들어와 집안 살림을 다 때려 부쉈다. 엄마는 밖에서도 맞고 집안에서도 맞았다.

방학숙제 올챙이 기르는 서울우유병도 박살이 났고, 식모살이하는 큰누나가 소포로 보내준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가 부엌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위에서 무령폭포에서 잡아온 가제 두 마리도 집게발을 들고 싸우고 있었다.


그날 밤 오줌을 쌌다. 분명히 꿈속에서는 가제 구워 먹느라 피워놓은 모닥불을 끄려고 오줌을 눴는데, 어제 빨아 풀 먹여놓은 옥양목 이불 홑청이 뜨뜻했다. 아침부터 엄마의 호랭이가 물어갈 놈이라는 잔인한 욕을 들었다.


소나기 오는 날 슬레이트 처마 밑에서 쫀득이를 찢어주며 민수가 자랑을 했다. 겨울방학 오기 전에 전학을 간다는 것이다. 이사 가면 텔레비전도 살 거고, 외삼촌이 버스 운전사인데 버스도 맨날 탈 수 있고 기차도 매일 볼 수 있단다.

민수는 항상 부럽다.

 


전학 간 민수 소식


학교 화단의 모든 꽃들이 지고 내가 좋아하는

키 작은 단풍나무도 빨갛게 말라가고 있었다.


구름 없는 빈 하늘엔 이름 모를 새떼들이 높이 날았고, 아침에 세수할 땐 손이 시렸다. 광산의 모든 사택에서 겨울 준비를 했다. 엄마는 김장 걱정을 했고 연탄 광에는 연탄이 가득 줄지어 쌓였다. 소사 아저씨는 싸리나무를 베어서 겨울에 눈 치울 빗자루를 만들거나, 창고에 보관해 둔 톱밥 난로와 연통을 수리하고 있었다. 

고학년들은 제재소에 가서 한 자루씩  톱밥을 담아 톱밥 창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의 수다가 시작됐다. 대꾸도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민수 엄마  바람난 얘기를 했다.

강릉에서 누가 봤는데 민수 엄마는 남편 목숨 값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술집을 차렸으며, 민수는 외삼촌한테 맡기고 둘이서만 도망가서 잘 살고 있단다. 공부 잘하는 민수는 학교도 안 간단다.

민수네 이사 가고 이틀 있다가  선탄장 최반장도 사라졌었다.

여름날 엄마가 소문냈던 민수 엄마와 최반장 얘기도 헛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애가 불쌍하지, 남편 죽은 지 일 년도 안 돼서 남자한테 미쳤다고 엄마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아버지가 혀를 찼다. 아무 말씀 없는 거 보면 사실인가 보다.


그래도 민수가 부럽다. 텔레비전도 보고 기차도 매일 볼 수 있으니.

학교 안 가고 숙제 안 해도 되는 게 제일 부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희. 꼴찌의 짝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