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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Sep 22. 2024

이모님의 발개진 손을 떠올리며!

전주 운암콩나물국밥

전주 콩나물국밥은 영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숙취에 좋은 전세계 9가지 음식’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음식평론가 로런 쇼키는 이 사이트에서 “한국의 음주 문화는 해장국이라고 불리는 음식의 장르를 만들어 냈고, 특별한 영양적 가치가 있는 특화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만들어냈다. 특히 콩나물국밥이 대표적이다. 전주시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에 멸치로 우려낸 국물에 콩나물, 파, 썰어 놓은 고추 등을 올려서 요리한 콩나물국밥을 주문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침 6시 숙소에서 나와 숙취 해소를 하기 위해 남부시장으로 향한다. 전동성당 앞 횡단보도를 건넌다. 평화의 소녀상과 보물 풍남문이 보인다. 풍남문 뒤로 남부시장이 위치한다.


2024년 8월 말 아침 6시를 조금 지난 남부시장은 어둑하고 인적은 드물다. 하루 식당 장사 준비를 하는 상인들 몇몇이 바쁘게 식재료를 다듬고 있다.


남부시장 안에는 5~6곳의 콩나물국밥집이 자리 잡고 있다. 콩나물국밥집마다 비슷한 듯 다른 레시피로 손님들을 끌고 있다. 터줏대감 격인 현대옥 남부시장점에서 늘 아침을 먹다가 처음으로 운암콩나물국밥을 찾는다. 지도 앱을 보며 간다. 좁은 골목길에서 잠시 헤매다 식당 앞에 이른다.


운암콩나물국밥은 1988년 개업한 전주 남부시장 콩나물국밥 노포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5시 30분에 열어 오후 6시에 마친다. 연중무휴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뜨거운 육수에 밥과 콩나물을 토렴한 콩나물국밥(8,000원)이 대표 음식이다. 밥을 따로 내주는 따로국밥(8,000원)과 데친 오징어(2,000원), 모주도 판매한다.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쓴 ‘전주맛집’과 검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운암콩나물국밥’ 쓴 상호가 눈에 쏙 들어온다. 상호 밑으로 ‘Since 1988’ 쓰여 있어 40여 년 식당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노란 종이에 허영만 화백의 글과 사인도 눈에 띈다.


식당 안은 불이 켜져 있고 유리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오전 6시 10분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좌식 자리에 앉아 있던 여사장님이 “혼자 셔? 편한 데 앉으셔.” 말을 건넨다. 열린 주방이 보이는 입식 자리에 앉는다. 식당 안에는 손님 두 명이 식사하고 있다. 열린 주방에는 여사장님이 언니라 부르는 이모분이 식재료를 다듬고 있다.


콩나물국밥을 주문하고 주위를 살펴본다. 여사장님이 앉은 좌식 자리 위로 원산지 표시판, 콩나물의 효능, 메뉴판 등이 눈에 들어온다. 유명인들의 사인과 글도 보인다. 잠시 보고 눈은 열린 주방으로 향한다.


열린 주방에선 연세 들어 보이는 이모님이 콩나물국밥을 만들기 시작한다. 얼른 일어서서 걸어간다. 채 세 걸음도 걷지 않는다. 색바래고 구겨진 은빛 양은솥에선 진갈색 육수가 설설 끓고 있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김은 구수한 감칠맛으로 코를 놀린다.


이모님은 뚝배기에 식혀 두었던 밥과 삶은 콩나물을 담는다. 가느다란 왼손으로 뚝배기 모퉁이를 잡고 기울인 후 국자로 국물을 퍼붓고 눌러 가며 덜어낸다. 국물은 밥과 콩나물을 데우고 솥으로 돌아간다. 한 그릇에 대여섯 번 이상 거듭한다. 국물 온도를 대체로 70~80도에 맞춰지게 하는 토렴질이다. 콩나물처럼 가느다랗고 하얀 이모님 손이 발개졌다. 배려의 손길에는 꼿꼿한 연륜이 느껴진다.


토렴을 끝내고 국물을 뚝배기가 찰랑거리게 붓는다. 다진 마늘, 청양고추, 대파와 잘게 썬 묵은지 한술을 국물 위에 도로록하게 올려준다. 내가 먹을 콩나물국밥이 완성된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만드는 과정을 본 콩나물국밥에 달걀 2개를 넣은 수란, 즉석구이 김 한 봉지와 오징어젓갈, 양념 새우젓, 김치, 무장아찌, 갈치속젓 등 밑반찬이 식탁에 차려진다.


밥공기에 담긴 달걀노른자가 뚜렷한 수란을 먼저 맛본다. 콩나물국밥 국물 세 숟갈을 붓는다. 김은 넣지 않고 숟가락으로 고루 섞어서 들이켠다. 후루룩 딸려 온 흰자와 노른자는 보드랍게 입술을 스치고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입속은 짧지만 고소함과 시원한 감칠맛의 여운을 즐긴다. 어금니가 끼어들 틈은 없다.


수란은 따뜻하고 얼근한 콩나물국밥을 먹기 전 속을 보호해 주는 해장의 준비 과정이자 일차 해장이다.


수란을 먹은 후 숟가락은 저절로 콩나물국밥이 담긴 뚝배기로 향한다.


건더기들을 밀치고 국물만 크게 한술 뜬다. 콩나물 삶은 물에 멸치와 건어물 등을 넣고 푹 우려낸 육수는 개운한 감칠맛으로  입과 목구멍, 내장을 거치며 속을 아늑하게 다독인다.


국물만 몇 차례 더 떠먹는다. 속이 환해지며 땀이 흐른다. 술꾼들이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먹게 할 이유를 만드는 해장국이다.


숟가락으로 건더기들을 휘저어 국물과 섞는다. 크게 한술 떠먹는다. 구수하고 산뜻한 감칠맛 국물 사이로 알맞은 온도와 찰기를 얻은 낱개 밥알들은 보드랍고, 길고 가느다란 콩나물은 아싹하게 씹히며 고소함을 어금니에 쟁여둔다.


즉석 다짐한 대파와 마늘의 알싸한 맛, 청양고추의 매운맛, 김치의 신맛 등은 본연의 맛은 덜해졌지만 생것의 즙은 포근한 국물에 녹아들며 풍미를 돋워준다.


밑반찬도 곁들여 먹는다. 김과 새우젓은 국밥에 풀지 않는다. 숟가락에 밥과 건더기를 푹 떠 새우젓, 갈치속젓, 무장아찌, 즉석구이 김 등을 살포시 얹어 먹는다. 각각의 밑반찬이 지닌 맛과 식감이 쌓이며 입안은 다양한 맛과 풍미로 풍성해진다.


수저질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사이 여사장님과 이모분은 잠시 커피타임을 갖고 열린주방으로 여사장님이 들어간다. 여사장님은 중식도로 고추, 마늘, 파를 다진다. 서로 다른 향과 소리들이 코, 눈, 귀를 자극한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이 비어진다. 멸치와 건어물로 우려낸 육수, 토렴한 다스한 밥과 알맞게 삶아진 콩나물, 즉석에서 다진 푸성귀의 향과 맛이 한데 어우러진다. 콩나물국밥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뜨거운 육수에 토렴하는 이모님의 발개진 손을 떠올린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 담긴 변함없는 배려의 마음은 뜨내기손님 가슴을 따사롭게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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