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산속에선 소쩍새가 귀신처럼 울고, 비포장 신작로 길엔 달맞이꽃들 사이로 가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았기에 몇십 년 지난 오늘에서야 낡아빠진 낚싯대를 들고 달빛 가득한 숲길을 걷고 있을까.
언덕을 넘으면 저수지가 있을 거라 예감을 했지만 저수지는 보이지 않았다. 코끼리는 수십 킬로 떨어진 모래 속 물 냄새를 맡고 긴 여정을 떠난다는데, 고작 언덕 너머에 있는 물 비린내도 맡지 못하는 만물의 영장이라니 쪽팔린다.
낚싯대 세대를 폈다.
던져놓은 야광찌가 흔들린다. 내 마음도 흔들린다.
찌 올림으로 봐선 월척이 분명했다.
은빛 비늘의 토종 붕어였으면 좋겠다.
등 뒤 상수리나무의 소쩍새도, 귀뚜라미도 숨을 죽이고 긴장을 한다.
전광석화처럼 챔질을 했다.
......
낚싯줄이 힘없이 끌려온다.
헛챔질에 달그림자만 낚았다.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시공간에서 또다시 미끼를 달았다.
아직도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와 낚시를 자주 갔었다.
조바심에 투정을 부릴 때마다 늙은 조사가 말한다. '마음을 비우면 붕어가 온단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뱃속을 비우라는 뜻인 줄 알았다. 가지고 갔던 옥수수도 먹지 않고 낚시를 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었다.
내 나이 열한 살 때의 기억이다.
그때부터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풀리지 않는 암호문으로 남았다.
시간은 세월로 자라서 이제는 나도 중년이 되었지만 한심하게도 지금까지 월척 붕어를 잡아본 적이 없다. 거만하게 노련한 낚시꾼 흉내는 낼 수 있으나, 한 번도 마음을 비워본 적이 없어서인지 유년의 낚시 실력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질 못한 것이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초릿대 끝도 보이지 않는 물안개 멀리서 가물치 한 마리가 튀어 오르며 이젠 집으로 돌아가라 재촉을 한다. 무더기로 피어있던 달맞이꽃도 태양을 피해 새침하게 꽃잎을 접었다.
낚싯대를 걷는다.
밤새 낚시 어망에 잡아놓았던 욕심과 열등감을 놓아주었다.
노랗게 비웃던 달님은 오래전부터 새벽잠에 빠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