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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Oct 06. 2024

빨간 손길이 그려낸 토렴의 맛

대전 오문창순대국밥

8월 중순 오송역에서 B1 버스를 타고 오정농수산오거리 정류장에 내린다. 오정농수산물시장 버스 정류장까지 400여 m 걸어서 706번 버스를 타고 한남병원 정류장에 내린다. 오전 8시 19분 길 건너편 노란 간판에 '오문창순대국밥' 빨간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토렴 조리법을 하는 곳으로 미리 알아둔 식당이다.


파란불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오문창순대국밥' 상호가 붙은 건물이 두 개 다. 빨간색 상호 우측 건물은 식당 확장을 위해 내부 공사 중이다.


식당 앞 유리창에 ‘최고의맛’과 ‘전통의맛’ 빨간 글자 사이로 ‘순대’, ‘국밥’, ‘족발’ 글자가 큼직하게 쓰여 있다. ‘냄새가나지않는국밥’, ‘45년전통의집’, ‘24시간’ 글자도 눈에 띈다.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 엠블럼도 붙어있다.


대전 오문창순대국밥은 1999년 대덕구 중리동 지금의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 창업주 할머니의 경력까지 합치면 40년이 넘는 전통의 순대국밥집이다.


밥을 토렴해 내주는 순대국밥이 대표 음식이며 족발, 곱창전골, 모둠 순대, 술국, 순대 국수 등도 판매한다. 연중무휴이며 24시간 영업한다. 순대국밥 주문 때 돼지고기 건더기와 순대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출입문이 열려있다. 열린 문으로 구수한 내음이 뿜어져 나오며 코를 간지럽힌다. 향을 맡으며 식당으로 들어선다. 출입문 입구 좌측으로 열린 주방이 있다. 냄새의 근원지다. 눈은 코가 알려준 곳을 확인한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솥에는 갈색 국물이 펄펄 끓고 있다. 이모님 한 분이 빨간 위생 장갑을 끼고 뚝배기에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반복한다. 토렴질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사진을 찍기 위해 토렴하는 이모님에게 말을 건넨다.


“토렴하는 사진 찍어도 될까요?”

“뭐 하러 이런 건 찍어요. 특별한 거도 아닌데요?”

“아, 요새 드물어서 기록해 두려고요?”


주문이 계속 들어온다. 이모님의 답이 늦춰진다. 사진 대신 이모님의 토렴질을 눈과 귀로 담는다. 이모님은 식은 밥과 돼지고기 건더기가 담긴 뚝배기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에 국자를 쥔다. 국자로 뜨거운 국물을 떠 뚝배기에 붓는다. 건더기를 국자로 누르고 뚝배기를 비스듬히 뉘어 국물을 따른다. 대여섯 번 반복한다. 이모님의 손놀림은 날렵하면서도 노련하다. 뚝배기에 국물이 찰랑거리게 붓고 다진 양념장, 썬 대파, 후추를 뿌린다. 토렴한 순대국밥이 완성된다.


잠시 틈이 나자, 이모님이 떨떠름한 말투로 답을 준다.


“뭐 이런 걸 찍는데요. 얼굴 나오면 안 돼요?”

“아. 네.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다시 토렴질을 기록한다. 흙빛 뚝배기, 갈색 건더기와 국물 사이로 빨간 손길이 여러 번 스쳐 지나간다. 빨간 손길은 연륜 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여러 식재료를 보듬는다. 고마운 손길이 인상 깊다.


고마운 손길을 간직하며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메뉴판을 한번 살핀 후 순대국밥을 주문한다. 찬물이 담긴 물통과 밑반찬을 먼저 내준다. 고추, 양파, 새우젓, 들깻가루, 된장, 고추장, 깍두기, '파다대기' 또는 '파대기'라 부르는 시그니처 밑반찬인 파 양념무침 등이 식탁에 차려진다.


식당을 살펴본다. 열린 주방 위에는 백년가게 선정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주방 뒤 넓은 공간에는 종업원분들이 식재료를 다듬고 포장용 밑반찬을 담느라 바쁘다.


혼자 온 옆자리 남자 손님은 순대국밥에 소주를 드시며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남자 4분이 앉은 자리엔 술국과 소주를 먹으며 회사 얘기를 나눈다. 빈 소주병 3병이 식탁 가에 놓여있다. 노부부도 혼자 온 손님도 각각의 자리에 앉아 순대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대로변 길가에 있는 현대식 식당이지만 시장통 사람 냄새가 나는 국밥집 분위기다. 오전 9시 전인데도 들고 나가는 손님이 꾸준하게 이어진다.


주문 후 5분 정도 지나 순대국밥이 식탁에 놓인다. 열린 주방에서 이모분이 토렴하던 모습을 그리며 뚝배기를 바라본다.


흙빛 뚝배기에 국물이 가랑가랑하다. 뚝배기는 토렴한 밥, 돼지 내장과 순대로 꽉 차 있다. 빈틈이 없다. 한꺼번에 다진양념까지 저으면 국물이 넘칠것 같다. 썬 대파와 다진 양념, 후추는 건드리지 않는다. 뚝배기 가장자리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슬쩍 민다. 밥알이 살그머니 뽀얀 얼굴을 내민다.


옅은 갈색빛 국물만 한술 떠먹는다. 국내산 돼지 사골로 푹 우려낸다는 국물이 깔끔하다. 세 번 더 국물을 맛본다. 간이 딱 맞은 구수한 국물 사이로 옅은 감칠맛이 포개진다. 돼지고기 특유의 육향을 세련되게 담아냈다. 식당 밖 유리창에 쓴 ‘냄새가나지않는국밥’을 떠오르게 하는 국물 맛이다.


뽀얀 얼굴을 내민 밥에 숟가락을 푹 꽂아 국물, 건더기와 함께 그들먹하게 퍼 맛본다. 몇 번 더 숟가락질은 이어진다.


국물이 스며든 밥알은 노긋하다. 선지, 당면, 각종 채소로 속을 채운 순대와 돼지 내장은 졸깃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질감으로 리드미컬하게 어금니를 놀린다.


70~80도로 맞춰진 식재료의 온도는 입과 식도, 내장까지 어우러짐과 알맞음을 전달한다. 토렴이 베푼 선물이다.


숟가락질을 멈추고 뚝배기를 바라본다. 국물은 줄어들었지만, 건더기와 밥의 양은 넉넉하다. 깍두기, 양파, 파 다진양념을 곁들이거나 새우젓 한두 개만 올려 먹기도 한다. 빨간 다진 양념을 풀고 대파 다진양념과 들깻가루를 넣어 휘젓는다. 말간 국물에 빨강, 파랑, 갈색이 섞인다. 수묵담채화가 파스텔화로 바뀐다.


한술 크게 떠먹는다. 잔잔했던 국물이 묵직하다. 익숙해진 맛과 식감에 맵고 짜고 알싸하고 구뜰한 맛은 혀를 감치고 꺼끌꺼끌, 살강살강 씹히는 다른 리듬감은 어금니를 희롱한다. 익숙함에 새로움의 즐거움이 더해진다. 이완과 긴장의 풍미와 식감으로 입안이 풍성해진다.


순대국밥과 함께 먹는 방법이 다양해 즐겁다. 먹다 보면 가득 찼던 국물과 건더기는 사라지고 뚝배기의 바닥을 마주한다.


대전분들이 성심당의 빵만큼 사랑하는 순대국밥 한 그릇을 비운다. 식당을 나오며 유리창에 쓰인 ‘최고의 맛’, ‘전통의 맛’ 글자를 바라본다. 토렴하던 이모님의 빨간 손길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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