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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바다 Sep 10. 2024

새벽산책

처음 노가다 하는 날에



인력사무실까지 걸어가려면 집에서 5시엔 출발해야 한다.  계란프라이 두 개와 아내가 만들어준 떠먹는 요구르트를 먹는다.

아내가 말한다. "내키지 않으면 가지 마."

나는 말없이 웃어주고는 안전화 끈을 묶었다.

"위험한 일 시키면 바로 와." 걱정하는 아내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상가건물 2층 월셋집, 베란다 작은 창문으로 아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기분은 우울하고 바람은 상쾌했다.

중앙분리대 꽃밭에는 구절초가 피어나고 있었다. 가끔씩 때 이른 코스모스가 삐죽 모가지를 내밀기도 했다.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거친 질감이지만 높은 채도로 그려진 가을 풍경. 제목은 새벽 산책이 좋겠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이 나이, 꼬락서니에도 감성은 살아서 계절을 느끼다니, 모든 것에 둔감해져야 한다. 


3층 건물 인력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금연이라는 빨간 표지판 앞에서 커다란 배낭을 멘 사람들이 가래침을 뱉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배낭에는 필시 작업복과 안전화가 들어있겠지. 입구를 막고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는 옆으로 비켜선다. 유난히

좁고 가파른 계단이다. 다섯 명의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온다. 나도 잠시 비켜서서 그들에게 길을 내준다.


아파트 공사현장에 경력자 두 명과 함께 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해지면 전화해 달라는 아내에게, 잠시 망설이다 그냥 문자를 보냈다.


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플랫폼 바닥에 떨어진 햇빛의 파편들을 늙은 청소부가 줍고 있다.

열차 안에는 간밤에 잠을 설친 졸음들이 실리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투성인 나는, 윤동주를 기억하다 면목없어 눈을 감고 말았다.


 갑자기 별이 된 시인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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