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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Nov 30. 2023

구슬픈 죽음의 꽃, 대나무꽃

단기 4536(2023)년 5월 4일(음력 3월 15일) 어천절(御天節)을 맞아 국조 단군 어천대제(御天大祭)가 청주 강내면 은적산 단군성전에서 열렸다. 어천대제 봉행이 끝난 후 홍살문 옆 항아리와 외삼문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침 한복에 흰 수염을 기르신 어르신(홍익제 옆 가옥에 사시는 분으로 추정된다.)이 외삼문을 내려오며 홍살문 뒤 대나무 숲에 60년 만에 대나무꽃이 피었다며 알려주셨다.


고개를 뒤로 돌려 홍살문을 바라봤다. 어르신 말씀을 들은 후 다시 보니 5월이면 초록색이 짙어야 할 대나무 숲이 누렇다. 홍살문으로 발걸음을 돌려 대나무 숲 가까이 갔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분포된 대나무 종은 5속 18종으로, 그 면적이 약 2만 2,000㏊에 달한다. 대나무는 ‘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나무가 아니라 다년생 풀이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죽지 않고 매년 꽃을 피우지만,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볏과의 풀이기 때문에 다른 풀들처럼 씨앗을 맺고 나면 죽는다. 대나무의 머나먼 조상은 벼와 같이 한해살이 식물이었지만,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수십 년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대나무꽃이 개화하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나무꽃은 60~120년에 한 번 꽃이 핀다고 한다. 꽃이 매년 피지 않는 이유는 씨앗이 아닌 땅속에서 자라는 줄기로 번식이 쉽게 이루어져 개화생리에 관여하는 기관이 자연스럽게 퇴화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나무는 꽃이 핀 다음 열매가 열리고, 다음 해에는 고사(枯死)한다. 대나무꽃은 그 특성과 발생이 매우 신비롭고 희귀하기 때문에 예부터 국가에 좋은 일이 발생할 징조라고 하여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비의 꽃’, '행운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태어나서  번도  보고 죽을  있는 60 만에 피었다는 대나무꽃을 보았는데 환희와 감탄은 생기지 않았다. 보리 이삭을 닮은 대나무꽃은 푸름을 잃고 갈색 피를 토하며 누렇게 죽어 가고 있었다. 벼꽃의 하얀 수술을 닮은 대나무 수술  개만이 볏과 풀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구슬픈 죽음에 생명의 신비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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