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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l 02. 2022

영화 [케빈에 대하여]

원제: We need to talk about Kevin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처럼 한 아이를 키워 낸다는 것은 한 가정의 사적 영역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와 지역사회, 국가가 적절하고 민감하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부제 :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대화할 필요가 있다. 

아니 현대 사회 속 케빈과 같은 아이에 대해 말이 있다고, 우리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토마토의 강렬하고 붉은빛 색채를 통해 이 주장을 하고 싶었던 걸까.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자녀양육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대개 주 양육자인 엄마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고, 주 양육자 스스로도 “내 아이만 아니면 돼!” 또는 “내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기도 벅찬데..”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그런 당신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케빈의 엄마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에바처럼 준비되지 않은 부모들에게 새로운 생명은 오롯이 축복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하루아침에 모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책으로 모성애를 습득할 수도 없기 때문에 때론 버겁기만 하고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충동질하기도 한다. 모든 예비 부모들에게 자녀 출산과 양육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실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안정된 양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꿈 많은 여행가의 삶을 살아왔던 에바 vs 타고난 인지능력과 우수한 지능을 가진 예민한 기질의 케빈


 임신과 출산, 양육 그 어떤 것도 현실적으로 알지 못했고 마음의 준비 또한 안 되어 있었던 엄마 에바에게는, 케빈이 버겁다. 그런 엄마에게 끊임없이 진정한 사랑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케빈이, 케빈의 표현방식이, 에바에겐 괴롭기만 하다.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에게 익숙한 거야.

그런 상황에서 남편의 공감도, 위로도 없고 숱한 고민 끝에 찾아간 전문기관에서조차 어떤 조언이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엄마 에바는 케빈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단 한 장면이었지만, 에바와 케빈이 '갈등'이 아닌 '온정'을 나눈 시간이 있었다. 어릴 적 케빈이 아팠을 때 “아가야”라고 따뜻한 음성으로 쓰다듬어주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케빈을 간호하던 엄마. 그날 밤 에바는 엄마 품에 안겨있는 케빈에게 속삭이듯 다정하게 로빈훗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바와 케빈의 그러한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질적으로 다른, 순종적인 여동생이 태어나게 되고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은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적어도 케빈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케빈은 여동생이 가장 아끼는 기니피그를 죽이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여동생의 한쪽 눈까지 실명하게 만든다. 에바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케빈의 행동에 남편과 갈등을 이어가다가 급기야 이혼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그 광경을 직접 보게 된 케빈의 분노는 절정에 이르는 듯하다.

결국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긴 케빈은 이제 로빈훗이 되어 아빠와 여동생은 물론 불특정 학우들을 향해 그동안 쌓아왔던 분노의 화살을 무자비하게 퍼붓게 된다.


이날 케빈의 반사회적 범죄는 미국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토대로 한 것이며 과연 케빈은 사이코패스인지 소시오패스인지에 대한 논쟁 또는 소시오패스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등의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모성애와 자녀 인성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데 이 영화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반사회적 범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아들 케빈이 구치소에 있는 2년 동안 빈 집에 홀로 남은 엄마 에바 또한 거센 질타와 손가락질을 온몸으로 함께 견디는 중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비난과 모멸감을 주는 시선, 갑자기 나타난 범죄 피해자 가족들의 폭력, 밤새 집 앞에 울타리와 벽, 차량에 써놓은 주홍글씨 살인마, 에바는 끊임없이 가해지는 폭력과 차갑고 따가운 시선들을 삼키듯 묵묵히 견딘다.

그리고 생각한다.
케빈과의 지난 시간들을 하나씩 더듬어가며...
곧 열여덟 살이 되는 케빈이 성인 구치소로 가기 전날 밤 에바는 빈 집에서 혼자 숨죽여 울고 있다.
케빈의 옷을 정성스럽게 다림질하고 침구를 정리한 뒤 파란색으로 페인트칠한 케빈의 방에서 나오는 동안 이런 가사의 노래가 흐른다.


어느 날 고아원 앞을 천천히 지나다
잠시 멈춰 서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봤어
홀로 서 있는 소년에게 왜 혼자 있냐고 물었지
그러자 몸을 돌려 먼눈으로 나를 보더니 울기 시작했어
로빈후드! 전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은 아이예요.
야생에 핀 꽃 같은 신세죠.
엄마의 입맞춤도 아빠의 미소도 없었어요.
날 원하는 이 아무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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