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원조연산할머니순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논산 연산할머니순대'를 소개한 글이다.
"손복례 할머니가 친정어머니에게 배워 연산시장에서 연산순대를 판매하였으며 약 70년 정도 되었다. 연산순대는 원재료인 돼지머리, 내장, 야채 등 모든 재료를 삶는 것에서부터 전통적인 방법으로 직접 조리한다. 연산순대가 일반 시중의 순대와 다른 점은 순대를 찌지 않고 물에 삶는 피순대라는 점이다. 돼지 피를 가라앉혀 위에 뜬 맑은 것만을 사용하여 순대가 부드럽고 고소하다.
순대 소는 계절(여름, 겨울)에 따라 재료를 달리 하며 순대국밥의 국물은 돼지 사골을 하루 동안 우려 만든다고 한다. 현재 연산순대는 연산시장 안에 5개의 식당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으며, 인근 도시에도 연산순대집이 생길 정도로 새로운 향토음식으로 부각되고 있다.”라고 논산 연산할머니순대를 소개한다.
논산 원조연산할머니순대는 현재 손자가 4대째 대를 잇는 순댓국집이다. 따로국밥(1만원), 순대국밥(9천원), 순대접시(소 1만원, 중 1만5천원, 대 2만원)를 판매한다. 영업시간은 08:00~19:30이며 14:30~15:00 브레이크 타임이다. 연중무휴이다.
순대 접시를 주문하면 연분홍빛 피순대와 돼지 내장을 내준다. 순대국밥은 다양한 돼지 내장과 피순대를 푸짐하게 넣는다. 맑은 국물을 떠먹다가 파, 마늘 등을 넣은 시그니처 특제 양념을 넣거나 깍두기, 새우젓을 곁들여 먹는 걸 추천한다.
2024년 10월 점심을 먹으러 원조연산할머니순대를 찾는다. 7년만이다. 간판과 지붕 색깔이 바뀌었다. 식당 내부도 좀 더 밝아지고 깨끗하다.
오전 11시 53분 출입문을 밀고 들어선다. 연세 계신 여종업원분이 몇 명인지 묻는다. 한 명이라 답한다. 점심 시간엔 손님이 많다며 4명 정도 않을 수 있는 일자형 식탁으로 안내해 준다. 혼자 밥 먹는 손님들 자리로 보인다.
순대국밥을 주문하고 식당을 살펴본다. 2대 주인 할머님이 순대를 써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연산순대라 쓴 글씨가 눈에 띈다. 메뉴판을 보니 메뉴는 전과 다름없다. 가격은 조금 올랐다. 충청남도 나트륨 줄이기 참여 실천 음식점 엠블럼도 보인다. 순대국 나트륨을 36%(1504mg—>960mg) 줄인 알림판도 붙어 있다.
12시를 조금 넘기자, 손님들이 몰려들어 온다. 혼자 온 손님은 드물다. 주문한 순대국밥을 아시아계로 보이는 남종업원이 가져다줄 때 내 옆 한자리 건너 혼자 온 손님이 앉으며 순대국밥을 주문한다.
2016년 논산 여행 후 원조연산할머니순대를 처음 찾았다. 3대 남 사장님이 식당을 운영하셨다. 할머니 대부터 시작하여 당시 30대 아들 부부까지 4대째 대물림한다고 했다. 2대 할머님도 식당 일을 도우실 정도로 정정하셨다.
순대국밥과 접시 순대 5천 원어치 주문하여 먹었다. 곡성, 구례, 전주, 김제 등 전라도의 검붉은 피순대와 다른 연분홍색을 띠는 피순대가 눈에 띄었다. 돼지 선지의 맑은 부분을 쓴다고 했다. 퍽퍽하지 않은 부드러운 식감이 독특했다.
피순대는 쫄깃한 식감 대창에 선지, 파 껍질, 돼지껍질 등이 속 재료로 들어가며 1대 할머님 대는 선지와 파 껍질만 쓰다가 3대 사장님이 돼지껍질을 넣어 고소한 맛을 보강하셨다고 했다. 파 껍질은 1대 할머님이 진액이 소화를 도와 사용했다고도 말했다.
순대접시와 순대국밥에 파와 마늘을 넣은 시그니처 다진양념을 곁들여 먹었다. 단맛보단 신맛과 쌉쌀한 맛이 좀 더 느껴지는 양촌 막걸리(Since 1920)도 한잔 들이켰다. 궁합이 그만이었다.
좋은 추억의 맛 때문에 이후 논산 여행 때 몇 차례 더 들렸다.
겨울 저녁 시골집 굴뚝으로 올라오는 연기처럼 검은 뚝배기가 하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낸다. 구수함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뇌로 스며든다. 후각으로 느끼는 맛의 여운을 잠시 즐긴다.
하얀 김이 잦아든다. 초록빛 파가 군데군데 보이는 연분홍빛 피순대가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난다. 피순대는 돼지 선지로 옹골차다. 2016년 처음 본 모습과 다름없지만 피순대 맛의 기억은 흐릿하다. 국물도 떠먹기 전에 피순대만 하나 집어 호호 불어 입에 넣는다. 무의식적인 음직임은 유심히 먹이를 바라보다 날쌔게 낚아챈 매처럼 날랬다.
어금니의 저작(咀嚼, 음식을 입에 넣고 씹음.)이 갓난아기 엉덩이 만지듯 조심스럽다. 시작은 부드러움이 입술을 스쳐 지날 때부터였다.
밑반찬으로 먹는 분홍 소시지와 돼지 허파의 식감이 섞인 질감에 대창의 졸깃함이 보태진다. 퍽퍽하거나 물컹하지 않다. 따뜻한 국물이 흐르며 보드라운 식감 사이로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넘실된다. 돼지 껍데기와 파도 중간중간 씹히며 식감의 변주를 준다.
이곳의 피순대는 돼지 내장에 돼지 선지와 채소, 돼지 껍데기를 넣어 만든다. 수작업으로 피순대를 만든다. 다른 수제 순댓집과 다른 점이 있다.
색이 다르다. 전라도의 검붉다 못해 검은 피순대와 달리 연분홍빛을 띤다. 당일 도축한 신선한 돼지의 선지를 받아 일정 시간 가라앉힌 다음 그 위로 뜬 맑은 선지만을 이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릿한 냄새와 텁텁하지 않은 피순대를 만드는 비법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소도 다르다. 일반 순대처럼 당면의 사용이 없다. 순대 소는 계절에 따라 재료를 달리한다.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겨울에는 배추김치·두부 약간·돼지 피·파·생강·간 고기 약간 등을 넣어 만들고, 여름에는 돼지 피·파·부추·양념 약간만을 사용한다.”라고 적었다.
눈으로는 선지와 파의 색이 워낙 도드라지고 맛을 봐도 보드라운 선지 사이로 돼지 껍질 정도의 식감이 여리게 느껴진다. 다른 식재료의 쓰임을 알기 어렵다.
조리법도 다르다. 찌지 않고 돼지국밥용 육수인 돼지 사골에 삶아 낸다.
돼지국밥의 국물은 돼지 사골로 우려낸다고 한다. 피순대와 돼지 내장도 함께 삶아낸다.
피순대 하나를 더 맛본 후 국물만 한술 크게 떠먹는다. 나트륨 줄이기 참여 실천 음식점이라 간이 심심하고 깔끔하다. 식탁에 놓인 소금, 들깻가루, 후추를 넣지 않고 몇 숟가락 더 떠먹는다. 산듯하고 구수하다. 감칠맛은 여리지만, 자꾸 당기는 맛이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은 후 밥과 내장을 푹 떠서 먹는다. 따스한 국물을 머금은 밥은 노긋하다. 머리고기, 곱창, 염통, 오소리감투, 허파, 간, 새끼보등 돼지 내장의 다양한 맛과 식감으로 입안이 풍성하고 기껍다.
몇 술 더 밥과 건더기를 먹다가 들깻가루, 마늘, 대파, 고추지를 넣은 특제 양념을 넣는다. 깍두기 국물도 붓는다. 마늘 몇 개는 밥 밑으로 묻는다. 잘 뒤섞은 후 크게 한술 뜬다.
심심하고 담백한 국물에 간이 맞춰진다. 신맛, 고소한 맛, 감칠맛, 칼칼한 맛을 혀에 풀어낸다. 대파는 아릿하고 생마늘은 알싸하다. 고추지의 삭힌 맛도 별나다. 돼지 내장과 어우러짐이 그만이다. 몇 술 더 떠먹는다. 밥 밑에서 익혀진 생마늘은 알싸함에 여린 단맛을 보탠다.
새우젓은 돼지 내장에 얹어 먹는다. 찬으로 나온 깍두기는 조금 무르다. 단맛과 신맛이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돼지국밥에 어울린다.
수저질은 바쁘게 이어진다. 푸짐함은 밖에서 안으로 시나브로 쌓이고 텅빈 뚝배기의 검은 바닥을 마주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간다. 식당은 손님들로 꽉 찼다. 손님 중에는 자녀와 같이 온 분들도 많다. 손님도 대를 이어 찾는다.
분홍 맛은 주인도 손님도 대를 잇는다.
출입문 좌측 계산대에서 음식값을 계산한다. 계산대 앞으로 열린 주방이 보인다. 식힌 밥을 담은 스테인리스 소쿠리, 삶은 통 순대를 넣은 솥, 삶은 돼지 내장을 넣은 솥 등이 놓여있다. 연세 드신 할머님이 뚝배기에 식힌 밥을 담고, 그 위에 썬 피순대, 돼지 내장을 올린다.
김이 오르는 커다란 가마솥 앞에 이모분이 피순대를 삶고 있다. 화구에 할머님이 작업한 뚝배기가 얹어진다. 이모분이 뚝배기에 가마솥 국물을 국자로 퍼붓는다.
화구에 빨간불이 오른다. 순대국밥은 오래 끓이진 않지만, 토렴은 하지 않았다. 내가 먹은 돼지국밥의 조리 방법이다.
가마솥 앞 이모분께 토렴하지 않는지 물어본다. 손님이 요청하면 해준다고 한다. 토렴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는지 여쭤보니 보여 주신다.
할머님이 뚝배기에 식은 밥, 피순대, 돼지 내장을 얹어 이모분께 건넨다. 왼손으로 뚝배기를 잡고 가마솥 뽀얀 육수를 서너 번 붓고 따른다. 토렴질이다.
토렴 과정을 거친 국밥을 먹지 않아 비교가 어렵지만 맛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듯하다. 토렴은 하지 않았지만, 식힌 밥을 사용하고 화구에서 오래 끓이지 않아 국물의 온도가 너무 뜨겁지 않았기 때문이다.