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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Oct 27. 2024

그레이스국밥은 토렴을 하지 않는다?

그레이스국밥은 서울서부지방법원 부근 공덕소공원 옆 골목에 있는 돼지국밥 전문점이다. 2020년 3월쯤 그레이스국밥 사장님 부부분과 익산, 군산 여행길을 같이 한 적이 있어 서로 얼굴을 알아보는 사이가 되었다.

골목 끝자락 삼각형 형태의 외관엔 돼지국밥, 그레이스 국밥, 그레이스 돼지국밥이란 글씨가 쓰인 간판이 달려 있다. 식당 내부는 넓지 않지만 주방, 입식 좌석, 화장실까지 갖췄다. 깔끔하고 세련됐다.

돼지국밥, 돼지곰탕 등 여러 수식어들이 붙지만 사장님 부부분의 노력과 정성으로 만든 “그레이스 국밥” 이란 명명이 제일 잘 어울린다. 대표 음식이다. 국밥, 수육, 육전, 나물을 함께 내주는 국밥 정식과 술국, 수육, 육전, 해물 부추전 등 단품 메뉴도 맛볼 수 있다.


토렴을 하지 않는다?

남 사장님과 토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토렴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하고 계셨다.


그레이스국밥은 토렴하지 않는다. 국밥에 밥을 따로 내준다. 주방 입구에 삼광 쌀이 보인다. 쌀 포장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단일품종으로 도정한 쌀이 밥맛이 좋다.


그레이스국밥은 두 번 밥을 짓는다. 11시 영업 시작에 맞춰 단일 품종 쌀을 씻어 압력솥에 밥을 지어 온장고에 저장한다. 15시~17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다. 저녁 장사 시간에 맞춰 압력밥솥에 한 번 더 밥을 짓는다.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단단해지는 노화 과정을 최소화해 먹기 좋은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한다. 주위에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 밥 회전이 빠른 거도 한몫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밥을 담을 때의 정성이다. 6년 동안 수십만 번 이상 공기에 밥을 담았다. 몸에 밴 습관을 종업원분들에게 알려준다.


밥풀 때 밥알이 눌어붙지 않는 재질의 외국산 주걱을 사용한다. 공기에 담을 때도 시간이 더 걸리지만 눌리지 않게 고루 잘 섞어가며 정성들여 밥을 담는다.


국물의 온도 변화도 이유일듯하다. 뚝배기에 펄펄 끓여 내던 국물을 티타늄 도금 그릇으로 바꾸며 따스함이 전해질 정도의 국물로 바뀌었다.


그레이스국밥에 어우러질 수 있는 조리방법, 식재료, 그릇, 밥, 밑반찬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변화, 발전, 진화 중이다.


그레이스국밥 사장님 부부분은 1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2021년 6월 처음으로 찾게 되었다. 첫날은 혼자 국밥 정식을 먹고 다음 날은 대학 동창들과 수육을 곁들여 막걸리를 마셨다.


혼자 찾아 국밥 정식을 주문한다. 복(福)자가 쓰인 밥공기 안에 삼광 쌀로 지은 쌀밥이 담겨 있다. 저녁 시간대임에도 밥이 찐득되지 않고 적당히 찰기도 있고 담백하고 부드럽다.


식탁 밑 수저통엔 위생 종이봉투에 담긴 티타늄 도금이 된 수저가 들어 있다. 귀찮고 한 번 더 손이 가는 일이다. 음식을 먹는 도구의 청결함을 유지하려는 사장님 부부의 마음이 담겼다. 음식을 먹기 전임에도 밥과 수저에서 음식을 대하는 마음씨를 보았다. 음식 맛이 더 궁금해지게 만든다.


국밥 정식은 티타늄 도금의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적당한 온도의 그레이스 국밥과 둥그런 그릇에 돼지고기 육전, 수육, 나물 세 가지를 담고 김치, 깍두기, 국밥에 넣어 먹는 국수 타래, 수육과 육전을 찍어 먹는 양념간장, 청양고추를 곁들인 자하젓 등 밑반찬을 함께 내준다. 음식 맵시도 좋다.


통후추 그라인더, 새우젓, 들깻가루, 다진양념 등도 식탁 옆에 놓여 있어 기호에 맞게 추가하면 된다. 통후추 그라인더가 눈에 띈다.

  


국밥을 담기 전 티타늄 도금이 된 그릇을 따뜻한 물에 담갔다 빼는 남사장님의 모습을 본다. 이유는 여쭤보지 않아 정확하지 않지만, 그릇에 따뜻함을 더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국밥을 담은 용기가 뚝배기에서 티타늄 도금이 된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변경됐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끈한 국물은 뚝배기가 어울리고 적당한 온도의 깔끔한 국물을 담기엔 바뀐 그릇이 어울려 보인다. 돼지국밥은 뚝배기와 어울리고 그레이스 국밥은 정갈한 그릇이 제격으로 보인다.​


금색 그릇에 맑은 기름이 도는 옅은 갈색의 국물과 진한 갈색의 돼지고기, 짙은 푸른색의 부추가 눈맛을 먼저 자극한다. 국물을 한술 뜬다. 기름짐 없이 정갈하고 구수하다. 잡내는 잡고 육향은 은은하게 남겼다. 질리지 않고 숟가락이 자꾸 간다.​


돼지머리 고기 건더기도 넉넉하게 담겨 있다. 고소한 비계가 적당히 붙은 부드러운 부위도 있고 쫀쫀한 볼살 부위도 있다.


양념하지 않은 푸른빛 부추가 고명으로 올려졌다. 깔끔한 국물 맛을 유지하기 위함인 듯 하다. 아삭한 식감과 은은한 매운맛이 돼지고기와 잘 어우러진다.


맛, 마음씨, 맵시가 담긴 그레이스 국밥 한 그릇이다.


국밥 정식에 나온 수육, 육전, 나물이다. 살코기에 비계 부위가 적당히 붙은 수육은 살강살강 부드럽게 씹힌다. 고소하다. 짭짤한 자하젓을 올려 맛본다. 고소한 맛에 깔끔하고 깊은 감칠맛이 더해진다. 군더더기 없는 맛이다.


육전은 돼지 볼살에 달걀옷을 입혀 부쳤다. 쫀쫀하고 탄력 있는 식감이 좋다. 오돌오돌 씹히는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의 세발나물 무침을 곁들이면 기름짐도 잡아주고 풍미도 올려준다.


데친 봄동 무침과 부지깽이나물 무침도 삼삼하게 무쳐 내온다. 국밥의 밑반찬으로 좋고 수육, 육전과 곁들여도 좋다.


홀로 국밥정식을 먹은 다음날 모처럼 대학 동창 두 명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한 친구는 년에 한 번 이상은 보는 친구고 한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처음이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안주에 좋은 술자리를 가졌다.


수육과 송명섭 막걸리를 주문한다. 둥그런 접시에 돼지머리 고기 다양한 부위를 담고 무말랭이무침을 곁들여 내준다. 직접 담근 배추김치, 깍두기와 쌈장, 썬 고추, 마늘, 자하젓 등 기본찬도 함께 나온다.


송명섭막걸리 한잔 걸친다. 밀 누룩과 직접 재배한 쌀로 빚은 무감미료 수제 막걸리다. 맛은 어린 시절 주전자에 막걸리 심부름 갔다 오며 먹던 맛이라고 한 친구가 말한다. 막걸리 심부름을 해보지 않아 그 맛을 알 수 없다. 아마도 첨가제 넣지 않은 순수한 맛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첨가제 섞인 기성품 막걸리에 길들여 지다 보면 밍밍한 맹탕의 맛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듯하다.


돼지머리 고기를 삶아 식힌 수육이다. 부위는 다르지만, 대구 염매시장 안에서 맛본 어슷어슷하게 썬 식힌 수육의 맛이 오버랩된다. 질 좋은 고기는 식어도 맛나다는 여사장님의 말과 함께…


수육은 돼지머리에서 나오는 다양한 육질과 식감을 맛볼 수 있도록 부위별로 한 접시에 가지런하게 담았다. 볼살 부분은 쫀쫀하고 탄력적이다. 비계와 살코기가 섞인 부분은 부드러우면서 고소하다. 귓살은 오돌오돌 씹힌다. 수육 한 점에 다양한 식감과 다른 풍미를 맛본다.


꼬독꼬독 씹히는 매콤한 양념의 무말랭이무침과 짭짤하고 깔끔한 감칠맛의 자하젓을 곁들여 풍미를 더한다.


남사장님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주셨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씀에 공감한다. 노력하시는 만큼 뜻하시는 일들이 이뤄질거로 믿는다.


국밥에 사용하는 돼지고기를 남원 버크셔K로 바꾸셨다는 얘기를 접하고 2024년 9월 6일 2시 30분쯤 방문했다. 1층에서 여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남 사장님이 작업 중인 2층으로 올라갔다.

부분육이 아닌 버크셔K 한 마리를 통째로 납품받아 국밥과 수육에 사용한다. 돼지고기를 보여 주셨다. 고기에 푸른 잎이 보였다. 방아잎이었다. 2층 화단을 보니 방아가 꽃을 피웠다.

방아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꿀풀과 배초향 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영어 명은 'Korean Mint'다. 다른 풀의 향기를 밀쳐낼 만큼 매우 강한 향을 가졌다는 뜻에서 배초향(排草香)으로 불린다.

방아의 꽃말은 ‘향수’, ‘정화’ ‘마지막 구원’ 이다. 고기가 신선하고 품질도 좋으니, 잡내를 잡기보단 향을 덧입히는 거로 보였다. 적절히 사용하면 꽃말처럼 돼지고기와 잘 어우러질 듯하다.


 서울 몇 곳의 식당에서 버크셔K와 난축맛돈을 사용하는 돼지곰탕을 맛본 적이 있다. 돼지고기 다리를 사용하여 얇게 저며 나왔다. 육수에 맛을 내준 고기는 풍미가 약했다. 다른 양념을 더 해 먹어야 했다.

지방 여러 식당에서 돼지고기 다양한 부위를 사용한 돼지국밥의 맛도 경험했다.

1층으로 내려와 국밥, 전, 수육이 함께 나오는 그레이스 정식을 주문해 맛을 봤다. 버크셔K 특유의 진한 풍미와 쫀득한 식감이 어금니를 놀렸다. 자하젓과의 궁합도 좋았다.

돼지 곰탕도 돼지국밥도 아니다. 맛, 마음씨, 맵시가 담긴 '그레이스국밥'이다. 변화, 발전, 진화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음식을 만든다."라고 믿는다. 자주 뵙지 않았지만, 사장님 내외분과 대화를 하며 음식과 식재료에 쏟는 정성과 철학,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 등이 느껴졌다.

음식 솜씨와 사장님 부부의 마음씨, 음식 맵시를 갖춘 식당이다. 서울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지치지 마시고 지금처럼 소신껏 일방통행 하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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