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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Sep 29. 2024

낙원(樂園)의 국밥은 투박하고 묵직하다

서울 낙원동 강원도집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7번 승강장에서 150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3가·탑골공원에 내린다.


횡단보도를 건너 탑골공원 삼일문 좌측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어르신들이 돌담 옆에 앉아 서로 얘기를 나눈다.  장기와 바둑을 두는 모습도 보인다.


10시 42분 '허리우드클래식'과 실버영화관 포스터, '낙원동악기상가 지하시장' 간판이 붙은 빛바랜 건물이 보인다. 건물 우측 낙원동 돼지국밥 골목으로 향한다.


노릿한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좁다란 골목으로 국밥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지역 이름을 상호로 쓴 곳이 많다. 미리 봐둔 강원도집을 찾는다.


강원도집은 서울 탑골공원 뒤 낙원 악기 상가 지하 시장 우측 옆 골목에 있다. 창업주 할머님이 1979년 개업한 낙원동 돼지국밥 골목의 산증인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밥 광고를 찍었던 곳으로 ‘이명박 국밥집’으로 알려진 식당이기도 하다.


10시 48분 강원도집 앞에 다다른다. 식당 밖 골목에서 이모분은 대파를 손질하고 남 사장님은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열려 있는 출입문을 지나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식당 내부에는 4인석 입식 10여 개가 보인다. 빈자리에 앉는다. 어정쩡한 시간인지 손님은 나 혼자다.


여사장님이 밑반찬을 담으며 주문을 받는다. 메뉴판을 본다. 순댓국, 돼지국밥이 7.000원이고 돼지 따로국밥은 8,000원이다. 살코기 국밥과 돼지국밥 특은 9,000원이다. 소주와 맥주는 4,000원, 막걸리는 3,000원이다. 음식값과 술값이 탑골공원 건너편보다 싸다. 돼지국밥을 주문한다.


주문은 식당 밖으로 전달된다. 돼지고기 손질하던 남 사장님이 출입문 우측 밥솥에서 찬밥을 퍼 뚝배기에 담는다. 뚝배기를 들고 출입문 좌측 양은솥으로 자리를 옮긴다. 양은솥에는 진갈색 육수가 뭉근하게 끓고 있다.


왼손으로 잡은 체망에 뚝배기  찬밥을 쏟는다. 체망을 육수에 담그며 오른손에 잡은 국자를 세워 밥알을 알알이 풀어낸다.  차례 반복  밥만 다시 뚝배기에 담는다. 미리 삶아둔 돼지고기를 망에 넣어 육수에 여러 차례 넣었다 뺐다 한다. 토렴질이다. 일반적으로  토렴과는 다르지만, 찬밥과 건더기에 국물 맛이 배어나고 손님이 뜨거운 국물에 데지 않고 먹게 하는 배려의 행동이다.


국자로 건진 돼지고기를 뚝배기 속 밥 위에 얹어 이모님께 준다. 이모님은 썬 대파, 들깻가루, 다진 양념을 올려 남 사장님에게 다시 건넨다.


남 사장님은 이모님이 건네준 뚝배기에 육수를 자작하게 붓는다. 돼지국밥이 완성된다.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식탁에는 배추김치, 양파, 마늘, 청양고추, 돼지머리 고기 편육, 새우젓, 된장 등 돼지국밥에 곁들일 밑반찬이 차려져 있다.


돼지머리 고기 편육에 새우젓을 올려 씹을 때 남 사장님이 돼지국밥을 식탁에 놓는다. 수수한 돼지국밥 한 상 차림이다.


상차림을 바라보며 편육을 좀 더 씹는다. 간간하다. 꼬들꼬들한 연골이 어금니에 씹히고 나머지 살들은 흐물흐물하다. 새우젓은 감칠맛을 보탠다.


양파 하나를 된장에 찍어 먹은 후 돼지국밥으로 눈을 돌린다. 검은 뚝배기에 흐릿한 갈색 육수가 흐르고 하얀 밥, 육수보다 짙은 갈색의 돼지머리 고기와 들깻가루, 파란 썬 대파, 빨간 다진양념이 얹어져 있다.


하얀 밥을 살짝 밀어내며 국물만 한술 떠먹는다. 밋밋하다. 두 번 더 맛을 본다. 특별한 기교 없이 우려낸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맛이다. 소금 조금과 새우젓만 2마리를 밥 언저리 국물에 넣고 휘젓는다. 소금은 지복점(욕망이 충족된 상태를 나타낸다.)을 끌어내고 새우젓은 감칠맛을 더한다. 국물이 조화를 이루며 맛이 깊어진다.


다진 양념과 들깻가루를 국물에 풀어 고루 섞는다. 붉은 다진 양념이 풀어지며 국물이 발갛게 변한다. 밥과 건더기의 양이 푸짐하다.


크게 한술 떠먹는다. 다진 양념이 섞인 국물은 짜지 않고 매운맛은 덜하다. 다사롭게 토렴한 밥알은 스르르 넘어가고 숭덩숭덩 썰어낸 머리 고기는 얼맞게 씹힌다. 돼지 혀는 군 냄새 없이 담박하다. 사이사이 꺼끌꺼끌한 들깻가루가 고소함을 더한다.


숟가락질은 반복된다. 배추김치에 편육을 싸 얹어 먹기도 하고 알싸한 마늘, 시원하고 옅은 단맛의 양파, 입이 얼얼한 청양고추도 곁들인다.


국밥을 먹는 동안 혼자 온 어르신은 돼지국밥과 소주 한 병을 시켜 물컵에 따라 드신다. 11,000원이다. 뒤 이어 온 어르신 두 분도 돼지국밥 2그릇에 막걸리를 주문한다. 17,000원이다. 비싼 서울 물가를 생각하면 착한 가격이다.


서울 한복판 '어르신들의 파라다이스 낙원동(樂園洞)’에서 털털하고 묵직한 국밥 한 그릇을 비운다. 꾸밈없는 맛에 속은 편하고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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