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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Oct 20. 2024

퍼먹어도 마음을 데이지 않는다?

논산 화지해장국

2024년 10월 8일 강경미내다리를 답사했다. 강경미내다리는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다리’라고 부른다.


강경미내다리는 논산 3대 명물이다. 논산 사람들이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논산의 세 명물을 보고 왔느냐고 묻는데 개태사의 가마솥, 은진의 미륵과 강경의 미내다리를 일겉는다.

논산 3대 명물 강경미내다리

답사 후 10시 4분 삼거4리 버스 정류장에서 논산행 101번 버스를 타고 제일감리교회 정류장에 내린다. 식사하기 위해 530여m 걸어 ‘화지해장국’으로 향한다.


화지해장국은 논산 화지중앙시장 건너편 한의원 골목에서 70여 년 가까이 운영 중인 소머리국밥집이다. 토렴한 소머리국밥과 수육만 판매한다.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첫째, 셋째 주 수요일은 쉬는 날이다.


근처 식탁 5개 남짓 작은 식당에서 영업하시다 2022년 현자리로 이전하였다. 식당 앞 공터에 주차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공사 중이다.


10시 27분 2층 빨간 벽돌 건물 앞에 다다른다. 도드라진 노란 간판에 ‘화지해장국’ ‘화지소머리국밥’ ‘해장국’ ‘소머리국밥’ ‘소머리수육’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남 사장님이 손님을 맞는다. 주방이 보이는 빈자리에 앉는다. 배식구 위로 메뉴판과 원산지 표시판이 보인다. 메뉴는 소머리국밥과 수육만 판매한다. 모든 식재료를 국내산만 사용한다.


식당 내부를 살펴본다. 환하고 깨끗하다. 4인석 입식 식탁이 9개 놓여 있다. 먼저 온 옆자리 남자 손님 2명이 소머리국밥을 주문한다. 나도 단일메뉴인 소머리국밥을 주문한다.


남 사장님이 배식구 좌측 열린 주방으로 들어가며 여사장님께 “국밥 3개요” 하며 주문 내용을 전달한다. 남 사장님은 자연스럽게 밥통에서 식은 밥을 퍼 뚝배기에 담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주방 입구로 걸어간다. 여사장님께 허락을 맡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토렴하는 모습을 찍어도 될지 여쭤본다. 여사장님이 흐뭇이 허락해 주신다.


밥이 담긴 뚝배기는 육수가 끓고 있는 솥 앞에 놓인다. 양은솥 안에서는 황토 빚 국물이 뭉근히 끓고 있다.


여사장님은 밥이 담긴 뚝배기에 썰어 둔 소머리를 얹고 위생 장갑을 낀 왼손으로 뚝배기를 잡는다. 오른손에 잡은 국자로 국물을 퍼 뚝배기에 붓는다. 뚝배기를 솥 가장자리에 대고 비스듬히 기울인다. 국자로 건더기를 막으며 국물만 솥에 따른다. 네다섯 번 반복한다. 토렴질이다.


마지막으로 뚝배기에 국물을 그렁그렁하게 담고 썬 파를 뿌린다. 소머리국밥 한그릇이 말아진다.


토렴 과정을 보고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잠시 후 남 사장님이 소머리국밥과 깍두기, 묵은김치, 청양고추, 다진양념 등 밑반찬을 작은 쟁반에 담아 내준다. 식탁에는 고춧가루, 소금, 후추가 놓여 있어 기호에 맞게 추가할 수 있다.


검은 뚝배기를 두 손으로 감싼다. 데일 정도까진 아니지만 설설 끓던 국물로 토렴하며 뚝배기를 데운 뜨거움이 손으로 전해진다.


뚝배기에서 손을 떼고 숟가락을 집는다. 건더기들을 살그머니 밀치고 국물만 담아 맛본다. 싱겁게 먹는 사람에겐 조금  수도 있을 만큼 간간하다. 양념을 더하지 않고    국물만 떠먹는다. 뚝배기보다 낮은 온도의 국물이 따스하고 알맞다. 특유의 소고기 내음에 군더더기 없는 구수함과 은은한 감칠맛이 입안을 잔잔하게 감돈다.


다른 양념은 넣지 않고 숟가락으로 밥과 건더기를 고루 섞는다. 한술 크게 떠먹는다. 밥알 알알이 알맞은 온도와 풍미가 그윽하다. 배려가 담긴 토렴이 빚어낸 구수함으로 입안이 흐뭇하다.


보드라운 밥알 사이로 얇게 저민 소머리 고기가 어금니를 놀린다. 소 한 마리당 100g 정도밖에 안 나오는 볼때기 가운데 꽃살이라고 한다. 소머리 양턱 부분으로 ‘관자놀이 살’이라고도 부르는 부위다. 하물하물하지 않고 존득존득, 고들고들하게 씹힌다. 살강살강 썬 대파도 씹는 맛을 더한다. 몇 술 더 떠먹는다. 밥과 건더기를 흐너뜨려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머리 국밥에 밑반찬으로 내준 깍두기와 묵은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단맛 적은 깍두기는 어금니에 사각사각 씹히며 새곰함을 뿜어낸다.


젓국, 젓갈 대신 붕어 육수와 소금만 넣었다는 배추김치는 3년 된 묵은지다. 국밥 한술 크게 퍼 묵은김치를 얹어 먹는다. 본연의 물성을 잃지 않고 아삭하게 씹히며 어금니를 부르르 떨게 한다. 발효의 시간을 거치며 정점을 찍은 신맛과 짠맛에 쿰쿰함이 여리게 스친다.


다진 양념과 청양고추, 밑반찬으로 내준 깍두기 국물도 넣어 섞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이지만 예정된 길이기도 하다. 다양한 맛을 즐기기 위해선….


칼칼함과 날카롭지 않은 수더분한 신맛이 구수함과 감칠맛 틈으로 공교하게 어우러진다. 착착 감기는 맛과 식감으로 수저질이 바빠진다. 퍼먹어도 마음을 데이지 않을 온도와 맛이다. 시나브로 한 그릇 뚝딱이다.


소머리국밥 한 그릇이 담긴 뚝배기가 덩그러니 바닥을 보인다. 비움은 맛깔남의 물증이다. 토렴의 과정과 국밥에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 과정을 그려본다. 가슴이 뻐근하고 침이 돈다. 두꺼운 뚝배기처럼 몸과 마음이 묵직하게 행복으로 채워진다.


두 손으로 뚝배기 옆을 감싼다. 처음보단 덜하지만, 여전히 뜨끈하다. 먹는 내내 밥과 국물을 더 먹으라는 여사장님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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