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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Sep 08. 2022

햇빛이 위험한 세상이 온다면

 [책 리뷰] 이순미 작가님의 햇빛 전쟁을 읽고

 "첫 번째 참새가 날아와서 머리 위에 앉았네. 폭신하다 폭신하다 침대 같다 짹짹짹 짹짹"

 어릴 적 즐겨 부르던 참새 동요를 못 들은 지 오래다. 아니 흔하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참새가 사라진 건 아닐까? 어쩌면 꿀벌의 멸종위기, 벌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한여름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삼삼오오 모인 동네 아이들과 쪼그리고 앉아서 돋보기를 통해 종이 위에 모아진 초점이 이내 까맣게 종이를 태우는 신기한 현상은 유년 시절 진기명기 놀이였고,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팔다리의 각질 피부층이 하얗게 일어나 벗겨지도록 놀아도 햇빛은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얀 피부와 예쁜 미소를 가진 사랑스러운 모아의 눈에 악당들이 쏘는 광선처럼 보인 햇빛!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공격하는 '햇빛'은 두려움을 뛰어넘어 공포의 대상이다. 

우리에게도 햇빛이 위험한 세상이 온다면...

 식물학자였던 루아의 엄마는 산으로 들로 식물 채취를 다니다가 풀독에 감염된 것처럼 피부에 난 붉은 반점이 가려워서 병원에 다니다가 어느 날 심한 열이 오르면서 쓰러진 뒤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루아의 동생, 모아의 몸에도 엄마처럼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아빠는 의사도 그만두고 도망치듯 어느 시골로 떠나게 된다.


눈만 뜨면 모든 센서가 작동되는 인공지능 시대에서 편리하고 풍요로운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루아에게 시골 생활은 원시 체험이나 다름없다. 


 한편, 햇빛 단지에 나타나 쓰레기 말고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고 외치고 다닌다는 유령, 만나면 저주에 걸린다는 회색 유령 소문의 할아버지는 흡사 개미박사 최재천 교수님을 떠올리게 한다.

‘햇빛 전쟁’이라는 성난 자연 앞에서도 인간은 햇빛을 이길 수 있다고 돈과 기술을 들먹이며 끝까지 자연을 지배하려고만 하는 인간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이미 예상하고 결국 자연 그대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 기술이요, 친환경 집을 짓는 일이 진정한 첨단 기술임을 햇빛 단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며 개미집을 쉬지 않고 만들어간 회색 유령은 사실 우리나라 최고의 식물학자 할아버지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삶을 통해 '공존과 상생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아려온다.




 심지어 시골학교로 전학 온 루아에게는 '구석기 인간'이라는 별명까지 생긴다. 시골까지 먹거리 배송이 원활하지 못해 부실하게 끼니를 해결했던 터라 오랜만에 보는 고기반찬에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는 루아를 향해 여 보란 듯이 시골 학교 급식의 비주얼은 ‘음식’이 아니라 ‘사료’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금빛 스니커즈. 

그제야 햇빛 단지에 사는 아이들과 금빛 스니커즈의 식판에는 음식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고 루아는 그만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때 

“네가 오늘 만든 쓰레기 양을 생각한다면 미안한 마음이 먼저여야 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민호를 보면서 문득 초등학교 급식 모니터링을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


 급식 모니터링에 참가한 학부모 중에는 타 학교 급식과 비교해가며 유독 우리 아이들 급식 메뉴가 젓가락 갈 데가 없다느니, 메뉴도 메뉴지만 맛이 없어서 아이가 급식을 거의 안 먹고 집에 와서 다시 밥을 달라는 둥 불만 사항을 안고 온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영양사 선생님은 요즈음 가정에서 먹거리가 풍요롭고 일찍이 인스턴트 음식에 아이들 입맛이 길들여지다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대지도 않고 쉽게 버리는 잔반이 많고, 심지어 우리 초등학교에서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지는 양이 시 전체에서 가장 많은 학교 중 하나라고 하셨다. 덧붙여 매월 백만 원가량 지출되는 잔반 처리비용만 반으로 줄일 수 있어도 그 예산을 메뉴 개선하는 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아이들에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더 좋은 급식을 제공할 수 있으니 각 가정에서 되도록 잔반을 남기지 않고 편식을 지양할 수 있도록 교육해주십사 신신당부하셨다.



 

 재난! 위기!

과연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누리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일까?

바다 한가운데 얼음조각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 영상을 보며 국민 모두 강렬한 충격을 받았을 테지만, 여전히 일회용품 줄이기나 플라스틱 용품 줄이기, 잔반 없는 날 등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고 환경을 아끼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없다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햇빛 전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희망’과 같은 구름 나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풀들을 찾기라도 하면 수첩에 모양과 특징을 꼼꼼하게 기록한 엄마의 풀꽃 수첩이 루아의 마음 처방전임과 동시에 대기 정화와 자외선 차단 임무를 맡게 될 T-2050과 같은 기적을 만들어냈듯이.  

   

“넌 도망쳐! 난 이겨 낼 테니까.”     

더 이상 금빛 스니커즈가 아닌 아인이와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옳은 소리를 내며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하는 민호,

그리고 작은 생명들이 할 수 있는 '큰일'을 하고자 애쓰는 루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닮아가야 할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와 모래를 보며 느낀 행복, 내 방 창문을 통해 보았던 하늘과 햇빛이 펼치는 풍경을 보며 행복해하는 우리 아이들이 오늘 이 날을 추억하며 그리워하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달라지는 자연과 환경의 신호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방어벽은 우리가 함께 지켜 낼 수 있을 거예요.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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